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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라는 에세이가 MZ세대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떡볶이는 전 세대에 걸쳐 사랑받는 음식이 분명하지만, MZ세대에게는 학교 앞 분식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 무엇인 모양입니다. 그것은 추억이자, 위로이고, 사랑이자, 치료제이고, 경험이자, 취향을 넘어서는 그 어떤 것이라고 하는데요. 현대카드∙현대커머셜 뉴스룸이 선보이는 MZ 설명서 ‘MZ주의’에서 떡볶이에 얽힌 MZ의 서사를 한번 들여다보시죠.
MZ세대를 사로 잡은 음식 한 가지만 얘기하자면, 떡볶이다. 지난 2021년 글로벌빅데이터연구소가 2020년 소셜미디어와 온라인 홈페이지 21만 곳의 데이터를 추려본 결과, 온라인 상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한식 메뉴는 떡볶이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게시물 수만 382만건에 달했는데, 떡볶이 관련 게시물의 절반 이상(51.6%)은 20대가 쓴 것이었다. 2018년 대학내일20대연구소가 20대를 상대로 조사한 내용도 있다. 이 조사에서 20대의 34%는 떡볶이가 ‘영혼을 담은 음식’이라고 답했다.
자연히 ‘왜’라는 질문이 떠오른다. 답을 찾기는 어렵지 않다. 떡볶이의 속성을 떠올려보자. 떡볶이는 매우 자극적인 매운맛에 고탄수화물 식품인 떡으로 이뤄진 음식이다. 사실 매운맛 음식이나 고탄수화물 식품은 전통적으로 ‘스트레스’와 관련이 있다.
스트레스와 매운맛의 상관 관계
어떤 경우에 우리가 고열량 음식을 찾는지는 논문 ‘폭식경향이 있는 대학생의 위험감수 성향이 고열량 음식 섭취에 미치는 영향’에 설명돼 있다. 간단히 말하자면 고열량 음식을 먹는 것은 ‘보상’의 문제와 관련이 있다. 고열량 음식을 먹음으로써 생길 ‘위험’보다 ‘보상’이 더 크다고 생각할 경우에 우리는 고열량 음식을 찾는다는 것이다.
고열량 음식을 먹을 때의 위험 요소에는 보통 체중 증가와 같은 건강 상의 문제, 영양불균형 등이 있다. 보상은 심리적인 만족감이다. 자극적인 고열량 식품인 떡볶이는 위험을 상회하는 만족감을 준다. 바로 ‘스트레스 해소’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매운맛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진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 연관 관계에 대해서는 전중환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의 논문 ‘매운 맛을 선호하게 하는 특수한 심리적 적응’이 도움이 될 것이다.
전중환 교수는 진화심리학적으로 사람들은 음식이 일으키는 식중독 같은 질병을 피하기 위해 매운맛을 선호한다고 설명한다. 고추가루 같은 매운 향신료가 음식이 빨리 상하게 하는 것을 막거나 음식의 상태를 가려주기 때문에 음식을 더 편하게 섭취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특히 스트레스를 받으면 ‘코르티솔(cortisol)’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되어 면역기능이 떨어지게 된다. 면역기능이 떨어지면 같은 음식을 먹더라도 음식 속의 세균 때문에 질병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더 안전해보이는 음식, 다시 말해 향신료로 덮여 있어 음식이 덜 상했을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는 매운맛 음식을 선호하게 된다는 것이 전 교수의 설명이다.
다시 말해 스트레스를 받으면 스트레스에 대처하기 위해 매운맛 음식을 찾게 되고 먹고 나서 ‘좀 더 안전해졌다’고 안심하게 되는, ‘스트레스 해소’의 과정을 겪게 된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겪는 통증, 자극 같은 것들은 흥분을 가져올 뿐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왜 하필 MZ세대가 특별히 더 떡볶이를 찾는지가 설명이 되지 않는다.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는 MZ세대의 ‘경험’을 들춰봐야 한다.
