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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ch Talk] 어쩌다 보니 한국 방문, ‘카세트 퓨처리즘’


카세트 퓨처리즘, 언제까지 유행할까?


2022.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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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카드∙현대커머셜 뉴스룸이 디지털, 테크 트렌드를 소개하는 ‘Tech Talk’ 시리즈를 선보입니다. 이번에는 80년대에 꿈꿨던 미래사회에 기반한 스타일인 카세트 퓨처리즘 또는 레트로 퓨처리즘 스타일이 현대에 어떻게 부활하고 있는 지를 살펴봅니다. 이요훈 IT칼럼니스트가 소개하는 ‘카세트 퓨처리즘’ 유행의 이모저모를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얼마 전 서울 을지로를 방문했다가, 재밌는 경험을 했다. 내가 알던 공간이 사라지고, 다른 곳으로 변했다. 지난 몇 년간 유행한, 1930년대를 흉내 내던 분위기가 여기엔 없다. 백열등을 흉내 낸 노란 불빛과 나무 가구가 있던 자리에, 네온 불빛과 플라스틱 가구가 들어섰다. ‘카세트 퓨처리즘(Cassette Futurism)’이 한국에도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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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세트 퓨처리즘이란?

카세트 퓨처리즘(Cassette Futurism), 가끔 카세트 펑크(Cassette Punk)나 포미카펑크(Fomikapunk)라고도 하는 이 단어는 무슨 뜻일까? 80년대쯤 꿈꿨던 미래를 배경으로 삼는 SF의 한 장르이자, 이와 비슷한 스타일을 뜻한다. 정확히는 레트로 퓨처리즘(retro futurism, 복고미래주의)이라 불리는 SF(Science Fiction)의 하위 장르다.

빽투더퓨처2(Back to the Future2) 트레일러

이 스타일을 대표하는 작품은 ‘빽 투 더 퓨쳐(Back to the Future) 2(1989)’다. 이 영화는 서기 2015년의 미래를 흥미롭게 묘사해 주목받았다. 디자이너론 ‘블레이드 러너’, ‘에이리언2’, ‘트론’ 같은 영화의 메카닉 디자인을 담당한 시드 미드가 손꼽힌다. 음악으로는 ‘베이퍼웨이브(vaporwave)’ 같은 장르 음악이 해당한다.

80~90년대에 제작된 많은 디지털 게임이나 ‘카우보이 비밥’, ‘신세기 에반게리온(구판)’ 같은 SF 애니메이션에서 묘사했던 미래도 여기에 해당한다. 우리로 따지면, 아래 만화에 나온 것 같은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 또는 스타일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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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세트 퓨처리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80년대 ‘레트로 퓨처리즘’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레트로 퓨처리즘’은 당시 사이버펑크 장르의 인기를 배경으로 ‘과거 기술을 간직한 채 발전했다면?’과 같은 상상으로 창작된 SF 장르를 뭉뚱그려 부르던 말이었다.

이를 더 세분화해 산업혁명 시기(19세기 말 즈음)를 배경으로 발전된 기술을 담은 SF 작품은 스팀펑크(Steampunk), 근대 문명 시기(20세기 초 즈음)를 배경으로 하는 SF 작품은 디젤펑크(Dieselpunk)라고 부르기로 했다.

문제는 21세기다. 80년대도 과거가 되자, 21세기 초부터 80년대를 회고하는 복고풍 콘텐츠(80’s revival)가 나오기 시작한다. 80년대 스타일은 나오는 데 이를 가리킬 말이 없자 만들어진 단어가 바로 ‘카세트 펑크’, 또는 ‘카세트 퓨처리즘’이다.

레트로 퓨처리즘-디젤펑크 스타일의 작품 (출처= Stefanparis.deviantart.com)

SF 마니아를 빼면, 그냥 ‘레트로 퓨처리즘’과 ‘카세트 퓨처리즘’을 같은 말처럼 쓰고는 한다. ‘스팀펑크’나 ‘디젤펑크’ 같은 장르는 명확한 특징이 있고 먼 과거인 데 반해 80년대는 아직 가까운 과거인데다, 작품이 아닌 스타일로 기억 되는 탓이다. 그러니까 그냥, ‘레트로(retro)’다.

