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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카드·현대커머셜 뉴스룸이 MZ세대의 트렌드 이면에 숨겨진 의미를 사회과학적으로 분석해 MZ세대를 들여다보는 ‘MZ주의’ 시리즈를 선보입니다. 이번 편에서는 구분되는 관계맺기에서 비롯된 MZ세대의 더치페이 문화에 대해 김서윤 하위문화 연구가와 알아봅니다.
*본 글은 외부 필진의 기고로 현대카드·현대커머셜 뉴스룸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MZ세대에게 더치페이(나눠내기)는 이제 일상적인 것이 되었다. 모임을 가진 후 비용을 더치페이한다고 답한 사람이 10명 중 9명이 넘는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친구 혹은 직장동료와 자주 더치페이를 한다는 사람이 과반수가 넘었다는 결과도 있다. 이전 세대에서는 모임을 마무리하는 말이 ‘내가 살게’라면 MZ세대에서는 ‘송금해 줘’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다.
왜 MZ세대에서는 더치페이가 일반화 되었을까. MZ세대가 합리적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은 지나치게 단순하다. 그보다는 더치페이가 MZ세대의 관계맺기와 관련이 있다고 보는 것이 더 적합할지도 모른다. MZ세대는 종종 관계에서 ‘부담’을 느낀다.
MZ세대는 상대와 분명히 구분되는 관계맺기를 원한다. 한 조사에 따르면 10명 중 4명에 가까운 MZ세대가 ‘기존에 잘 알고 지냈던 사람들과의 관계가 부담스럽다’고 답했다. ‘한두 번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가 더 편한 것 같다’는 MZ세대도 10명 중 3명이 넘었다. 회식 자리에서 직장동료와 속 깊은 이야기를 터놓기보다 차라리 낯선 사람을 만나 영화 한 편 보고 헤어지는 만남을 선호한다는 얘기다. 실제로 이런 심리를 활용한 서비스도 늘고 있는 추세다. 영화나 등산 같은 취미활동을 즐기기 위해 일회성 모임을 갖도록 주선하는 서비스다.
속 깊은 이야기를 피하는 이유가 ‘나’에 대해 드러내기 싫어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MZ세대는 자신을 드러내기를 좋아한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거리낌 없이 마음 속 이야기나 일상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을 생각하면 MZ세대가 내 이야기를 하기 싫어 진지한 자리를 피한다는 설명은 맞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대신 MZ세대는 남의 이야기를 듣기 싫어한다. 주의 깊게 듣는 경청은 원래 상당한 기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MZ세대는 다른 사람에게 그만큼의 기력을 소모하는 일을 두고 ‘아깝다’고 생각한다. ‘나 자신에게 쓸 기력도 부족하다’는 것이 MZ세대가 자주 하는 말이다. 동시에 MZ세대는 남의 속 깊은 이야기를 듣게 됨으로써 가져야 하는 배려, 책임감 같은 의무감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한다.
이를 두고 MZ세대가 이기적이라고 지적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MZ세대는 이기적이지 않다. 서울시의 조사 결과를 보면 자원봉사활동을 하는 서울시민의 절반이 20~30대 청년층이다. 중장년층의 참여는 16.7%에 그쳤다.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 의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MZ세대도 4명 중 3명에 달했다.
나만의 장벽을 두르는 MZ세대
MZ세대가 느슨한 관계를 선호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영역’ 때문이다. MZ세대는 영역을 침범받고 침범하는 데 민감하다. 대개 MZ세대의 정체성은 일관적이지 않다. 채식주의자이면서 골프를 즐기고 아이돌 그룹의 팬일 수 있다. 동시에 여러 가지의 취미를 가지면서 그때마다 다른 정체성을 가질 수도 있다. 스포츠 클럽에서는 열성적인 참여자이다가 회사에서는 내성적인 직원이 되지만 독서모임에서는 날카로운 비판자가 될 수 있다. MZ세대는 자신 안의 다양한 ‘캐릭터’를 영역을 구분해 가지고 그때그때 꺼내어 살아간다.
