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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를 하루 15개비씩 매일 피운다. 의사로부터 비만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몇 달째 불면에 시달리고 있다. 당신의 생체 리듬에 빨간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건강하지 않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나는 외롭다’는 어떤가. 생뚱맞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이 역시 몸이 고통받고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몇몇 연구에 따르면 외로움은 과도한 흡연이나 비만, 불면 등과 같이 건강에 해로운 ‘질병’이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외로운 사람은 가벼운 상처도 쉬이 아물지 않고, 심지어는 진통소염제를 먹으면 외로움이 경감된다는 결과도 나왔다.
현대카드 새 카드 ‘DIGITAL LOVER’의 발표에 하루 앞서 발표된 음원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현대카드는 이번 DIGITAL LOVER의 브랜딩을 위해 뮤지션 크러쉬와 함께 작업했다.
대체 외로움이란 무엇일까? ‘홀로된 쓸쓸한 마음’, 사전적 정의는 이렇다. 누군가와 함께 하지 않는 혼자된 상태가 주는 허전하고 무료한 감정을 외로움이라고 부른다. 외로움은 다분히 부정적인 개념으로 그 상태가 장기간 지속되면 우울감으로 발전해 개인의 삶을 파괴할 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오죽하면 영국이 국가적 차원에서 외로움을 관리하는 위원회를 만들고 외로움에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게 했을까?
거리마다 손에 스마트폰을 쥔 행인들로 가득한 요즘. 귀에 이어폰을 꼽고 저마다의 모바일 세계에 빠져 거리를 거니는 우리들은 언뜻 혼자인 듯 보인다. 자신을 둘러싼 사람 그리고 환경으로부터 스스로를 소외시킨 채, 어떠한 물리적인 교류도 없이 오직 온라인 세계에서 머물며 하루를 보낸다. 그래서 우리, 지금, 혼자인가? 그리고 외로운가? 또 우울한가?
이러한 질문에 이른바 ‘밀레니얼’ 혹은 ‘디지털 네이티브’라 불리는 지금의 세대는, 과감히, 그렇지 않다며 고개를 가로 젓는다. 혼자라서 외롭다는 건 외로움의 유익함을 몰라서 하는 답답한 얘기라고 외친다. 외로움을 향유하는 이들은 어떤 세대이며 왜 외로움을 선택하는 것일까? 또 무엇을 하며, 어떤 즐거움으로 혼자만의 시공간을 채우는걸까.
마이라이프 이즈 론리, 벗 아임 쏘 해피1인 가구를 소재로 한 MBC의 간판 예능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 지난 2013년 초 프로그램 시작 당시만 해도 나 혼자 산다는 혼자 사는 삶을 우리 주변에서 찾아보기 힘든 낯선 삶의 방식으로 다뤘다. 그리고 이렇게 홀로 사는 이들을 다분히 찌질 하고, 보호 본능을 자극하며, 때로는 외로움에 사무치는 존재로 그렸다.
지난 14일 MBC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한 코미디언 장도연씨. 그는 “나는 외롭지만 행복하다”고 말했다.
(출처= MBC ‘나 혼자 산다’ 화면 캡처)
그런데 올해 8년째를 맞은 이 프로그램의 분위기는 완전히 바뀌었다. 이제 혼자만의 삶이란 더는 불쌍하지만은 않은, 나름의 삶의 방식과 이유를 지닌 무엇으로 그려진다. 지난 14일 방송에 출연한 코미디언 장도연씨가 ‘혼자 사는 삶은 어떤가’라는 제작진의 질문에 내놓은 대답이 이런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저는 싱글 라이프를 굉장히 즐긴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남들이 보기엔 되게 재미없어 보이나 봐요. 저는 자기 행복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마이 라이프 이즈 론리, 벗 아임 쏘 해피(My life is lonely, but I’m so happy).’”
하지만 이를 한 예능프로그램의 변화로만 해석할 수는 없는 듯하다.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장래가구 특별추계’에 따르면 작년 기준 1인 가구 수는 약 598만 7000가구로 전체 가구 가운데 30%를 차지해, 전체 가구 유형 가운데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1인 가구 비율이 30여년 뒤인 2047년에는 37%를 훌쩍 넘길 것으로 예측했다.
1인 가구가 특수한 형태의 가족이 아닌 우리 사회의 주류로 자리잡은 데에는 여러 가지 경제·사회학적 요인이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하는 부분은, 그간 희귀한 무엇으로 취급되던 홀로 존재하는 것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으로 변화한 것 또한 영향을 주었다는 점이다. 이젠 혼자서도 개인의 취향을 존중 받으며, 자신만의 방법으로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이들에게 자기주도적 외로움을 허하라‘홀로’의 문화는 밀레니얼 사이에서 대세로 자리 잡은지 오래다.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는 모습은 이제 낯선 광경이 아니다. ‘혼술(혼자 술마시기)’ ‘혼영(혼자 영화보기)’ ‘혼고기(혼자 고기굽기)’ 하는 사람을 보면서 측은지심을 갖지 않는다. 오히려 이 모든 일을 하면서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하는 것이 더 부자연스럽게 보인다.