카세트 퓨처리즘의 상징 ① 회색/베이지, CRT 모니터, 키보드, 스위치

서구권에서 이 시기는 2차 세계 대전 이후 격동의 시대가 어느 정도 정리되면서, 대중문화와 전자 기기가 부흥을 맞이했던 시대다. 개인용 PC가 보급되고, 아케이드 게임 센터와 가정용 게임기 붐이 일었으며, MTV와 워크맨, 가정용 비디오가 큰 인기를 끌었다. 다른 어느 때보다도, 사람들은 이 시기를 ‘기술’과 ‘제품’으로 기억한다.

예를 들어 IBM PC로 대표되는, 회색/베이지 톤의 기기들이 있다. 이런 기기에는 배불뚝이 모니터라 불리는 CRT 모니터도 함께 따라온다. 영화 ‘매트릭스’에 나온 녹색 문자가 표시되는 화면과 컴퓨터 사용 장면이 대표적이다.

영화 에이리언도 마찬가지다. 우주 비행을 할 정도로 고도의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 키보드와 스위치를 이용해 컴퓨터를 조작한다.
현 시대에는 이런 기기가 과거를 떠올리는 상징이자, 현 시대와 어긋난 묘한 분위기를 만드는 소품으로 사용된다. (과거에선) 미래의 공간에 놓여진 (현재에선) 과거의 기기. 포스트모던이 주도하던 80년대 즈음 분위기와도 걸맞다, 분위기만.

(좌) Photo courtesy of C2H4 (우) Coach TV (출처=coach instagram)

패션 브랜드 코치에서 만든(?) 코치TV는 이런 카세트 퓨처리즘의 특징을 잘 살렸다. 영상 전체에 흐르는 VHS 글리치 효과, 배경에 있는 구형 TV와 전자 기기, 80년대 스타일 구도가 거꾸로 모던하게 느껴진다.

코치TV가 보여주듯, 카세트 퓨처리즘을 떠올리는 또 하나의 스타일은, 쌓여진 브라운관 TV다. 우리는 고 백남준 작가의 작품 스타일로 익숙하지만, 실은 고 데이빗 보위가 출연한 SF 영화 ‘지구에 떨어진 사나이 (The Man Who Fell to Earth, 1976)’를 통해 유명해진 스타일이다. 현대에선 과거에는 없던 TV 탑을 통해 과거를 불러온다.

(좌) 영화 지구에 떨어진 사나이 스틸 컷 © Rialto Pictures/StudioCanal (우) 영화 ‘원더우먼 1984’ 스틸 컷

요즘 출시되는 기계식 키보드도 레트로 스타일을 지향하는 경우가 많다. 과거 레트로 스타일 키보드는 타자기를 본딴 형태였다면, 요즘 레트로 스타일 키보드는 예쁘게 생긴 80년대다.

(좌) 글쓰기 전용 기기 프리라이트 (우) 펜케이스 컴퓨터, 3D 프린터로 자작해서 만들 수 있는 제품

(좌) 글쓰기 전용 기기 프리라이트 (우) 펜케이스 컴퓨터, 3D 프린터로 자작해서 만들 수 있는 제품

80년대 가전 제품 판매점에선 실제로 TV를 여러 대 붙여놓고 영상을 틀곤 했다. 여러 대의 TV나 모니터가 붙어 있는 이미지는 이후 여러 SF 작품에서도 반복적으로 쓰이는데, 방송국 부조실이나 CCTV 룸과도 비슷해서 향수와 감시를 동시에 떠올리게 만든다.

당시 진열된 TV를 보여주는, 영화 첨밀밀(1997)의 한 장면 당시 진열된 TV를 보여주는, 영화 첨밀밀(1997)의 한 장면

당시 진열된 TV를 보여주는, 영화 첨밀밀(1997)의 한 장면

카세트 퓨처리즘의 상징 ② 네온, 8bit 게임 그래픽, 사이버펑크

80년대가 꿈꿨던 미래를 배경으로 한, 카세트 펑크 계열 작품은 이상하게 드물다. 이유는 간단하다. 80년대가 꿈꿨던 미래를 이미 사이버펑크라 부르고 있어서다. 지금은 ‘하이 테크, 로우 라이프’라는 특징을 가진 장르가 됐지만, 8~90년대 사이버펑크는 SF의 주류 장르였다.

카세트 퓨처리즘에 해당하는 작품은 적지만, 대신 사이버펑크가 가진 미학적 특징을 가져와 하나의 스타일로 만들었다. 대표적인 아이콘이 바로 ‘네온’이다. 한때 정육점 불빛이라 불렀던 분홍빛 네온이, 지금은 카세트 퓨처리즘을 상징하는 색이 됐다.

