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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세대는 새로운 미식의 세대다. 알음알음 맛집을 알아내 찾아가곤 하는 이전 세대의 미식 문화와 MZ세대의 것은 완전히 다르다. 기성세대의 미식가라면 좋아하는 음식에 대해 일가견이 있는 사람처럼 여겨지지만 MZ세대 미식가는 꼭 그렇지 않다. 맛집을 많이 아는 사람이 미식가로 통할 때도 있다. 그러니까 MZ세대의 미식은 좀 더 가볍고, 좀 더 광범위하고, 좀 더 다양하다.
MZ세대의 미식이 갖는 특징을 알기 위해서는 우선 MZ세대에게 인기 있는 맛집들의 공통점을 살펴봐야 한다.
<출처 = 노티드 카페 공식 인스타그램 cafeknotted>
맛집마다 길게 줄을 늘어선 대기 손님들이 첫 번째 공통점이다. 서울 용산구 지하철 4호선과 6호선이 교차하는 삼각지역 인근에 있는 고기집 ‘몽탄’의 인기는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는다. 평일이든 주말이든 대기 인원이 많아 아침에 대기 예약을 걸면 저녁에 고기를 먹을 수 있을 정도다.
서울 종로구에 있는 ‘런던 베이글 뮤지엄’이나 여러 곳에 지점을 둔 ‘카페 노티드’와 ‘카페 레이어드’에서도 대기 줄은 길다. 지금은 곳곳에 지점이 생겨 인파가 분산됐지만 커피 전문점 ‘블루보틀’이나 ‘쉐이크쉑’ 같은 프랜차이즈 맛집에도 대기 인원이 수십 명이 넘었던 적이 있었다. 때로는 홍보차 잠시간 문을 열고 닫는 팝업스토어에도 사람이 몰리는데 서울 여의도에 있는 백화점 더현대 서울에 일주일간 문을 열었던 주류 전문 매장 ‘원소주’에는 3만 명의 인파가 몰려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이들 매장은 모두 각자의 ‘포인트’를 갖고 있다. 기념사진을 촬영하기에 좋은 특징들이 있다는 얘기인데 ‘몽탄’의 경우 감탄이 나올 정도로 두꺼운 고기 덩어리를 앞에 두고 사진 찍지 않는 사람이 없다. ‘카페 레이어드’에서는 가득히 쌓인 디저트 접시들이 사진 촬영 포인트가 되고 ‘블루보틀’에서는 하늘색의 간결한 매장 로고가 새겨진 컵을 들고 인증샷을 찍는 사람을 너무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출처 = 몽탄 공식 인스타그램 mongtan_official>
한국식 고기구이 전문점이나 미국에서 시작한 햄버거, 한국 소주나 영국식 디저트 전문점이 모두 인기를 얻는 것을 보면 MZ세대의 미식에는 경계가 없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MZ세대는 아침 일찍 음식점이 문을 열기 전에도, 비행기를 타고 건너가야 하는 외국에서도 미식을 즐긴다. 중국 음식 특유의 향신료가 잔뜩 들어간 마라(麻辣) 음식에서, 갖가지 향과 맛을 가진 수제 맥주까지, 다양하고 광범위한 미식을 즐긴다.
MZ세대에게 미식은 단지 음식을 먹는 행위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맛집을 찾아가는 미식 활동의 중심은 음식이 아니라 경험이다. 그래서 음식의 맛만큼 중요한 것이 바로 분위기, 메뉴의 구성 같은 것이다. 실제로 농림축산식품부의 ‘2021 국내외 외식트렌드’ 보고서를 보면 맛집의 기준으로 특색 있는 메뉴와 분위기를 꼽은 사람이 많았다. 메뉴와 분위기가 중요한 이유는 그것을 경험하고 공유하는 일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MZ세대의 미식에는 ‘공유하기’가 거의 반드시 포함된다.
나를 덧칠하는 경험
‘공유하는 미식’을 즐기기 위해서는 우선 인증샷이 필요하다. 인증샷은 두 가지 목적으로 찍힌다. 하나는 자기만족이다. 시간이 지난 후에 돌이켜보기 위해 찍는다. 또 하나는 과시다. 다른 사람이 좋게 봐주기를 바라면서 찍은 사진을 공유한다. 이 두 가지 목적은 서로 나뉘는 것이 아니다.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에는 매년 같은 날이 되면 업로드했던 게시물을 다시 보여주는 기능이 있는데, 이 기능은 자기만족과 과시적 목적을 모두 충족시키는 것이다.
