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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 싶고 머물고 싶고 살고 싶은 섬, 가파도(加波島)

가파도 전경. 1km²가 채 안 되는 작은 섬 가파도는 ‘가오리’ 형상과 닮았다.

“가파도에 처음 왔을 때 아름다움에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러다 이 섬이 곧 끝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세상에 많은 곳들이 아름답다는 이유로 난개발이 된 뒤 버려지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작은 힘으로 무엇인가를 할 수 없을까 생각했습니다.” 지난 4월 12일, 6년 만에 가파도 프로젝트를 대중에게 공개한 날, 현대카드 정태영 부회장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가파도는 제주 모슬포 운진항에서 배를 타고 10분을 가면 닿을 수 있는 섬입니다. 1km²가 채 안 되는 작은 섬에는 초록빛 청보리밭이 있습니다. 봄이 되면 청보리밭이 꼭 바다처럼 보입니다. 이 섬의 고도는 약 20m. 청보리밭과 푸른 바다, 멀리 제주 섬이 마치 수평으로 놓인 것 같습니다.

이 같은 완벽한 비경이 소문나 봄철에는 이 섬에 ‘청보리 축제’를 보러 오는 관광객으로 넘칩니다. 하지만 그뿐입니다. 축제가 끝이 나면 가파도는 다시 ‘사람이 그리운 섬’으로 바뀝니다. 가파도는 아름답지만 구태여 찾을 이유가 없습니다. 국토 최남단이라는 명칭은 마라도에 넘겼고 별다른 관광 명소도 없습니다.

살고 싶은 사람도 점차 줄어들고 있습니다. 농·어업이 쇠락해 일거리가 부족해지자 청년들은 섬을 떠났습니다. 남은 주민들의 생계는 위협받고 있습니다. 한때 1000여명이던 인구는 지금 170여명으로 줄었습니다. 그 사이 ‘한 철 손님’을 대상으로 하는 임시 시설물이 곳곳에 들어서 가파도의 자연스러움을 해쳤습니다.

위기의 가파도. 더 이상 지켜 볼 수 없다고 생각한 제주특별자치도청과 마을 주민, 그리고 현대카드는 가파도를 위해 의기투합했습니다. ‘반짝 관광객’이 드는 가파도를 자연과 문화, 경제가 공존하는 새로운 섬으로 탈바꿈시키겠다는 것. 그렇게 현대카드는 사회공헌활동(CSR)의 일환으로 제주도청과 가파도 마을 주민들과 함께 ‘가파도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버려진 집은 개조하고, 자연은 복원하고

프로젝트의 기본 골격은 분명했습니다. 건물을 짓고 도로를 내는 식의 개발을 피하고 가파도의 자연환경과 고유의 문화를 보존하는 것입니다. 친환경을 표방한 만큼 프로젝트는 먼저 가파도 생태와 풍경이 훼손되지 않도록 변화의 밀도를 조절했습니다. 실제로 섬 곳곳에 지어진 ‘가파도 터미널’ ‘가파도 하우스(숙박시설)’ ‘가파도 에어(AiR·Artist in Residence)’ 등은 수평선과 이어지듯 평평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현무암 색과 비슷한 회색 위주기도 합니다. 가파도 특유의 나지막한 지형, 기존 가옥과 어울리도록 한 셈입니다.

가파도 하우스
버려져 방치된 집을 개조한 건물은 재생과 복원의 가치를 떠올리게 한다.

건축물도 새로운 것을 짓기보다 최대한 기존 건물을 활용했습니다. 가파도 하우스는 버려져 방치된 집을 개조한 것입니다. 가파도 에어는 20년간 흉물스럽게 버려진 지하 건물을 바꿔 만들었습니다. 프로젝트는 난개발로 만들어진 해안도로를 철거해 섬의 본 모습이 드러날 수 있게 하고, 옛 거주민의 흔적이 담긴 돌담과 우물을 복원하고, 상동포구 정면을 가로막고 있는 건물도 없앨 예정입니다.

가파도 에어. 건축물에서 보는 풍경은 관광객들의 탄성을 자아낸다.

