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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머리가 달라졌다. 현대카드 스튜디오 블랙에서 일하는 Coworking Space팀 이유나 사원 얘기다. 그녀는 이른바 ‘여신머리’로 유명했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생머리에 찰랑거리는 머릿결. 주변에서 다들 부러워했다. 그런데 갑자기 짧아도 너무 짧은 ‘귀밑 3cm 단발머리’를 하고 나타났다. 여자의 변신은 무죄라고 하지만 이건 너무 파격이 아닌가.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조심스럽게 그 이유를 묻자, 아래와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아, 저 기증했어요.” ‘HCS 사람들’의 첫번째 주인공은 소아암 환아에게 자신의 머리카락을 기증한 이유나 사원이다.
이유나 사원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
소아암 환아들은 암 치료를 받을 때 모발이 많이 빠진다. 머리카락이 없다는 사실은 아이들에게 트라우마다. 그래서 아이들을 위해 가발이 필요한데 나일론보다는 인모가 좋다. 이유나 사원은 조금이나마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지난 1월 한국백혈병소아암협회에 약 40cm에 달하는 머리카락을 기증했다. 그녀처럼 소아암협회에 머리카락을 보내는 사람은 매년 4, 5천 여명에 달한다.
크게 대단한 일이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머리카락 기증은 쉽지 않다. 자격조건부터 꽤 까다롭다. 먼저 25cm 이상 머리카락을 길러야 한다. 그 기간 동안 모발에 파마나 염색 등 화학약품 처리를 하면 안 된다. 한창 외모와 스타일에 관심이 많은 젊은 여성에게 염색, 파마를 하지 않고 머리카락을 기르는 데는 상당한 인내심이 필요하다.
주변 반대를 뛰어넘는 것도 만만치 않다. 머리를 잘라 기부를 한다는 선한 마음씨는 다들 이해하지만, 정작 자르는 순간이 오면 너나 없이 뜯어 말린다. 여성스러운 이미지를 선호하는 이유나 사원의 부모님은 ‘다른 방법으로 도우라’며 매일같이 잔소리를 해댔다. 단골 미용실의 전담 헤어 디자이너도 두 번, 세 번씩이나 만류했다.
“처음엔 저도 심각하게 고민을 했어요. 기증하려면 최소 1년은 손을 못 대는데 그 과정이 너무 힘들잖아요. 직장생활 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을 때 머리 스타일을 바꾸는 걸로 기분 전환하면 좋은데 그게 안돼서 갈팡 질팡했던 적도 있어요.”
이유나 사원이 소아암협회에 보낸 40cm 모발과 모발 기부 우편
하지만 그 고민도 잠시. 그녀는 결국 자신의 머리카락을 과감하게 잘라냈다. 노란색 고무줄로 머리카락을 한 웅큼 묶고, 가위로 한 방에 잘랐다. ‘싹둑’하는 소리와 함께 밀려오는 시원섭섭함. 하지만 자신의 머리카락이 아이들 가발로 쓰일 생각을 하니, 후회보다 설렘이 더 컸다. 곧장 우체국으로 달려가 서류봉투에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넣었다. 노란색 편지지에 ‘최상급 머릿결의 머리카락을 보냅니다. 부디 아이들을 위해 최고급 가발을 만들어 주시길···’이라고 쓴 뒤 등기를 보냈다.
질병의 아픔을 함께 나누는 기부주변 이웃을 돕기 위한 기부 방법은 많고 다양하다. 그런데 굳이 왜 모발을 기부하게 된 걸까. 이유나 사원은 사실 머리카락 기증뿐 아니라 복지원에서 입양을 기다리는 아이들, 버림받은 아이들을 도와주고 소액이지만 정기적으로 후원금도 내고 있다. 지난 2011년부터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접한 뒤 꾸준하게 도움을 주고 있다. 가끔은 입지 않는 옷이 생길 때마다 ‘아름다운 가게’로 달려가서 나눔을 실천한다.
“7년 전부터 꾸준히 기부를 생활화하고 있어요. 나눔을 통해 얻는 행복이 좋았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상한 느낌이 들었어요. 금전적인 기부는 하고 있지만, 기부를 한다기보다 고정적으로 비용이 빠지는 느낌? 매번 내야 하는 공과금처럼요. 보다 가치 있는 기부를 해야겠다 생각했어요.”
그 때 떠올린 게 ‘질병의 아픔을 나누는 기부’였다. 인간은 누구나 한 번은 아프다. 큰 병이든 작은 병이든 그것을 혼자 힘으로 헤쳐가기란 결코 쉽지 않다. 각자 자신만의 방법으로 아픈 사람을 위로하고 돕는 사람들이 필요한 이유다. 우리 사회에는 조혈모세포를 기증해 생명을 살리고, 사후 기증에 미리 서약해 나눔을 실천하는 등 따뜻한 기부의 씨앗이 곳곳에 퍼져있다.
이유나 사원도 그 일부가 되고 싶었다. 처음에 떠올렸던 것은 헌혈. 하지만 선천적으로 백혈구 수치가 높아 헌혈은 할 수 없었다. TV를 보다가 스쳐 지나가는 방송 프로그램에서 우연히 모발 기부를 알게 됐고, 백혈병을 앓으며 삭발을 하는 아이들이 눈에 아른거렸다. 머리카락 기증으로 백혈병 아이들과 그 아픔을 함께 나눠야겠다고 생각했다.
“기부를 하면 행복 엔도르핀이 나와요. 다들 용기를 가지고 기부를 많이 했으면 좋겠어요. 특히 모발 기부는 일단 시작하면 중간에 그만 두기 아까운 묘한 매력이 있어요. 야구선수 김광현 선수도 한 걸 보면 남자도 충분히 할 수가 있답니다. 강력 추천 드려요!”
이유나 사원은 내년 봄에 한 번 더 모발을 기부하기 위해 머리카락을 기르고 있다. 앞으로는 1년에 한 번씩 머리카락을 25cm씩 자를 예정이다. 벌써부터 설레어 하는 눈치다. ‘꾸밈’이 아니 ‘나눔’을 위해 머리를 기르고 자르는 그녀, 현대카드에 숨어 있는 기부 천사다.
모발 기부하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