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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의 장수들은 혼자서도 가뿐히 돌을 들어 적에게 던졌지만, 요즘 젊은이들 같으면 두 명이서도 들지 못할 정도로 나약하다.”
- 호메로스 〈일리아스〉
“요즘 대학생들 정말 한숨만 나온다. 선생들 위에 서고 싶어하고, 선생들의 가르침에 논리가 아닌 그릇된 생각들로 도전한다.”
- 알바루스 펠라기우스 〈대학생들에 대한 개탄〉
고대 그리스의 시인 호메로스에게도, 14세기 스페인의 프란체스코회 사제 알바루스 펠라기우스에게도, ‘요즘 애들’은 하나같이 버릇 없고 나약하게만 여겨졌다. 반면 ‘신세대’는 물론 ‘X세대’에게도, 새로운 세대는 기성 세대를 보며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95년 방영된 청소년 드라마의 제목은 ‘신세대 보고서: 어른들은 몰라요’였고, 광고에서 처음으로 ‘X세대’라는 용어를 사용해 화제가 된 남성용 화장품 ‘트윈엑스’의 광고 카피는 ‘나를 알 수 있는 건 오직 나!’였다.
이렇듯 ‘자기 밖에 모르는’ 새로운 세대와 ‘아무 것도 모르는’ 기성 세대의 갈등은 지겹도록 반복되어 왔다. 그리고 그때마다 기성 세대가 새로운 세대를 이해하려는 노력 또한 뒤따랐다. 인정하기 싫더라도, 결국 미래의 주인공은 새로운 세대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요즘 시대의 요즘 애들 ‘밀레니얼’ 세대출처=gettyimagesbank.com
2019년 현재, 기성 세대에게 ‘자기 밖에 모르지만 그래도 이해해야만 하는’ 새로운 세대는 ‘밀레니얼’ 세대다. 밀레니얼(Millennials)이란 단어는 인구통계학자인 닐 하우(Neil Howe)와 윌리엄 스트라우스(William Strauss)가 1991년에 펴낸 저서 <세대(Generation)>에 처음 등장한 후, 2000년 <밀레니얼 세대의 부상(Millennials Rising)>이 출간되며 주목 받기 시작했다. 과연 밀레니얼 세대를 누구로 정의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지역, 사회, 개인에 따른 차이가 존재하지만, 흔히 198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 사이에 태어난 세대, 즉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 세대를 지칭하곤 한다.
지난 2015년 골드만삭스 글로벌 인베스트먼트 리서치가 펴낸 인포그래픽 리포트 ‘Millennials: Coming of Age’는 밀레니얼 세대를 1980년대부터 2000년 사이에 태어난 세대로 정의한다. 그리고 그들이 ‘첫 번째 디지털 네이티브(The First Digital Natives)’ 세대이며, 소셜미디어 중심의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연결되고, 학자금 대출 상환·취업난·일자리 질 저하 등으로 가처분 소득이 낮아 결혼 및 내 집 마련을 미룰 수밖에 없는 특징을 지닌다고 설명한다. 아날로그 시대에 태어나 디지털 시대에 진입했고,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로 정신적·물질적으로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성장했으나 동시에 경제 불황을 겪은, 그야말로 혼재된 정체성을 지닌 신인류인 셈이다.
무엇보다 골드만삭스는 밀레니얼 세대의 첫 번째 특징으로 미국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세대라는 점을 꼽았다. 미국 내 밀레니얼 세대는 총 9,200만 명으로 총 6,100만 명의 X세대, 7,700만 명의 베이비붐 세대를 뛰어 넘는다. 백악관은 오는 2025년에는 밀레니얼 세대가 미국 생산 인구의 75퍼센트를 차지할 것으로 분석하기도 했다. (물론 한국의 경우 출산율 저하로 인해 미국과 동일한 상황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결국 현재의 기성 세대가 밀레니얼 세대에 주목하는 이유는 그들이 경제를 좌우하는 강력한 소비층이기 때문이다.
자기중심적이지만 열심히 일하는 밀레니얼 세대와 함께 일하는 법이러한 이유로 소비자로서의 밀레니얼 세대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적극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데 반해, 조직 구성원으로서의 밀레니얼 세대에 대한 인식은 오해에 머물러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기업 등 조직 내에서 사원, 대리 및 초기 관리자라 할 수 있는 과장급 역할을 맡고 있는 밀레니얼 세대는 흔히 조직보다 개인을 우선시하며, 자신이 재미있어 하는 일만 하기를 원하고, 개인적인 삶을 희생하지 않으면서도 충분한 보상을 요구한다고 평가 받는다.
하지만 설문조사, 인터뷰, 포커스 그룹 미팅 등의 방식을 통해 전세계 22개국, 25,000여 명의 일하는 밀레니얼 세대를 분석한 책 <밀레니얼 세대가 일터에서 원하는 것(What Millennials Want From Work)>은 ‘밀레니얼 세대는 자기중심적이다’는 오해를 ‘밀레니얼 세대는 자기중심적이지만, 열심히 일한다’고 바로잡는다. 밀레니얼 세대는 무조건 긴 시간 책상 앞에 앉아 있는다고 해서 생산성이 늘어난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유연한 근무제도 안에서는 충분히 긴 시간 동안 일할 의지가 있고 실제로 하고 있으며, 연봉이나 승진보다는 일 자체로부터 동기부여를 받기 때문에 직무기술서의 범위 이상으로 일하고 있고, 상사나 조직에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은 오히려 조직에 기여하고자 하는 욕구가 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중심적이지만 열심히 일하는 밀레니얼 세대와 함께 일하기 위해,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싶어하는 구성원들을 응원’하라고 제안한다. 밀레니얼 세대는 자신에게 맡겨진 과제를 완수하는 수준을 넘어 현재의 업무 프로세스와 조직의 성과를 개선할 수 있는 혁신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싶어하므로, 그들의 조력이 도움이 되고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는 분야에 아이디어를 펼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라는 것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밀레니얼과 함께 일하는 법>에서 저자인 이은형은 ‘일을 통해 성장할 수 있음을 보여주라’고 권한다. 흔히 주니어 직급의 성장을 이야기할 때 교육이나 훈련부터 떠올리기 쉽지만, 기업이 밀레니얼 세대에게 제공할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기회는 일을 통한 성장이기 때문이다.
