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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목적지는 문제가 아니었다. 진짜 욕망은 떠나는 것이었다.” –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 中
숨가쁘게 달리다 보니 벌써 2022년도 한해가 마무리 되어간다. 모든 것을 두고 떠나고 싶은 지금! 휴식과 힐링을 주는 여행도 시대에 따라 변하고 있다. 단체 관광 가이드의 깃발을 따라 여기서 사진 찍고 다음으로 이동하는 여행에서 특별한 가치가 있는 경험을 하기 위한 여정으로 변화했다. 현대카드∙현대커머셜 뉴스룸에서 MZ세대에게 여행의 의미와 우선 순위를 김서윤 하위문화연구가와 함께 알아봅니다.
MZ세대에게 여행은 여가(餘暇), 즉 다른 무엇을 하고 남은 것이 아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는 시민들을 대상으로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여행에 대한 의미 및 인식'을 조사해봤다. 이 조사에서 "여행이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없다"고 말한 MZ세대는 10명 중 6명이 훌쩍 넘었다. 실제로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조사해보니 코로나19 사태가 있기 전 2019년 한 해 해외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고 답한 MZ세대도 30%가 넘었다. 활발하게 경제활동을 하는 40대와 은퇴 후 여생을 즐기는 60대가 기록한 20%를 한참 웃도는 수치다.
예전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2014년만 해도 한 번이라도 해외여행을 다녀온 적 있는 20, 30대는 각각 10.3%, 14.8%로 40~50대에 비해 적었다. 그러던 것이 2019년에 들어서 20대 37.8%, 30대 38.7%로 크게 늘어났다. 넷 중 셋은 자유여행을 떠난다. 최근 몇 년 사이 MZ세대에게 나만의 여행이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는 얘기다.
왜 MZ세대에게 여행은 중요할까. 그걸 알기 위해서는 우선 MZ세대가 어떤 여행을 떠나는지부터 보아야 한다. 트렌드모니터가 2019년에 실시한 '해외여행 이후 나, 한국에 대한 인식' 조사를 보자. MZ세대가 여행지를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그 지역의 먹을거리이다.
피터 루거, 이치란, 엘 그롭
먹을거리는 무엇을 상징하는 걸까. MZ세대에게 먹을거리는 ‘새로운 음식’이 아니라 ‘한국 음식이 아닌 것’이다. 이 둘은 분명히 차이가 있다. 여행을 통해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려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현실에서는 못 겪어볼 만한 경험을 하고 싶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많은 MZ세대 여행객의 여행 모습은 의외로 비슷하다.
미국 뉴욕의 음식점 ‘피터 루거 스테이크 하우스’에서는 언제나 한국인 여행객을 찾아볼 수 있다. 심지어 코로나19 사태가 일어난 이후에도 한국인 여행객들은 피터 루거 스테이크 하우스가 영업을 시작하기 전 이른 시간부터 줄을 서 음식을 맛보기를 기다린다. 이런 곳은 세계 곳곳에 있다. 일본 도쿄의 ‘이치란’, 바르셀로나의 ‘엘 그롭’ 같은 곳에는 한국인들이 길게 줄을 늘어선다. 대부분 여행지 정보에 밝고 자유여행을 즐기는 MZ세대다. 이들 MZ세대 한국인 여행객들은 이들 음식점에서 줄을 서 먹을거리를 먹으면서 여행지에서만 할 수 있는 경험을 한다.
MZ세대의 여행에서는 한국에서 해보지 못할 ‘경험’이 제일 중요하다. 스페인에 가면 꼭 와인 투어를 하고, 터키 괴레메에 가면 반드시 열기구를 타보는 이유다. 남과 다른, 나만의 의미를 찾는 것은 크게 관심 없다. 굳이 한국을 떠나서도 한국인이 집결하는 곳으로 향하는 이유는 그것이 한국에서는 할 수 없지만 검증된, 즐거운 경험이기 때문이다. 기성세대가 외국에 나가서도 한 곳에 집결하는 이유는 많은 수가 패키지여행 상품을 구입해 여행을 떠난 탓에 여행사가 회사의 사정에 맞춰 이끌고 다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MZ세대는 열심히 정보를 찾고 비교한 끝에 한 곳으로 모인다.
비슷한 취향을 가진 세대로서 MZ세대가 좋아하는 것은 비슷하다. 좀 더 이국적인 것, 그 지역에서만 경험할 수 있거나 맛볼 수 있는 것. 그런데 세계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이지만, 관광 콘텐츠는 제한돼 있다. 예를 들어 대만의 수도 타이페이 근처에서 ‘좀 더 대만스러운 것’을 찾자면 작은 시골마을 지우펀이나 시골역 스펀 정도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인에게는 필수 관광 코스다.
