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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세대를 이해하고 소통하고 싶은 기성세대가 질문하고 Z세대가 명쾌한 답을 제시하는 ‘Q&Z’. 이번 편에서는 유명 맛집이나 팝업스토어에 입장하기 위해 기꺼이 오랜 시간을 투자하는 Z세대의 웨이팅 문화에 대해 김서윤 하위문화연구가와 알아봅니다. 사생활 보호를 위해 일부는 가공된 사례로 구성했습니다.
*본 글은 외부 필진의 기고로 현대카드 현대카드·현대커머셜 뉴스룸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베이글 먹자고 2시간 웨이팅, 이게 맞나요?
Q. 얼마 전 회사 후배들과 저녁식사 약속을 잡았습니다. 후배들이 가보고 싶은 유명 ‘베이글 맛집’이 있다기에 가보자고 했지요. 그런데 그 맛집이 평일 저녁에도 1~2시간은 기다려야 입장할 수 있는 ‘웨이팅 맛집’이더라고요. 예약도 되지 않아 퇴근 후 후배들을 만나 한참을 기다렸습니다.
투덜거리면 안 될 것 같아 기어코 기다려 입장하긴 했습니다. 배가 고픈 저는 허겁지겁 음식을 먹는데, 후배들은 십수분간 음식 사진 찍는 데 한참을 열중하다가 그제서야 먹기 시작하더군요. 음식들이 꽤 맛있어 맛집이었던 것은 맞습니다만, 이렇게까지 기다려서 먹어야 하나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요즘 젊은 친구들은 맛집이나 팝업스토어에서 기다리는 일을 무척 잘 하나 보더군요. 왜 그럴까요?
내적 만족감이 그 무엇보다 중요해
Z.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백화점, 더현대 서울에서 최근 인기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의 팝업스토어가 열렸습니다. 25살인 A씨도 그 자리에 있었죠.
“첫째 날에는 사람이 너무 많을 것 같아 둘째 날 아침 일찍 서둘러 나갔어요. 경기도 광주에서 여의도까지 가는 길이 솔직히 쉽지는 않았어요. 겨우 아침 8시에 도착해 대기했는데 입장한 것은 오후 5시였습니다. 원하던 굿즈를 다 사지는 못했지만 팝업스토어에 들른 것 자체에 만족했어요.”
그는 ‘웨이팅 달인’입니다. 강원도 강릉에서는 유명 카페에 가려고 4시간을 기다린 적도 있다고 합니다. 웨이팅은 외국에서도 이어집니다. 일본 도쿄에 가서 소금빵 하나 사려고 한 시간 기다리기도 했답니다.
어떤 이에게는 A씨의 이런 모습이 소모적인 일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A씨의 부모님은 A씨에게 ‘쓸데 없이 시간을 낭비하는 짓’을 하지 말고 취업 준비에 몰두하라고 매번 잔소리하신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계속 웨이팅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는 ‘내적 만족감’을 위해서입니다. Z세대가 좋아하는 것에 몰두할 줄 알고 그에 만족감을 줄 수 있는 것을 좇는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제는 마니아의 다른 이름인 ‘덕후’와 행동을 뜻하는 ‘질’을 합성한 ‘덕질’이라는 단어도 낯설지 않습니다. ‘덕질’하는 Z세대는 관련된 것을 소유하고 경험하려고 합니다. 좋아하는 것으로만 그치지 않고 경험해 직접 느끼려고 하는 이들을 두고 ‘경험주의자’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사실, 웨이팅 자체가 Z세대의 문화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Z세대는 다른 연령대에 비해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웨이팅을 기꺼이 감수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웨이팅 문화인 ‘오픈런’을 주도하는 연령층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한 시장조사업체 조사에 따르면 20대의 94.7%가 오픈런을 직접 경험해본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40대(38.6%)·50대(5.5%)와는 극명한 차이를 보이죠.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 전국 만 19~59세 성인남녀 1000명 대상 조사)
최근 젊은층 사이에 등장한 ‘0차 문화(인기 맛집이나 카페 등에 현장 대기예약을 걸어놓은 후 다른 곳으로 이동해 시간을 보내는 새로운 웨이팅 문화)’에서도 웨이팅을 즐기고 기다리는 시간 조차 효율적으로 사용하려는 Z세대의 특성이 확인됩니다.