주의해야 할 것은 이 때 과시는 물질주의에 기반한 으스대기나 ‘인정투쟁(認定鬪爭)’으로만 볼 수 없다는 점이다. MZ세대를 두고 ‘인증세대’라고 부르는 분석 중에는 MZ세대의 인증샷이 인정 욕구를 채우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이 있다. 또는 ‘인스타그래머블’과 ‘있어빌리티’를 결합해 설명하기도 한다.
인스타그래머블이란 인스타그램과 접미사 ‘able’의 합성어로 ‘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한’이라는 듯이다. 있어빌리티는 ‘있어보인다’와 능력을 뜻하는 ‘ability’의 합성어다. ‘인스타그래머블한 장소를 찾는 이유는 있어빌리티를 입증하기 위해서다’라는 문장이 가능하다.
MZ세대가 미식을 즐기고 인증샷을 찍어 공유하는 이유를 있어빌리티를 보여주기 위해서라는 설명이 제기되곤 한다. 그러나 이런 과시욕구, 허세 같은 것으로만 MZ세대의 미식을 설명하면 놓칠 만한 부분이 많다. 미식경험 중에 인증샷은 거의 필수적으로 찍히지만 MZ세대가 인증샷을 반드시 공유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혹은 공유하더라도 다수에게 노출할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는 경우도 많다. 친한 친구들끼리만 공유하는 식이다. 이런 경우 인스타그램을 운영하더라도 팔로워는 소규모일 수 있다.
공유하지 않는 인증샷을 찍는 MZ세대는 그렇다면 왜 미식 경험을 즐기는 것일까. 이는 자기과시 혹은 자기인정과 관련이 있다. 김수아 서울대 기초교육원 교수에 따르면 소셜미디어에서는 ‘반응편향(response bias)’이 일어난다. 반응편향이란 특정한 방식으로 반응하는 것을 말하는데, 소셜미디어에서 보여지는 모습이 순간을 포착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기본적인 속성이라고 생각하게 한다. 이건 꼭 타인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도 소셜미디어 속의 자기 모습이 원래의 모습이라고 믿을 수 있다.
인증샷에는 맛집을 찾아보면서 기대하던 마음, 음식을 앞에 두고 사진을 찍으며 즐기던 기분, 맛집의 분위기, 새로운 음식에 대한 즐거움, 미식 경험을 함께 하는 사람과의 친근함 같은 것이 모두 담긴다. 그리고 소셜미디어나 카카오톡 등에 공유하면서 스스로에게 경험을 덧씌운다.
미식과 자아존중감의 관계
즉 MZ세대 미식가는 맛 이외의 다른 목적을 위해 미식 경험을 즐긴다. 이것이 기성세대 미식가와는 사뭇 다른 부분이다. MZ세대 미식가들은 기성세대 미식가보다 더 많은 파스타와 피자를 먹어봤다 하더라도 기성세대 미식가들이 대개 그렇듯 전문적인 설명을 늘어놓지는 못한다. 대신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파스타를 만들어내는 분위기가 얼마나 특별한지, 파스타의 맛이 얼마나 독특한지, 그 음식점에서의 시간이 얼마나 즐거웠었는지 등이다.
그렇다고 해서 MZ세대 미식가가 기성세대 미식가보다 미식의 ‘본질’에 어긋나 있다고 지적하는 것도 옳지 않다. MZ세대 미식가가 분위기와 동반인과의 대화에 좀 더 신경을 썼다고 해서 ‘음식을 즐기는 일’이라는 미식의 원래 뜻에 어긋나는 행동을 한 것이 아니다.
미식학(gastronomy)을 심리학적으로 분석한 영국의 심리학자 찰스 스펜스에 따르면 음식의 맛은 분위기와 함께 하는 사람 등에 크게 좌우 받는다. 사람들은 나무와 풀로 꾸민 방에서 마신 위스키에서는 풀 냄새가 나고, 달콤함이 느껴지도록 꾸민 방에서 마신 위스키는 달콤하다고 느낀다. 그러니 MZ세대 미식가들은 음식의 맛 외에 다른 것에 신경을 쓰는 것이 아니라 음식의 맛을 최대한 즐기려는 경험을 하는 중이다.
오히려 MZ세대 미식가는 미식을 통해 자아존중감(self-esteem)을 높인다. 인증샷을 동반한 미식에는 몇 가지 ‘능력’이 내포돼 있다. 첫째는 맛집을 알아내는 정보력에 대한 것이다. 정보를 잘 찾아내는 능력뿐 아니라 유행에 뒤처지지 않았다는 것을 스스로, 주변에 입증하는 일이다.