MZ세대에게 필수 관광 코스는 상당히 중요한데, 다시 말하지만 MZ세대는 ‘남들이 다 가봤기 때문에’ 가는 것이 아니다. 딱 그 곳이 MZ세대가 찾던 곳이기 때문에 간다. 급기야 가는 방법도 정해져 있다시피 비슷하기 때문에, 다시 말해서 가장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을 모두가 선택하기 때문에, 결국은 다 같은 방법으로 같은 곳을 다녀오게 된다. 그리고 이 결과물을 활용해 여행 업계는 다양한 상품을 내놓는다. MZ세대를 겨냥한 여행 업계는 완전한 패키지 여행을 구성하지 않는다. 여행사 ‘마이리얼트립’이 자리 잡은 이유 중 하나가, 필수 관광 코스에 대한 MZ세대의 수요를 파악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경험을 통해 MZ세대가 얻는 것이 무엇일까. 자유다. 단순히 자유로워진다는 느낌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선택의 자유다. 여행이 행복한 이유는 일상에서 미처 다 하지 못할 선택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상에서는 정해진 것들이 많다. 출근을 하려면 경로에서 벗어난 교통수단을 선택할 수 없다. 업무 중에 선택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심지어 여가 활동도 제한적이다. 그러나 여행에서는 더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다. 일부러 시간을 들여 음식점 앞에 대기하고, 평소에는 타볼 수 없는 열기구를 탄다. MZ세대에게 여행이란 단순히 새로운 것을 보고 경험하는 일 이상이다.
이런 점에서 MZ세대 중에서도 여성이 여행을 더 많이 떠나는 이유도 설명할 수 있다. 한국 사회는 여전히 성역할이 고정적인 사회다. 이로 인한 차별은 여전히 만연해 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펴낸 보고서를 보면 ‘성별 업무능력에 대한 일반화’나 ‘성역할 고정관념’ 때문에 차별을 당한 경험이 있다는 여성은 각각 30%가 넘었다. 연령별로는 20~34세 여성들의 유경험 비율이 눈에 띄게 높았다. 이런 환경에서 MZ세대 여성은 자유를 느끼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2019년을 기준으로 지난 1년간 20대 남성의 30%가 해외여행을 다녀올 동안 절반 가까운 45.8%의 20대 여성이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나’의 만족, 여행의 기쁨
MZ세대에게 여행의 가장 큰 의미는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문화를 경험하고 견문을 넓히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내가 느끼는 것이다. MZ세대가 여행을 통해 무엇을 얻는지를 조사해보면 확실해진다. 엠브레인의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여행에 대한 의미 및 인식'을 다시 보면, 여행을 통해 "혼자서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 같다"고 대답한 MZ세대는 다른 연령대에 비해 유독 높은 수치를 보였다. '자신감'을 얻었다는 응답도 비슷한 수치로 나왔다. 즉 MZ세대는 부정적인 현실을 극복하고 자존감을 회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여행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MZ세대가 여행을 다녀오면서 자존감을 회복시킨다는 부분은 중요하다. 자아존중감(self-esteem)은 실제로 여행 경험과 관련이 있다. 여행을 잘 다녀왔다는 사실에는 몇 가지 ‘능력’이 내포돼 있다. 하나는 여행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며 문제를 해결했다는 점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MZ세대는 현실 세계에서 어떤 문제를 주도적으로 설계하고 풀어나갈 경험을 별로 겪지 못했다. 업무 환경은 여전히 위계적이고 업무는 단조롭다. 여행은 일에서 느낄 수 없는 문제 해결 능력에 대한 자신감을 일깨운다.
MZ세대가 여행을 업무처럼 해결한다는 점은 여행업계에서는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창의적인 방법을 제공하면 할수록 눈에 띌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카드가 대한항공카드와 PLCC를 만들고 이용자를 대상으로 ‘마일리지 긴급충전’을 해주는 것이 그 예다. 마일리지를 쌓아 알뜰하게 여행을 다녀오는 것이 MZ세대가 효율적으로 여행을 다녀오기 위해 이용하는 방법이다. 그런데 조금의 ‘부족분’을 채울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유용하게 쓰일 것이다. 현대카드의 서비스는 그 같은 MZ세대의 ‘문제 해결 능력’을 돕겠다고 나선 것이다.
거기다 여행을 다녀오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여행지를 방문할 수 있는 자본, 시간 같은 능력을 스스로, 그리고 주변에 입증할 수 있는 일이 바로 여행이다. 그래서 여행은 언제나 인증샷과 함께 이뤄진다. 아무리 개인적으로 만족감을 느낀다 하더라도 주변에서 이를 인정해주지 않으면 반쪽짜리에 그칠 수 있다. 인증샷은 주변의 인정을 받고, 나 자신에게 새로운 확신을 주기 위한 행동이다.
부연하자면 여행이 소셜미디어와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다는 것은 반복해 언급하지 않아도 모두가 아는 바다. 숙소 예약 서비스 부킹닷컴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응답자의 43%가 여행 중 ‘소셜 미디어에 올릴 사진을 위해 최상의 스타일링을 추구한다’고 답했다. 인증샷이 없으면 MZ세대의 여행도 존재하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전 세계적으로 유행한 욜로(YOLO·인생은 한 번뿐이다) 현상이 한국에서는 유독 여행과 결부된 것도 MZ세대 여행의 특징과 연관시켜 생각해볼 수 있다. 욜로에 관심을 가진 미국, 유럽 등지에서는 욜로가 힙스터(hipster) 현상이나 힙합 문화 등과 연관이 있었지만 한국에서는 소비와 여행이 결부되었다. 인생은 한 번뿐이니 즐기며 살자는 욜로 현상이 유행한 것이 2010년대 중반부터이니 MZ세대의 여행 경험 증가는 이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이다. 이때부터 늘어난 MZ세대의 여행은 스스로의 만족을 위한 것이라고 짚어볼 수 있다.
김서윤 하위문화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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