학교 앞 분식집에서 시작된 경험
지금의 MZ세대가 어린 시절 학교를 다니던 1990~2000년대만 하더라도 삶의 모습이 비슷비슷했다. 이는 통계청이 5년마다 실시하는 인구주택총조사 결과에서 드러난다. 2015년 조사에서 30대 미혼인구 비율은 44.2%나 됐다. 30대 5명 중 2명이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불과 15년 전인 2000년에는 그 비율이 19.2%였다. 5명 중 1명만이 결혼을 하지 않았다. 1990년에는 9.5%에 그쳤다. 10명 중 1명이 미혼이었다. 1990년의 대부분 30대는 가정을 꾸려 살아가고 있었다는 얘기다. 이 때의 사람들은 대개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삶의 과정을 밟았다.
구체적인 생활 양상도 크게 다르지 않아 학생들의 학교 생활도 비슷비슷한 모습이었다. 학교 앞에는 으레 ‘문방구’가 몇 곳, 떡볶이를 파는 분식집이 꼭 있었다. 수업이 끝나면 친구들과 어울려 막 만들어낸 떡볶이를 먹으며 수다를 떨던 것이 평범한 일상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아이부터 어른까지 비슷한 삶의 기억을 공유할 것이라 기대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취향’만 하더라도 매우 세분화되어 있다. 예전에는 취향을 즐기는 방법도 비슷했다. 팝 음악을 좋아하면 라디오를 켜서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듣곤 했다. 지금은 팝 음악을 즐기는 방법도 다양하다. 직접 가수와 소셜미디어를 통해 소통할 수도 있고 자신이 좋아하는 팝 음악을 연주하거나 노래 불러 유튜브에 영상을 공유할 수도 있다. 개개인의 취향을 존중하라는 뜻에서 생겨난 신조어 ‘취존’은 이런 분위기를 잘 반영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흔히들 MZ세대는 ‘취존’이 중요해 각자의 삶을 즐기는 세대로 알려져 있지만 바로 10년 전 이들이 살아온 ‘경험’은 그렇지 않았다. 아이러니함은 MZ세대를 설명하는 특징이기도 한데, 개인주의자들로 알려진 MZ세대가 알고 보면 집단주의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자라났다는 사실부터 그렇다. MZ세대가 자라나던 시기 학교는 매주 운동장에 모든 학생을 모아 ‘조회’를 가졌고 엄격한 학교 규칙을 따라야 했다. 그렇게 자라난 MZ세대는 지금 가장 개인적인 세대로 지목받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에 이르기까지 MZ세대들은 ‘공정한 성과급 지급’을 요구하며 기업을 상대로 직장인이 주로 사용하는 커뮤니티 앱 ‘블라인드’ 등을 통해 자신들의 의견을 관철해낸 적 있다. 당시 많은 전문가들은 “MZ세대는 개인주의와 합리성이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라고 말하는 등 MZ세대의 개인주의적인 측면을 부각시켰다. 그러나 MZ세대는 완전히 개인주의적이지 않다. MZ세대는 집단주의적인 측면을 보이기도 하고 민족주의에 경도되기도 한다. 단지 동질한 사회에서 자라나 분절된 사회에 적응하고 있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MZ세대에게 ‘나’만큼 중요한 것은 ‘동질감’이다. 떡볶이는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좋은 사례다.
보통 떡볶이는 나눠 먹는 음식이다. 같은 그릇에서 떡을 건져올려 먹는 떡볶이는 홀로 먹기보다는 함께 먹는 것이 더 익숙한 음식이다. 떡볶이를 먹으면서 얻을 수 있는 감정, 예를 들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일 또한 함께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경험들이 쌓여 ‘떡볶이를 먹으면 기분이 좋다’는 암묵적인 문화적 동질감을 만들어낸 것이다. 한동안 서점의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던 책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는 문화적 동질감을 잘 활용한 책이다.
