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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카드·현대커머셜 뉴스룸이 MZ세대의 트렌드 이면에 숨겨진 의미를 사회과학적으로 분석해 MZ세대를 들여다보는 ‘MZ주의’ 시리즈를 선보입니다. 이번 편에서는 K컬처를 만들어낸 서사의 세대, MZ세대가 낭만을 즐기는 이유가 무엇인지 김서윤 하위문화 연구가와 알아봅니다.
*본 글은 외부 필진의 기고로 현대카드·현대커머셜 뉴스룸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낭만’은 MZ세대가 추구하는 가치가 됐다. 낭만이 포함하는 의미는 꽤 광범위하다. 때로 낭만은 아날로그 제품이나 오프라인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을 가리키기도 한다. 팝업스토어를 좇고 피처폰을 구입하는 MZ세대가 이에 속한다. 그러나 우리가 조금 더 주목해봐야 할 낭만의 의미는 감정적인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낭만은 ‘벅차오르는 것’, ‘감동적인 것’이다. TV 예능 프로그램 <최강야구>를 보면서 실패와 난관을 이겨나가는 과정에 몰입한다거나 끝내 우승을 차지한 e스포츠 선수 페이커에 열광하는 식이다. 종종 MZ세대는 낭만적인 상황을 ‘감동 모먼트(moment)’라고 한다. 감동 모먼트에 ‘와이엠아이크라잉(why am I crying)’이라는 댓글을 남기며 눈물 짓는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을 되뇌이며 되새길 만한 문구를 스크랩해둔다.
낭만을 찾는 MZ세대를 손쉽게 분석할 수도 있다. 삭막한 경쟁사회에서 살아가는 MZ세대에게 낭만이란 잠깐 숨을 돌리는 쉼터 같은 것이다. 어릴 때야 ‘오글거린다’고 낭만을 멀리했지만 성장한 뒤에는 그 ‘오글거리는 것’이 더 찾기 어려운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오글거림은 일부러 찾으려 해도 눈에 띄지 않는 귀한 것이 됐다. 그러니 귀하고 드문 것을 찾는 일이 의외로운 것은 아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보자. MZ세대의 낭만은 ‘서사(narrative)’와 관련이 있다. MZ세대가 찾는 낭만은 대개 서사를 가지고 있다. 최강야구와 페이커에 대한 호감은 서사에 대한 호감이다. 감동 모먼트를 느끼기 위해서는 감동의 정점에 이르는 서사가 필요하다. ‘중꺾마’라는 단어를 사용하려면 앞뒤 맥락이 있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MZ세대가 ‘낭만을 찾는다’는 말은 ‘서사를 찾는다’는 말과 동일하게 쓸 수 있다.
K컬처를 만들어낸 서사의 세대
MZ세대가 서사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예는 수없이 많다. K컬처를 메인스트림에 올려둔 것이 MZ세대라는 점을 고려해본다면 MZ세대의 콘텐츠는 대부분 서사를 가지고 있다. MZ세대를 대표하는 TV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이 그렇다.
무한도전은 서사를 쌓아가는 프로그램이었다. 한때 어색한 캐릭터였던 정형돈은 ‘미친 존재감’을 뽐내는 캐릭터로 진화하고 화만 잘 내던 박명수는 ‘1.5인자’의 자리를 만들어낸다. 이는 기획자가 임의로 설정한 것이 아니라 출연진의 활동 속에서 저절로 형성된 것이다. 그러면서 무한도전은 쌓인 서사를 활용한 콘텐츠를 창출한다. 미친 존재감의 정형돈이 내성적인 음악가 정재형과 만나 멋진 노래를 제작하는 식이다.
K팝 아이돌그룹 팬덤은 서사 없이는 유지되지 않는다. 방탄소년단이 지금의 위치에 오르기까지는 나름의 서사가 있었다. 서사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몰입하는 사람이 방탄소년단의 팬이다. 방탄소년단 팬덤의 구호와 같은 ‘Love yourself’는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지 않았다. 이 구호는 방탄소년단이 발매한 앨범과 이를 해석하고 발전시킨 팬덤이 도출해냈다. 대부분의 K팝 콘텐츠는 이런 식으로 오래 이어진 서사를 갖고 있다. H.O.T.가 재결합 했을 때 팬들이 눈물 흘린 이유는 단순히 오랜만에 그들을 목격했기 때문이 아니다. 활동 당시의 서사, 공백기 동안 아이돌과 팬이 각자 쌓아온 서사, 해체·재결합 과정에서 나온 서사 등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감동 모먼트를 만들었다.
그러니 MZ세대는 ‘서사의 세대’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낭만의 세대, 서사의 세대로서 MZ세대는 자신만의 서사를 만든다. 자기자신에게도 낭만을 부여하는 것이다.
MZ세대의 서사는 이전 세대가 말하는 ‘개성’과 비슷한 점이 있다. 나와 다른 사람을 구분할 수 있게 하고 독특한 것으로 돋보이게 하는 점에서 서사는 곧 개성이다. 자신만의 서사를 형성한다는 것은 나를 특별한 것으로 만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여기서 MZ세대가 왜 서사에 몰입하는지를 알 수 있다. MZ세대는 특별한 것을 좋아한다. 한정판을 구하려고 길게 줄을 늘어선 모습은 MZ세대를 상징하는 장면 중 하나다. 다른 것에는 없는 특별함을 추구하는 MZ세대는 서사를 찾는다. 그리고 서사에서 낭만을 발견한다.
진정성 있는 이야기가 중요
MZ세대가 자신을 꾸미는 방식이 낭만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진학을 하든 취업을 하든 자기소개서에서 벗어날 수 없는 MZ세대는 자신의 서사를 만들면서 낭만을 구성한다. 어려움을 극복한 사례를 만들고 진취적인 모습을 꾸민다. 도전적이고 창의적인 MZ세대의 모습은 여기서 나온다. 남들이 가보지 않은 곳을 가고 특별한 경험을 한다.
MZ세대가 다른 세대보다 더 진취적이라고 여겨진다면 바로 이런 점 때문이다. 실제로 MZ세대를 대상으로 조사해본 결과 미취업 청년의 72.8%가 창업을 준비 중이거나 창업할 의향이 있다고 답한 조사 결과도 있다. 그 이유의 대다수가 ‘자유롭게 일하기 위해서’라는 점을 고려해보면 MZ세대의 진취성은 어느 정도 자리 잡은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MZ세대는 일상에도 서사를 부여한다. MZ세대의 대세 콘텐츠로 자리 잡은 브이로그는 멍하니 일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만들어지는 이야기를 감상하는 것이다. 그러니 MZ세대에게는 MZ세대가 제작하는 브이로그의 수만큼 많은 서사가 있다고 봐도 된다.
종합해보면 MZ세대에게 통하는 것은 ‘마음에 와 닿는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것’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낭만적인 이야기를 제공해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중요한 것은 진정성이다. ‘가치소비’, ‘선한 영향력’ 같은 트렌드가 MZ세대의 키워드가 됐다는 사실을 떠올려 보자. MZ세대는 공인(公人)에 대한 판단을 내릴 때에도 태도와 진정성을 따진다. 과거의 학교폭력 문제가 유독 MZ세대에게 민감하게 다가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진정성 있는 낭만적인 이야기’, MZ세대에게 다가가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다.
김서윤 하위문화 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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