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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카드∙현대커머셜 뉴스룸이 MZ세대의 트렌드 이면에 숨겨진 의미를 사회과학적으로 분석해 MZ세대를 들여다보는 ‘MZ주의’ 시리즈를 선보입니다. 이번에는 떼창 문화에 관한 이야기 입니다. 최근 다시 시작되는 공연들로 공연장에 모여드는 음악 팬들 사이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단어 중 하나가 ‘떼창’이다. 김서윤 하위문화연구가가 뮤지션을 감동시키는 MZ세대의 떼창에 대해 지금부터 소개합니다.
다시 공연이 시작됐다. 코로나19 사태로 한동안 불이 꺼졌던 공연장에 관객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불붙은 공연 열기는 6월 17일과 18일 이틀에 걸쳐 잠실 종합운동장 주경기장에서 열리는 ‘현대카드 슈퍼콘서트 27 브루노 마스’ 예매에서 절정에 달했다. 5월 27일 현대카드 회원을 대상으로 진행된 선예매는 45분 만에 매진을 기록하며 끝이 났는데 동시 접속자 수만 103만 명에 달했다. 28일 진행된 일반 예매의 동시 접속자 수는 116만 명으로 25분 만에 매진 세례를 이뤘다.
예매 열기가 뜨거웠던 만큼 소셜미디어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공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이용자도 많았다. 세트 리스트를 예상하며 공연에 대한 기대감을 나누는 목소리 중에는 ‘떼창’을 말하는 목소리도 섞여 있었다. 포털 사이트에 브루노 마스의 공연을 기다리는 글을 읽다 보면 꼭 나오는 단어, 떼창이다.
한국 관객은 유독 떼창에 대한 자부심이 크다. 유튜브에서 ‘떼창’으로 검색해보면 ‘떼창에 감동 받은 뮤지션 반응’ ‘역대급 떼창 모음’ 같은 동영상이 줄을 잇는다. 일본이나 중국, 동남아시아 국가에 비해 티켓 파워가 약한 한국에 내한하는 뮤지션이 늘어난 이유를 떼창에서 찾는 사람도 많다. 아예 이제는 떼창이 공연 문화의 일부분이 되어 ‘떼창을 하러 공연에 간다’ ‘떼창을 기대하고 있다’는 반응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떼창 문화가 한국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노래를 함께 부르는 ‘Sing along’은 외국에서도 빈번하게 이뤄진다. 그러나 이를 모를 리 없는 음악 팬들이 유독 한국의 떼창에 ‘자부심’을 갖는 이유가 무엇일까. 떼창은 한국의 음악 팬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가수를 감동시키는 떼창
2015년 5월, ‘폴 매카트니 현대카드 슈퍼콘서트 20’ 현장에서 떼창은 공연의 절정을 이루었다. 앵콜 공연이 시작하기 전 관객들이 노래 ‘Hey Jude’의 후렴구를 떼창하자 폴 매카트니가 직접 반주를 해준 사실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공연에서 눈여겨볼 부분은 관객이 폴 매카트니에게 해준 이벤트다. 한국 비틀즈 팬클럽 측에서는 관객들에게 피켓을 나눠주면서 특정 곡의 특정 부분에서 들어달라고 부탁했다. 노래 ‘Let It Be’가 흘러나오면 휴대폰 손전등 기능을 켜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거의 모든 관객은 이를 충실히 지켰다. 팬들의 이벤트에 폴 매카트니가 감동해 관객들을 지긋이 바라보는 순간에는 관객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한국 떼창의 특징은 이런 부분에 있다. 외국의 ‘sing along’은 말 그대로 모두가 소리 높여 흥에 겨워 노래를 따라부르는 것이다. 조직적이지 않고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다. 물론 다함께 부르는 노래 소리에 감동을 느낄 수 있겠지만 그것을 위해 제창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한국의 떼창은 목적을 가지고 있다. 뮤지션을 감동시키는 것이다. 내한공연에서 떼창으로 뮤지션을 감동시키려는 움직임은 꽤 오래 전부터 있었던 일인데 대표적인 것이 2009년 영국의 뮤지션 MIKA와 Travis가 내한했을 때의 이벤트다.
2009년 11월 떼창으로 뮤지션을 감동시킬 줄 아는 한국의 관객은 MIKA의 첫 내한 공연에서 여느 때처럼 열심히 노래를 따라 불렀는데 한 가지 준비한 것이 있었다. 노래 ‘We are golden’에서 후렴구에 맞춰 금색 종이를 뿌리는 이벤트였다. 생각하지도 못했던 이벤트에 MIKA는 무척 감동했고 열정적인 반응을 보였는데 이 모습을 담은 동영상이 유튜브에서만 200만 회 넘게 재생됐다. 그보다 앞서 3월 Travis의 첫 내한 단독 콘서트에서는 노래 ‘Closer’에 맞춰 종이비행기를 날리는 이벤트가 있었는데 보컬 프란 힐리는 이때 관객이 뿌린 종이비행기 몇 개를 몇 년이 지나도록 보관하고 있다고 트위터에서 밝힌 바 있었다.