그런데 이들은 이 단계마저 훌쩍 뛰어넘었다. 남들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는 수준은 이미 한참 전에 넘어섰다. 오히려 보다 적극적으로 ‘셀프(self) 고립’되길 원한다. 예컨대 온 가족이 TV 앞에 앉아 정해진 시간에 전파를 타는 드라마를 기다리기 보단, 넷플릭스나 유튜브프리미엄 같은 구독형 디지털 콘텐츠 서비스를 통해 내가 좋아하는 장르의 영상을 내가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혼자 보는 걸 좋아한다.
외로움은 더 이상 타의에 의해 부여되는 슬픔이 아닌, 적극적으로 선택하는 삶의 방식일 뿐이다.
(출처: gettyimagesbank.com)
밀레니얼들은 ‘우리는 더 적극적으로 외롭고 싶다’고 말한다. 이들이 말하는 외로움은 일반적인 외로움과는 다른 종류의 외로움이다. 밀레니얼에게 외로움이란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질병이 아닌 오히려 나를 사랑하는 가장 고차원적인 방법이다. 즉, 외로움이란 타의에 의해 주어진 피동적인 것이 아니라, 나의 의지로 내가 원하는 때에 선택적으로 빠져드는 자기주도적인 상태(status)라는 것이다.
외로움의 자기 주도성을 말하는 철학은 밀레니얼을 둘러싼 여러 가지 현상을 설명하는 단서가 된다. 가령 유행보다는 취향을 존중하는 이른바 개취존(개인 취향 존중) 문화가 대표적이다. 너도나도 똑같이 따라가는 유행은 거부하고 자신의 입맛에 맞는 패션과 음악을 즐기는 것이다. 주어진 것을 받아들이는 건 진부할 따름이며, 모든 것은 내가 선택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소외의 결과물이 아닌, 자아에 대한 증명이고 만족일 뿐이다.
DIGITAL LOVER의 외로움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며이런 변화하는 세대의 특성을 간파한 비즈니스 업계에서도 자발적 외로움에 호응하는 시대적 흐름에 주목하고 있다. 다음소프트가 운영하는 생활변화관측소가 내놓은 책 ‘2020 트렌드노트’는 2020년을 이끌 키워드로 ‘혼자만의 시공간’을 꼽았다. 책에 따르면 2020년에는 단순히 혼자만의 시공간을 확보하는데 그치는 게 아닌, 이를 보다 윤택하게 만드는데 돈과 시간을 투자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으로 예측했다.
이런 트렌드에 맞춰 기업들은 이런 사람들이 원하는 무언가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혼자만의 시공간에서 소비할 수 있는 대상을 판매하든지, 아니면 이들의 소비에 도움이 되는 수단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트렌드노트는 이 모든 것들은 ‘혼자의 시공간을 침범하지 않으면서, 나의 즐거움을 극대화할 수 있어야 하며, 동시에 새로운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지난 20일 출시한 현대카드 ‘DIGITAL LOVER’의 네 가지 디자인의 카드 플레이트.
20일 출시된 ‘현대카드 DIGITAL LOVER’는 밀레니얼을 비롯해 혼자만의 삶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 사람들을 타깃으로 한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하다. 모든 것을 비대면 방식으로 소비하는 이들을 위해 간편결제 서비스는 물론, 넷플릭스·유튜브프리미엄·멜론·지니 등 디지털 콘텐츠 구독 서비스 이용 시 할인을 받을 수 있게 한 점이 대표적이다.
카드 혜택의 일부분을 ‘선택’의 영역에 둔 것도 자기주도적 성격이 강한 밀레니얼의 성향을 반영한 것이다. 네 가지 각기 다른 디자인의 카드플레이트를 제안하고 각자의 취향에 맞는 플레이트를 선택하게 한 것은 물론, 카드사가 제공하는 혜택을 무차별적으로 받아들일 필요 없이, 구독 방식으로 혜택을 골라 쓰게 만들었다.
어쩌면 자기주도적 외로움을 향유하는 밀레니얼은 우리에게 이제 외로움에 대해 새로이 정의하라고 요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들에게 외로움의 시간이란 결국 스스로에게 온전히 집중하며 원하는 것을 탐구하는 과정이자 하나의 취향일 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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