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우연한 마주침으로 미래를 준비하는 '애자일 오피스'

3면이 칸막이로 둘러싸인 책상에 앉아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며 키보드를 두드린다.
동료와의 커뮤니케이션은 전화, 이메일 혹은 메신저로 한다. 이따금 잡히는 회의 시간에나 얼굴을
마주할 뿐 이렇다 할 대화를 나눌 일이 없다. 대다수의 직장인이 일하고 있는 전형적인 업무 환경이다.

최근 기업 사이에서 이런 전통적인 사무 환경을 변신시키려는 바람이 일고 있다. 이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사무실이 ‘직원들이 얼굴을 마주할 수 있는 기회를 늘려 자주 소통할 수 있게 하는 공간’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일부 IT 기업에만 국한하는 것이 아니다. 보수적인 금융회사와 제조업체도 일하는 공간에 대한 변화를 불어넣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기업들은 이 같은 변화가 장기적으로는 회사의 이윤 극대화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마주침이 혁신을 가져온다

노르웨이 출신의 글로벌 통신업체 텔레노어(Telenor)는 2000년대 초반부터 사무공간 혁신을 기업 성장의 전략으로 내세웠다. 특히 회사 내에서의 다양한 실험을 통해 사무 공간 디자인을 해왔다. 일례로 자율 좌석제를 실시하거나, 커피머신 수를 줄이되 커피머신이 설치된 탕비실 크기를 확대해 더 많은 사람들이 한 공간에 모여 대화를 나누게 하는 것이다.
텔레노어는 실험을 통해 직원들이 ‘자연스럽게 마주칠’ 기회가 늘어나게 공간을 설계하면, 지식과 아이디어 교환이 늘어나고, 의사결정 속도가 빨라지며, 일을 대하는 태도가 적극적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심지어는 매출이 20% 가까이 늘어나는 고무적인 성과도 얻었다.

실제로 한 연구에 따르면 직원간 마주침이 늘어날수록 팀의 생산성과 부서간 교류가 늘어나 보다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많이 나오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속함이 무기인 디지털 분야에서는 직원들간 교류를 늘리는 사무 공간의 개방성과 유연성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도 밝혀졌다.

실제로 구글(Google)이나 페이스북(Facebook) 등과 같은 글로벌 IT 기업은 직원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끌어 낼 수 있는 사무공간에 대한 관심이 크다. 그 전제 조건은 ‘우연한 만남의 기회를 늘리는 것’이다. 예컨대, 구글은 2분 30초마다 직원이 다른 직원을 마주치도록 건물을 설계했으며, 손을 뻗으면 상대방 어깨에 닿을 거리에 책상을 배치하는 등 공간 디자인에 신경을 쓴다. 페이스북은 지난 2015년 신사옥을 지으면서 직원간 잦은 소통을 위해 벽과 복도 그리고 가로벽 없는 하나의 단일한 공간을 설계했다

커뮤니케이션을 촉진하는 애자일 오피스

최근 현대카드는 서울 영등포 여의도 사옥의 사무실 두 층을 완전히 탈바꿈했다. 이른바 ‘애자일(agile·민첩한) 오피스’를 구현한 것이다. 디지털 인력을 대거 보강하고 인공지능(AI)·블록체인·데이터 사이언스 등 기술을 기반으로 한 금융업을 하는 ‘테크핀(techfin)’ 기업을 지향하는 만큼, 급격히 발전하는 기술 트렌드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애자일 컬쳐’를 이식하기 위해 업무 환경부터 바꿔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가장 큰 변화는 책상을 가로막는 칸막이를 없앤 것이다. 때문에 언제든 얼굴을 마주보며 대화를 나눌 수 있다. 굳이 회의실로 찾아갈 필요도 없다. 높낮이 조절이 가능한 책상을 설치해 간단한 의견 교환을 위한 회의는 책상을 올린 채 그 자리에 서서 진행한다. 사무실 벽은 모두 화이트 보드 처리해 벽이 더는 막힌 공간이 아닌 아이디어를 공유(share)하고 소통(communicate)하는 장이 되게 했다. 긴 시간 회의실을 점유하는 것을 막기 위해 회의실은 밖에서 훤히 들여다보이도록 벽을 투명하게 설계했다.