그런 측면에서 웨이팅은 경험주의자 Z세대가 보여주는 모습 중 하나입니다. 웨이팅을 꺼리지 않는 Z세대에게 경험해 얻는 만족감은 수고로움, 지루함 같은 감정을 앞섭니다. 만족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합니다. 웨이팅이나 치열한 티켓팅, 비싼 비용 같은 것은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습니다. 이런 Z세대는 우리 사회의 많은 경험을 주도합니다.
만족감을 얻기 위해 삶을 편집하는 방법
지난해 해외여행을 가장 많이 다녀온 세대 중 하나가 Z세대입니다. 프로야구의 관중의 주도권은 Z세대에게 넘어 갔습니다. 식문화며 공연문화 등에서 Z세대의 영향력은 매우 큽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Z세대가 경험하면서 얻는 만족감은 무엇을 충족시키는 것인지, 보다 근본적인 질문입니다.
Z세대는 소셜미디어와 함께 자랐습니다. 소셜미디어가 탄생하던 시점에 성인이 되어버린 기성세대와 달리 Z세대는 청소년기에 소셜미디어를 접한 첫 세대입니다. 소셜미디어의 가장 큰 속성 중 하나는 비교입니다. 소셜미디어를 하게 되면 ‘적어도 남들만큼’은 살고 싶다는 욕구가 만들어집니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사는지, 무엇을 먹고, 무엇을 하며 노는지 쉴새없이 접하게 되고 자신의 그런 모습을 보여주면서 활동을 이어나갑니다.
그런데 그게 과시적인 것은 아닙니다. 얼마 전부터 헬스장에 다니기 시작한 28살 B씨의 목표는 ‘여름 휴가에 비키니를 입고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는 것’입니다. 베트남 푸꾸옥으로 여행을 떠날 계획인데 풀빌라 수영장에 반쯤 몸을 담그고 ‘인생사진’을 찍을 계획에 들떠 있습니다.
다만 B씨는 다른 사람의 평가에는 별 관심이 없다고 합니다. ‘좋아요’가 많이 달리면 좋겠지만 애초에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적기 때문에 큰 기대는 없습니다. ‘자신의 만족’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저는 B씨의 만족감이 어디서 비롯되는지 관찰해봤습니다. 인생사진을 찍고 남에게 딱히 보여줄 생각도 없는데 왜 만족해한다는 것일까요. 인생사진이라는 한 장의 사진에는 자신의 삶―충분히 만족할 만한 몸(일반적인 기준으로 봤을 때), 휴가를 떠날 수 있는 여유(보통 휴가를 떠난다고 말할 때의 기준에 맞게)ㅡ같은 것이 녹아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B씨는 인생사진을 찍고 나서 내면화된 타인의 기준으로 자신의 삶을 평가할 것입니다. 만족스럽다는 감정은 ‘내가 평가하기에 만족스럽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소셜미디어에는 편집된 삶의 단면이 주를 이룹니다. 그 단면을 만들어내 만족감을 얻기 위해 삶을 편집하는 과정도 필요하죠. 그 과정 중의 하나가 바로 웨이팅이고 티켓팅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내가 만족할 때까지!
간혹 기성세대들 중에는 웨이팅을 두고 ‘몰개성’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여튼 유행한다는 것은 다 좇아다니고, 쯧쯧”이라는 식으로요. 그러나 웨이팅, 즉 삶을 편집하는 과정을 그렇게 매도할 수는 없습니다. 타인의 시선을 내면화하고 자신을 평가하면서 삶을 편집하는 것 자체가 ‘자기계발’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삶을 만족할 수 있는 수준까지 끌어올리려 노력하고, 무엇 하나를 좋아하게 되면 ‘끝을 봐야’ 만족하는 Z세대가 많습니다. 드라마를 보고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잠드는 대신 마음에 들었던 부분을 평가하고 자신의 만족을 표현해야 직성이 풀립니다. 나아가 드라마를 통해 얻게 된 흥미를 충족시켜야 합니다. 웨이팅을 해서라도 자신의 갈증을 해소시켜야 만족합니다.
그러니까 웨이팅을 즐기는 Z세대는 부지런합니다. 여행을 다녀올 때도 (내가 평가하기에 좋은 여행이었다고 생각할 때까지)만족감을 충족시켜 줄 수 있게, 밥을 먹을 때도 (맛있거나 분위기가 좋아) 만족스럽게 해야 합니다. 그런 생각으로 오늘도 맛집 앞에서, 팝업스토어 밖에서 웨이팅합니다.
김서윤 하위문화 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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