유행은 단지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는 의미에만 그치지 않는다. 유행에 뒤쳐진다는 것은 과거에 머물러 현재와는 동떨어져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도태되지 않기 위해 계속해서 세상의 흐름에 발맞추어야 하는 인간으로서 유행을 잘 따라간다는 것은, 제대로 세상에 자리 잡고 있다는 안정감을 가져다준다.
거기다 MZ세대처럼 미식을 즐기기 위해서는 실제로도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미식 경험에는 음식점을 방문할 수 있는 자본, 줄을 서거나 일부러 지역에 들르는 등 음식을 맛보기 위해 쏟아야 하는 시간 등이 있다는 점이 저절로 입증된다.
거기다 인증샷을 동반한 MZ세대의 미식은 보통 누군가와 함께 이뤄진다. 친구, 연인, 가족들이 함께 있다는 것은 MZ세대의 사회성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몇몇 MZ세대에게서 파인 다이닝(fine dining) 레스토랑이 인기를 얻는 데에는 이 같은 이유도 분명히 있다. 한 끼에 수십 만 원에 이르는 식사비용은 그만한 경제적 능력을 연상시킨다. 대부분 파인 다이닝이 일상 식사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식재료로 음식을 꾸미고 맛을 만들어낸다는 점도 암시하는 바가 있다. 그만큼 식사 자리에 있는 사람의 다양성과 개방성을 보여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에서의 한 끼가 힐링(healing)이라는 단어와 잘 연결된다는 점에도 주목할 만하다. 단지 사치스럽게 돈을 쓰는, ‘플렉스(flex)’ 해버렸기 때문에 힐링되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나 주변에 그만한 능력과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기 때문에, 자아존중감을 고취시킬 수 있다는 측면에서 힐링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MZ세대의 미식뿐 아니라 이해가 되는 소비 활동이 많다. 대표적으로 현대카드의 고메위크나 호텔위크가 긴 역사를 가지고 흥행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인기 레스토랑의 대표 메뉴를 50% 할인 가격으로 즐길 수 있는 고메위크는 2006년부터 24번 열렸다. 손꼽히는 국내 호텔의 패키지 상품을 40% 할인된 가격으로 찾을 수 있는 호텔위크 역시 6번 성행하고 있다. 고메위크와 호텔위크의 ‘롱런’은 단지 할인 폭이 크기 때문이 아니다. 할인 기간 찾을 수 있는 레스토랑과 호텔이 주는 경험의 만족감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할인 폭이 크다고 해도 리스트에 올라 있는 레스토랑과 호텔이 주는 매력이 없다면 이 행사들은 인기를 얻을 수 없다.
사실 ‘호캉스’가 선호되는 이유도 따지고 보면 사치스러움으로만 단정지을 수 없다. MZ세대는 호캉스를 즐기기 위해 꽤나 바쁜 일정을 보낸다. 이건 마치 노동에 가까워 상상하는 것처럼 편하고 느긋하지만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캉스가 휴식의 방법으로 선호되는 이유는 이를 통해서 MZ세대는 심리적 만족감을 얻기 때문이다. 호텔의 다양한 부대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것 또한 능력의 일종이다. 좋은 호텔을 찾고 호텔을 이용할 수 있는 힘을 보여줄 수 있다. 꼭 소셜미디어의 수많은 팔로워들에게 알려지는 방식이 아니더라도 괜찮다.
해외여행도 마찬가지다. 여행에서 인증샷을 찍는 MZ세대는 사진을 돌이켜보기 위해서, 혹은 인스타그램에 전시하기 위해서만 찍는 것이 아니다. 사진을 찍으면서 해외여행을 통해 고취시킨 자아존중감을 확인하는 것이다. 일상에서 이뤄지는 미식경험이나 비교적 손쉽게 떠날 수 있는 호캉스보다 더 큰 만족감을 얻을지도 모른다. 런던의 타워브릿지 앞에서 인증샷을 찍기 위해서는 걸림돌들을 헤쳐 나갈 수 있는 문제 해결 능력까지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음식점 앞에서 길게 줄을 서 몇 시간을 기다리는 MZ세대에게 핀잔을 줄 필요가 없다. 이들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 줄을 서 미식을 즐기고 있기 때문이다.
김서윤 하위문화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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