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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공간을 만들고, 공간은 사람을 만든다.”
윈스턴 처칠의 말을 굳이 거론하지 않아도 공간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다들 알고 있다. 공간 중에서도 특히 직장인들이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무 공간은 직장인의 삶과 생각, 행동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이를 반영하듯 세계적인 기업들은 임직원들의 창의성과 업무 성과를 높이기 위해 기존 전통적인 격자형 사무공간에서 탈피해 보다 혁신적인 방식의 공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출처=gettyimagesbank.com
대표적인 예로 애플은 임직원의 창의적 환경 조성을 위해 캘리포니아 쿠퍼티노에 한화 6조원을 들여 애플파크를 만들었다. 최첨단 사무공간을 갖춘 것은 물론, 곳곳에 위치한 카페들은 동시에 앉을 수 있는 인원만 5,000명에 이를 정도로 임직원 간 소통에 힘을 쏟았다.
캘리포니아 맨로파크에 있는 페이스북의 신사옥은 세계 최대의 원룸으로 유명하다. 페이스북은 수평적인 조직 문화와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사무실의 구분이 없는 원룸형 사무 공간을 만들었다. CEO 마크 저커버그를 비롯한 모든 임직원들이 동일한 사무공간과 워크 스테이션을 사용한다.
단순 골조 변화가 아닌 콘텐츠의 변화에 집중2019년 트렌드를 전망한 <트렌드코리아 2019>(김난도 외, 미래의창)에도 등장하듯이 공간이 합쳐지고, 새롭게 바뀌고, 새로운 생명을 얻는 ‘카멜레존’의 사례는 국내외 많은 곳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이 되었다. 최근 앞서가는 기업들은 이러한 변화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공간에 '콘텐츠'를 담고 있다. 단순히 아름다운 사무 공간을 만드는 것이 아닌 그 회사만의 생각을 공간에 투영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공간에 반영되고 있는 것은 기업들의 가치와 기업문화이다. 많은 회사들이 권위주의를 버리고 수평적인 기업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를 위해 직급을 뛰어 넘어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거나, 직장 내 위계에 따른 권위적인 문화를 타파하기 위해 캠페인을 펼치는 사례는 흔한 일이 되었다. 심지어는 직급 및 직책 대신 영문 이름을 부르거나 이름 뒤에 ‘님’을 붙여 부르는 방식을 도입하기도 한다. 공간 전문가들은 이러한 소통 방식의 변화를 최대한 빠르게 앞당기고 효과를 높일 수 있는 방법으로 공간의 변화를 추천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대기업들의 사무 공간은 매우 획일화되어 있었다. 임원에게는 별도의 임원실이 주어졌으며, 팀장, 부장 등 부서장이 그 부서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위치에 앉고 그 앞에는 직급이 높은 순으로 순서대로 앉는 방식이었다. 신입사원은 부서장과 대화조차 하기 힘든 구조였으며, 상하관계를 중시하는 '위계 조직(Rank-driven organization)'에 최적화된 사무 환경이었다.
조직의 특성에 따른 사무 환경의 배치 (출처=blog.fursys.com)
하지만 최근의 기업들은 매우 빠르게 변하고 있다. 금융과 IT가 합쳐지고 있으며, 산업은 서비스와 통합되고 있다. 물류와 유통의 구분이 없어졌으며 더 이상 어느 산업군에 위치하는지, 경쟁자가 누구인지를 이야기하는 것은 의미가 없어졌다. 각자가 자신의 역할에 따라 책임감을 가지고 빠른 의사결정을 하고 실행하는 것이 가장 중요해졌다. 사회에서 원하는 조직이 '위계 조직'에서 '역할 조직(Role-driven organization)'으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공간 또한 이러한 환경의 변화에 맞춰 가고 있다. 모든 구성원들에게 동일한 공간을 제공하고 파티션을 없애 임직원들이 직급에 따른 거부감 없이 쉽게 소통할 수 있도록 하고, 책상 배치를 자유롭게 해 신규 업무에도 빠르게 대응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과거 획일화된 책상 배치, 높은 파티션으로 대변되던 우리 사무 환경이 변하고 있는 것이다.
사무 공간의 변화, 임원들과의 대화 많아 진 것이 가장 큰 특징국내에서 사무 환경에 가장 많은 변화를 꾀하는 기업 중 하나는 현대카드∙현대캐피탈(이하 현대카드)이다. 현대카드는 인공지능(AI), 블록체인, 데이터 기술 등을 기반으로 한 '데이터 사이언스 컴퍼니(Data Science Company)'를 지향하며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
현대카드는 최근 여의도 본사 1관 8∙9층의 리노베이션을 완료했다. 지난해 7월 완료한 1관 3∙4층 애자일 오피스에 이은 두번째 사무 공간 리노베이션이다. 지난 번의 리노베이션이 디지털 조직을 대상으로 진행된 것과 달리 이번에는 경영지원, 브랜드, 재경본부 등 일명 ‘백 오피스(Back Office, 지원조직)’가 대상이다.
현대카드∙현대캐피탈은 최근 수평적 기업문화와 긴밀한 협업을 위해 여의도 본사 사무공간의 리노베이션을 진행했다.
(출처=현대카드∙현대캐피탈 뉴스룸)
현대카드는 지난 해와 마찬가지로 수평적 기업문화를 조성하고 긴밀한 협업을 촉진하기 위해 파티션을 배제하고, 다양한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도록 책상 배치를 유연하게 했다. 회사의 의도는 임직원들의 행동 변화로 나타나고 있다. 가장 큰 변화는 사무 공간에 활기가 넘친다는 것이다. 간단한 회의가 필요하면 굳이 회의실까지 갈 필요 없이 높낮이 조절이 가능한 책상을 올리고 서서 의견을 교환한다. 책상 옆의 화이트 보드를 활용해 즉석 프리젠테이션을 펼치기도 한다. 이 공간의 모든 벽은 화이트 보드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러다 보니 적은 수의 직원이 회의를 할 때에 회의실을 활용하는 횟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임원들에게도 일반 직원과 동일한 사무 공간이 제공되었다. 실장의 옆자리에는 사원, 대리가 앉아있다. 사원, 대리와 임원들의 커뮤니케이션이 예전보다 훨씬 더 많아진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현대카드 기업문화팀 박혜림 대리는 기존 사무공간과의 차이에 대해 “무엇보다도 임원들과의 대화가 많아진 것이 가장 큰 특징”이라고 꼽았다.
지난해 8, 9층에 앞서 오픈한 3·4층 애자일 오피스에 대한 임직원의 피드백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기도 했다. 우선 엘리베이터홀과 연결된 일부 업무 공간을 휴게공간 등 공용 공간으로 바꿔 업무의 노출을 꺼려 하는 직원들의 요구를 반영했다. 또한, 회의실에 무빙월(Moving Wall)을 도입함으로써 원래 5~6명을 수용하는 회의실을 최대 20여명을 수용하는 회의실로 쉽게 바꿀 수 있게 했다. 더불어 디지털 부문에 특화되었던 테스트룸, 부문 내 내부 계단, DJ부스 등은 지원부서의 특성을 반영해 제외했다. 현대카드 정상욱 Infra팀장은 “최근 기업 사무 공간의 특성은 소통을 강화하고 업무의 효율을 높이는 방향”이라며, “8∙9층의 반응을 면밀히 살펴 다른 사무공간에 다시 반영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