감동하는 뮤지션을 보면서 감동받는 관객의 모습은 한국 아이돌−케이팝− 문화에서는 당연하다시피 일어나는 일이다. 아이돌이 발표한 노래에 맞춰 구호를 외치고 떼창을 하는 팬들은 매우 조직적이면서 열정적이다. 응원법이라고 부르는 이 떼창은 아무렇게나 따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팬클럽 등에서 앨범이 발매되면 음악방송 녹화가 시작되기 전 빠르게 결정해 ‘배포’한다.
이 모습은 스포츠 경기에서도 재현된다. 프로야구 경기를 보러 경기장을 찾는 팬들에게 중요한 것은 경기 내용만이 아니다. 응원은 경기장을 찾는 매우 중요한 이유가 되는데, 응원법 역시 정해져 있다. 응원단장이 준비하고 연습한 노래와 구호가 미리 배포되어 있고 이를 숙지한 팬들은 선수가 등장할 때, 점수가 날 때, 이기고 지고 있을 때 상황에 맞게 일사불란하게 응원전을 펼친다.
나 자신을 위한 떼창
이렇게 조직적이고 열정적인 응원을 통해 뮤지션이나 플레이어를 감동시키는 모습은 다른 문화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다. 조직적인 응원이나 떼창이 드물기도 하다. 그러니 거의 모든 뮤지션이나 플레이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모든 사람들은 감동할 수밖에 없다.
한국의 관객은 뮤지션이 감동하는 모습을 보고 자부심을 느낀다. 뮤지션이나 플레이어를 감동시킬 줄 아는 팬이 되는 것은 꽤 중요한 일이다. 다른 곳에는 없는 ‘조공’ 문화를 발전시킨 것도 케이팝 팬들이다. 케이팝 팬들은 뮤지션의 행복, 즐거움, 기쁨에 똑같은 감정을 느낀다.
그 이유는 팬 스스로 뮤지션과 매우 끈끈한 유대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케이팝 팬들은 뮤지션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뮤지션의 데뷔 전 모습, 성격, 능력 심지어 사생활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는 ‘나’는 뮤지션과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다. 뮤지션은 단순히 나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사람에 그치지 않는다. 나 역시 뮤지션의 힘이 되어 줄 수 있는 사람이다. 유대감은 곧 소속감으로 연결된다. 뮤지션의 팬덤, 뮤지션이 만드는 세계에 소속되어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힘이 된다.
소속감은 떼창 문화에서 매우 중요한 단어인데 떼창을 통해 소속감을 느낀다는 점에서 그렇다. 학교 축제에서 같은 구호를 외치고 어깨동무를 해 본 사람이라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소속감은 한국 관객이 공연을 통해 느끼고자 하는 감정 중 하나다. 한국 관객은 단순히 노래만 즐기지 않는다. 노래를 통해 하나의 세계를 만들기를 원한다. 짧은 시간의 공연에서도 마찬가지다. 함께 공통적으로 느낄 만한 감정을 공유하는 것, 유대감을 향상시키는 것을 원한다.
뮤지션의 감동을 보는 것은 단순히 내가 누군가를 감동시켰다는 성취감에만 그치지 않는다. 그 순간에 관객은 뮤지션에게 진한 유대감을 느끼게 되고 그로써 일시적이든 좀 더 장기적이든 뮤지션이 만들어내는 가상의 공동체에 소속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2017년 4월 ‘Coldplay 현대카드 슈퍼콘서트 22’가 끝나고 나서 지하철 역에서까지 ‘Viva la Vida’를 부르는 관객의 모습에서는 스포츠 경기가 끝나고 나서도 여운에 잠겨 있는 스포츠 팬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한다.
사라진 공동체 찾는 떼창
미국의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에서 2021년 17개 나라 국민을 대상으로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에 대해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한국만이 첫 번째로 ‘물질적 풍요’를 꼽았다. 건강을 꼽은 스페인과 사회를 꼽은 대만을 제외한 15개 나라에서는 가족이 1순위였다. 한국인은 삶에서 두 번째로 중요한 것을 건강으로 꼽았는데 프랑스와 독일을 비롯한 9개 나라의 국민들은 직업을, 미국과 영국은 친구를 꼽았다. 말하자면 한국(과 스페인)을 제외한 다른 나라에서는 가족이나 친구 같은 공동체를 의미 있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한국인이라고 해서 공동체를 의미 있게 생각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여론조사기관 트렌드모니터의 조사 결과를 보면 공동체 의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한국인은 5명 중 4명에 달했다. 그러나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간다는 느낌이나 한국인으로서 일체감을 느낀다는 응답은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
그렇다면 사라진 공동체 의식을 어디서 얻을 수 있을까. 해답 중 하나는 공연장이다. 공연장에서 관객은 단순히 음악을 감상하는 예술적 활동만 하지 않는다. 일사불란하게 떼창하며 이벤트를 조직하고 뮤지션이 감동하는 모습을 보며 다함께 환호하는 하나의 감정 공동체를 만들며 ‘부족한 점’을 채운다.
김서윤 하위문화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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