책을 쓴 작가 백세희씨는 2019년 1월3일 온라인 언론 ‘오마이뉴스’를 통해 직접 책을 쓰게 된 계기를 밝힌 바 있다. 그 중 “생각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이 책을 읽고 공감하고 때로는 눈물 흘리며 나와 쌍둥이 같은 경험이 담긴 메시지를 내게 보내왔다”는 구절을 보면 이 책의 제목에 붙은 ‘떡볶이’는 ‘공감’을 대표하는 키워드로 붙여낸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경험으로서 떡볶이는 긍정적인 감정들을 대변한다. 유희재 연세대 언어정보연구원 연구원이 쓴 논문 ‘한국에서의 ‘매운맛’의 담화적 의미 연구’를 보면 대강 짐작이 간다. 이 논문에서는 떡볶이보다 좀 더 광범위한 매운맛 음식에 대해 연구하기는 했지만 떡볶이가 매운맛을 대표하는 음식이라는 점을 고려해보면 연구 결과를 연결해볼 만하다.
유희재 연구원은 음식으로서 매운맛과 관련 있는 키워드를 죽 정리했다. 매운맛은 ‘스트레스’라는 단어를 제외하고는 거진 중립적이거나 긍정적인 단어와 묶였다는 것이 유 연구원의 연구 결과다. 예를 들면 사랑, 가족, 최고, 특별, 여행 같은 단어다. 심지어 매운맛은 통각을 통해 느끼는 ‘고통’임에도 불구하고 먹고 싶은 맛으로 인식돼 긍정적인 맛으로 인식된다. 이에 따르면 매운맛, 즉 떡볶이를 먹으러 다녀오는 일은 긍정적인 감정을 나누는 일이다. 떡볶이를 먹으러 가자는 제안은 ‘스트레스를 해소하자’ ‘즐거움을 느껴보자’는 것과 같다.
로제 떡볶이가 유행하는 이유
왜 MZ세대가 떡볶이를 좋아하는지를 알게 된다면, MZ세대에게 떡볶이가 갖는 영향력 또한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떡볶이를 음식 자체로만 보지 않고 MZ세대를 이해하는 키워드로 읽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떡볶이의 변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떡볶이는 MZ세대의 취향에 맞게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2020년대 들어서 가장 인기 있는 떡볶이는 ‘로제 떡볶이’다. ‘로제 소스’는 원래 서양식에서 쓰는 소스다. 토마토 소스에 크림 소스를 섞어 분홍빛이 난다는 점에서 ‘로제(rose)’라는 이름이 붙었다. 지금 유행하는 ‘로제 떡볶이’는 이 로제 소스에 매운맛을 가미해 먹는다. 소스 자체만으로도 배가 부를 정도로 묵직한데 매운맛까지 강조돼 있다. 여기에 떡뿐 아니라 당면 같은 ‘사리’를 더하는 것이 보통이다. 고열량에 자극적인 맛을 추구하는 셈이다.
로제 떡볶이의 유행은 지난 1~2년간 식품업계를 휩쓴 중국식 매운맛 ‘마라(麻辣)’의 연장선상에 있다.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의 책 ‘백년식사’를 읽어보자. 원래 매운맛은 한국 음식에 없던 맛이다. 그러던 것이 외래 향신료 고추의 도입과 더불어 한식에 접목되었다가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만나 분화되기 시작했다. 중국 동포들이 한국 사회에 대거 자리잡기 시작하면서 ‘마라’에 익숙해진 것이 그 한 예다.
마찬가지로 로제 떡볶이는 서양식에 익숙한 MZ세대들이 만들어낸 ‘퓨전 음식’이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해외 여행이 멈추다시피한 시기에 유행하기 시작한 데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이국적인 맛과 익숙한 맛을 섞어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경험 역시 기존의 떡볶이가 주던 것처럼 즐겁고 설레는 것이다. 떡볶이를 통해 MZ세대는 즐거움 또한 확장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그러니까 떡볶이는 MZ세대에게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매운맛 음식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어릴 적의 동질한 경험을 떠올리게 하는 키워드이자 즐거움을 나누는 먹을거리다. 코로나19 사태로 제한되어 있는 경험의 폭을 넓혀주는 소재로써도 떡볶이는 계속해서 MZ세대의 ‘동반 음식’이 되어줄 것이다.
김서윤 하위문화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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