유연하고 자유로운 공간 활용을 위해 직원들은 이동성(mobility)이 큰 노트북을 사용한다. 퇴근 시에는 사물함에 자신의 노트북을 넣어놓고, 출근하면 자신의 노트북을 찾아다 원하는 자리에서 일하면 된다. 휴게 공간은 확장했다. 더 많은 직원이 어울려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늘리기 위해 작은 테이블 세 개 정도가 들어가던 휴게실 크기를 대폭 확장했다. 모두가 대부분의 공간을 공유하는 대신, 혼자서 조용히 음악감상과 게임 등을 하며 쉴 수 있는 공간도 만들었다.

현재 이 공간은 신사업을 기획하고 추진하는 N본부 소속 직원들과 디지털 인력 일부가 사용하고 있다. 현대카드 관계자는 “직원들의 소통을 강화하는 업무 환경은 일의 효율을 높이는 것은 물론 기업의 미래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며 “향후 사내 다른 사무 공간도 이와 같은 ‘애자일 오피스’로 바꿔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삼성전자도 2016년 미국 실리콘밸리에 새 사옥을 지으면서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사무 공간을 만들어냈다. 글로벌 IT 기업들이 포진해있는 실리콘밸리에서 능력 있는 디지털 인력을 흡수하고 최상의 결과를 내게 만들려면 그에 걸맞은 사무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삼성전자 역시 직원들의 자연스러운 만남을 증진하기 위해 애썼다. 층간에 사무실 크기 만한 실외 휴게 공간을 배치했고, 복도가 마치 ‘무한 루프’처럼 연결되게 해 가능한 잦은 마주침이 일어나도록 했다.

회사 밖 사람과 함께 일하라···코쉐어링 오피스(co-sharing office)

기업들은 일하는 공간을 사무실 밖으로 확장하기도 한다. 접촉하고 소통할 수 있는 범위를 넓히면 보다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떠오를 수 있다는 이유다. 외부인이 접근할 수 있는 사옥 공간에 카페 겸 업무 공간을 만들어 직원뿐 아니라 외부인도 자리를 잡고 함께 일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현대카드는 올해 초 서울 영등포 여의도 사옥 1층에 이 같은 콘셉트로 ‘카페앤펍(Café&Pub)’을 만들어 직원뿐 아니라 카페를 찾은 고객들도 일을 할 수 있는 사무실을 만들었다. 이를 공간을 공유하고 함께 일한다는 뜻으로 ‘코쉐어링 오피스’라고 명명했다. 미국의 은행인 캐피탈원(Capital One)도 이같은 콘셉트의 ‘캐피탈원 360 카페’를 운영하면서 고객은 물론 직원들이 이곳을 사무 공간으로 사용하게 하고 있다.

최근에는 직접 공유 오피스를 만들어 직원들이 젊은 창업자나 지역사회의 인재와 호흡할 수 있도록 하기도 한다. 미국 최대 온라인 신발 쇼핑몰인 자포스(Zapos)는 라스베이거스 일대에 노후한 공공 건물이나 카페, 음식점 등을 사들이거나 임대해 이곳을 사무 공간으로 개조했다. 연구 결과 6개월만에 이 공간을 통해 직원들의 대면 접촉이 40% 넘게 증가했고, 그 결과 새로운 문제 해결 방법을 제안하는 회수가 80% 가까이 늘어났다는 것이 밝혀졌다.

국내에서도 공유 오피스로 직원들을 내보내 일하게 하는 기업들이 많아졌다. 현대카드는 서울 강남에 직접 ‘스튜디오 블랙’을 설립해 운영하면서, 주요 신사업을 추진하는 디지털 인력들이 나가 일하게 하고 있다. 현대카드 관계자는 “새로운 분야에 대한 탐구가 절실한 직원들이 스타트업 창업자들과 가까이서 일하면서 이들과 교류하면, 회사 안에서는 떠올리기 힘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더 많이 쏟아낼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 Email 보내기
  • 내용 Pri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