작은 섬에 문화를 심다

가파도 프로젝트의 한 가지 철학은 ‘섬에 문화를 심는다’는 것입니다.
지속 가능한 섬이 되려면 자연과 문화가 공존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에 아티스트들이 거주하면서 작품 활동을 하는 가파도 에어를 만들었습니다.

지상과 지하층으로 이뤄진 이 곳은 작가들이 수개월 간 거주하며 작품활동을 하는 공간입니다. 작가들의 개인 숙소와 작업공간인 개인 스튜디오, 갤러리, 전망대가 있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과 뉴욕 현대미술관(MoMA), 런던 테이트모던 미술관 큐레이터 등은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해 가파도 에어에 입주할 작가들을 골랐는데요. 현재 한국, 덴마크, 영국 등에서 온 작가 7명이 지내고 있습니다. 작가들은 가파도 자연과 주민에 영감을 받아 작품활동을 하게 됩니다.

사실 전 세계 예술을 이끌고 있는 미국 뉴욕의 현대미술관(MoMA)과 영국 런던의 테이트모던 미술관, 국립 현대미술관이 동시에 프로젝트에 참여한 것은 이례적인데요. 전문가들은 전 세계 예술가를 가파도에 초청해 아름다운 자연과 사람을 장기적으로 알릴 수 있는 그 자체가 프로젝트의 가장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예술적 감성이 더해진 가파도의 문화적 가치가 앞으로 더 높아질 것으로 기대되는 이유입니다.

주민의, 주민을 위한, 주민에 의한

많은 사람들이 가파도를 나오시마 섬과 비교합니다. 예술이 더해진 섬이라는 공통점 때문입니다. 나오시마는 원래 구리 제련소가 있던 낡은 섬이었습니다. 1989년부터 재생 프로젝트가 시작돼 예술가의 손길이 닿으면서 관광객 수십 만 명이 찾는 세계적인 ‘예술의 섬’이 됐습니다.

하지만 나오시마 섬과 가파도에는 큰 차이점이 있습니다. 주체가 다릅니다. 나오시마에는 일본의 출판 교육 기업 베네세(Benesse)가 주도적으로 섬 재생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섬의 원주민들이 주체가 아닌 ‘구경꾼’이 됐습니다. 주민이 생활하는 공간과 관광객이 드나드는 공간이 분리된 이유입니다.

(왼쪽) 가파도 어업센터. 해녀가 해조류나 그물 등을 손질할 수 있는 공간이자 여행객이 해산물 요리를 직접 맛 볼 수 있는 공간이다.
(오른쪽) 가파도 주민 해녀가 물질을 끝내고 섬으로 나왔다.

가파도는 반대입니다. 주민의, 주민을 위한, 주민에 의한 프로젝트입니다. 새롭게 지어진 가파도 터미널, 가파도 하우스, 어업센터와 레스토랑, 스낵바 등은 모두 마을 주민이 운영하고 그 수익을 가져갑니다. 기존 농·어업체계의 수준을 높여 가공품의 개발과 판로를 확대한 이유도 마을 주민들의 경제적 자립 기반을 마련하기 위함입니다. 주민들과의 오랜 대화를 통해 버려졌던 창고를 마을 강당으로 바꾸기도 했습니다. 이번 프로젝트는 마을 주민이 항상 주인이 되고 모든 혜택의 수혜자가 되는 형태입니다.

최욱 원오원 건축사무소 대표는 “바다 속, 바깥 풍경은 누군가의 기억이기도 또 삶이기도 하다”며 “가파도 생태를 자연스럽게 보듬었던 이유도 주민들의 삶을 존중하기 위함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약 3,300개의 섬이 있습니다. 이 섬들은 아직도 개발과 보존의 딜레마에 빠져 있습니다. 하지만 개발은 보존과 상충하는 개념이 아닙니다. 온전한 개발은 무언가를 없애 새로 만드는 게 아니라 고유의 특색에서 새로운 가치를 발굴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키기 위한 변화’라는 철학이 녹아있는 가파도 프로젝트. 더 많은 지역을 보존하고 더 많은 사람들을 윤택하게 하는 데 단초가 되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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