결국 일반적으로 조직을 구성하는 피라미드 맨 하단에 놓여 있기 쉬운 밀레니얼 세대를 조직의 ‘센터’에 세우고 그들에게 주도권을 쥐어줌으로써, 일을 통해 자신이 조직에 기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본인 또한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밀레니얼과 함께 일하기 위한 전략의 핵심이다.
밀레니얼 세대를 조직의 중심에 세워라이미 전세계적으로 밀레니얼 세대를 무대의 중심에 세우려는 변화는 시작되고 있다. 임홍택이 쓴 <90년생이 온다>에 따르면 글로벌 기업인 P&G는 밀레니얼 신입사원들에게 중요한 실무를 맡김으로써 직무 전문성과 역량을 기를 뿐만 아니라 본인이 하는 일이 회사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체득하도록 한다. 더 나아가 세계 최대의 온라인 쇼핑 플랫폼인 ‘알리바바’를 운영하는 알리바바그룹은 전체 경영진의 52%를 1980년대생으로 구성했다. 2013년 마윈이 CEO 자리를 스스로 내놓고 이사회 의장으로 물러나며 “젊은 세대를 믿는 것이야말로 미래를 믿는 것”이라고 한 발언을 실제 인사 제도를 통해 증명하고 있는 사례다.
국내 기업 가운데는 현대카드·현대캐피탈이 밀레니얼 세대를 무대의 중심에 세우려는 노력에 앞장서고 있다. 먼저 지난 4월 한 달 간 펼쳐진 ‘밀레니얼참견시점’은 상품·브랜딩·기업문화 부문에서 새로운 대외 커뮤니케이션 아이디어를 공모하는 축제의 장으로 꾸며졌다. 총 24개팀, 77명이 예선에 참여한 가운데 최종 10개팀이 지난 4월 25일과 26일 1박 2일에 걸쳐 해커톤 방식의 본선을 치렀다. 오는 5월 24일 코스트코의 현대카드 결제 오픈을 앞두고 코스트코와 현대카드의 홈파티 패키지를 제안해 1위를 수상한 Payment사업지원팀의 이유빈 사원은 “본업으로부터 벗어나 몰입을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며 “회사가 밀레니얼 세대를 중요시 여긴다는 것을 체험한 까닭에 책임감을 가지게 되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카드 결제 데이터를 활용한 소셜미디어 캠페인 아이디어를 제시해 2위를 차지한 상품마케팅팀의 김남수 사원 또한 “막연히 가지고 있던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동시에 회사로부터 평가 받고 싶어 참여하게 되었다”며 “내가 맡고 있는 업무나 프로젝트에 확신을 가지고 주도적으로 이끌어나갈 수 있는 동력을 얻었다”고 말했다.
‘밀레니얼참견시점’이 현대카드·현대캐피탈이 밀레니얼 세대 직원들에게 거는 기대와 가치를 여실히 보여줄 수 있는 축제와 같았다면, 지난 4월부터 시작된 ‘밀레니얼 보드(Millennial Board)’는 밀레니얼 세대가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 총 8개 조직 별로 사원·대리·과장 직급의 밀레니얼 보드를 구성해, 각 부문별 대표와 매월 최소 1회 이상 미팅을 진행하며 다양한 아이디어를 개진하는 형태다. 말하자면 총 48명의 밀레니얼 보드 구성원이 ‘팀장님’ 등 중간 관리자 없이 ‘사장님’ 또는 ‘부사장님’ ‘전무님’과 같은 경영진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자리인데, 실제 지난 4월 진행된 미팅에서는 맞벌이 부부의 출산 및 육아 문제와 같은 기업문화 이슈, 출·퇴근 시간 및 평가 제도와 같은 HR 이슈, 새로운 고객을 타겟팅한 신규 사업 아이디어에 이르기까지 생생한 의견이 오갔다. 더불어 밀레니얼 보드의 활동 내용은 사내 협업 툴인 컨플루언스를 통해 임직원들에게 공유하고, 특히 임직원들의 호응이 높은 안건은 경영진과 밀레니얼 세대가 함께 참여하는 ‘Invitational FM(Focused Meeting)의 주요 안건으로 채택할 예정이다.
현대카드·현대캐피탈 기업문화팀 김명호 팀장은 “밀레니얼 세대는 주 소비층으로 떠오른 밀레니얼 세대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세대일 뿐만 아니라 내부적으로는 기업의 미래를 책임질 세대”라며 “다양한 통로를 통해 밀레니얼 세대가 주도적으로 업무 및 조직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아이디어가 일회성 이벤트에 그치지 않고 실제 상품·서비스의 사업화는 물론 조직 문화의 변화 등으로 현실화되는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