이렇게 영역이 중요해진 이유는 MZ세대가 가지는 한 가지 특성에 있다. 모순되게도 MZ세대는 하나의 세대로 묶이지 않는다. MZ세대를 관통하는 문화가 없다는 이야기다. 기성세대에게는 ‘공통 문화’가 있었다. X세대의 경우 서태지와 아이들, 삐삐와 워크맨, 소비지향적 신세대 같은 것들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스마트폰은 모든 세대에게 상징적인 기기다. BTS는 가장 인기 있는 스타일지언정 MZ세대를 서태지와 아이들처럼 하나로 묶어내지 못한다.
공통된 문화가 없는 청년세대로서 MZ세대는 각자의 문화적 영역을 가지고 살아간다. ‘모든 MZ세대는 무엇인가의 팬이다’는 문장에서 읽히듯 MZ세대의 영역을 존중하는 일은 스스로에게도,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도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된다.
영역을 지키는 MZ세대를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개인화된 세대라고 말할 수 있다. 개인주의와 개인화는 다르다. 개인주의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자유와 평등이다. 여기서 자유란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존재한다. 개인주의 안에서 각 개인은 수평적인 관계를 맺기 때문에 서로 존중하고 연대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개인화는 개인주의처럼 연대하지 않는다. 서로에게 불편함을 끼치지 않으려는 것은 물론 다른 사람이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도 용인하지 않는다. 일부러 무관심한 태도를 취함으로써 거리를 둔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해가 되지 않음을 표현하고 다른 사람이 나에게 해를 끼치지 못하게 하도록 방어하는 것이다. 그러니 개인화된 사람은 모르는 사람과 말을 섞지 않는다.
개인화된 MZ세대의 성향을 보여주는 사례들이 있다. 보통 자영업자들은 단골 손님에게 친근하게 대하곤 한다. 그러나 MZ세대는 단골 가게 주인의 관심을 즐기지 않는다. 일부러 벌려둔 거리를 훌쩍 좁혀 다가오는 주인을 부담스럽다고 생각한다. 주인과 나누는 친근한 인사, 가벼운 대화 같은 것은 MZ세대에게 다소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 말하자면 개인화된 MZ세대는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장벽을 두르고 살아간다. 장벽을 넘어 영역을 침범하는 것은 나에게도, 상대에게도 무례한 일이다.
주고받기가 아니라 빌려갚기
관계에 부담을 느끼기 싫다는 MZ세대의 말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상대방을 이해하기 싫다는 것이 아니라 영역을 존중하고 분명히 구분하는 것이 좋다는 의미다.
MZ세대의 생활 거의 모든 영역에 구분하기는 일상처럼 자리 잡고 있다. 이를테면 MZ세대끼리의 식사자리에서는 자주 각자 먹기가 이뤄진다. 각자 좋아하는 음식을 시켜놓고 한입거리 정도만 나눠 먹는 것이다. 이런 식사자리에서는 각자의 몫을 각자가 계산하는 더치페이가 자연스러워 보인다. 각자의 취향, 기호를 존중하면서 각자가 먹은 만큼만 값을 치르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누군가가 ‘내가 낼게’라고 나선다면 그저 ‘고맙다’고만 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만약 내 취향대로 고른 음식이 상대방의 취향보다 비싼 것이었다면? 호의를 그대로 받아들이기 마냥 편할 수가 없는 것이다.
MZ세대가 겪는 가장 큰 고민 중 하나, 축의금 문제 또한 더치페이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 요즘 MZ세대 사이에서는 경조사에 낼 비용을 어떻게 책정하는지가 토론거리가 되곤 한다. 기성세대의 축의금 또는 조의금이 ‘곗돈’과 같은 의미로 쓰였다면 요즘 MZ세대에게 이런 돈은 ‘기브 앤 테이크’로 받아들여진다. 경사나 조사에 서로 돕고 의지할 만한 돈을 주고 받는 일이 아니라 언젠가 갚거나 돌려받을 돈을 주고 받는 개념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MZ세대의 더치페이를 합리적이거나 이기적이라고 단순하게만 생각할 수 없다. 더치페이는 MZ세대의 관계맺기 방식을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행동양식이다.
김서윤 하위문화 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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