원조 격인 작품은 영화 ‘트론(1982)’이다. 당시 조악한 컴퓨터 그래픽 기술로 사이버스페이스를 표현하기 위해 썼던 방법이 네온 빛으로 형체를 표시하는 것이었다. 와이어 프레임으로 표현되던 그 시기의 컴퓨터 게임 그래픽과도 잘 어울렸다.

(좌) 영화 ‘트론(1982)’ (우) 영화 ‘블레이드러너(1982)’

하지만 지금 생각하는 네온 불빛 이미지를 만든 건, 네온사인이 뒤덮힌 홍콩 거리를 모델로 삼았던 영화 ‘블레이드 러너(1982)’다. 가난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혼란한 거리를 표현하기 위한 장치였지만, 현 세대는 이런 이미지를 쿨하고 매력적으로 받아들인다. 재미 있는 사실은 원래 네온 사인의 전성기는 1940~50년대 였다는 것.

네온 불빛 효과를 가장 먼저 유행시킨 건 바로 게이밍 기기다. 사이버펑크 느낌을 주고, 비싸도 멋지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 도입된 RGB 불빛이 이제 게이밍 기기를 상징하는 빛이 되어버렸다. 마우스와 키보드 뿐만 아니라, PC 본체와 그래픽 카드, 헤드폰, 모니터에도 이런 네온 사인 같은 불빛이 나온다.

(좌) 성수동 팝업 스토어 금성 오락실 전경 (우) 현대카드 제로 에디션2 네온에도 이런 경향이 반영되어 있다.

(좌) 성수동 팝업 스토어 금성 오락실 전경 (우) 현대카드 제로 에디션2 네온에도 이런 경향이 반영되어 있다.

▶ “현대카드ZERO Edition2 ‘NEON ZERO’” Image Library 보러가기

80년대 시절 만들어진 게임을 떠올리게 하는, 픽셀 그래픽(Pixel graphic) 또는 도트 그래픽(dot graphic)도 카세트 퓨처리즘의 한 요소다.

(좌) 픽셀 그래픽 인기 게임 데드 셀 게임 플레이 장면 (우) 픽셀 그래픽 게임을 소재로 삼은 SF 영화 Pixel(2015)

(좌) 픽셀 그래픽 인기 게임 데드 셀 게임 플레이 장면 (우) 픽셀 그래픽 게임을 소재로 삼은 SF 영화 Pixel(2015)

아예 레트로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게임기도 여럿 출시됐다. 예전의 게임기 모양을 본땄지만 더 작고, 더 성능이 좋고, 한 대의 게임기로 여러 게임을 즐길 수 있다. 패미컴을 시작으로 슈퍼 패미컴 미니, 메가 드라이브 미니 등 주요 고전 게임기가 모두 나왔다. 아케이드 게임기를 재현한 제품도 존재한다.

재믹스 V 복각판 게임기 ‘재믹스 미니’

카세트 퓨처리즘의 특징 - Less and More

최근 일고 있는 카세트 퓨처리즘 스타일 부활에는, 8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넷플릭스의 인기 SF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Stranger Things)의 인기가 한 몫 했다. 여기에 EL 와이어와 LED 광원이 저렴해지면서 보다 쉽게 사이버펑크 분위기를 낼 수 있게 됐다.

무엇보다 많은 것이 지루해졌다. 디터 람스(Dieter Rams)의 ‘Less but Better’를 모토로 삼은 듯한 기기 디자인 트렌드는 화면을 끄면 모두 똑같아 보일 정도로 비슷한 제품들을 만들어냈다.

넷플릭스 SF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Stranger Things)’ (출처=넷플릭스)

반면 80년대는 좀 더 풍요롭다.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Less is Bore’ 라고 비웃었다. 과감하고 다양한 색과 패턴을 썼던 멤피스 스타일이 유행했다. 지금보다 다채로운 색과 디자인, 손맛을 느낄 수 있는 기기들이 있었다.

성능은 보잘것없었지만, 그렇기에 서로 어떻게든 달라지려고 애쓰던 시기이기도 하다. 우리가 상상 속에서 소환한 80년대는 그렇다. 카세트 퓨처리즘의 세상은 일종의 과잉이다. 근사하지만 쓸데 없는, 예쁜 쓰레기의 시대다.

이런 흐름은 언제까지 이어질까? 디터 람스가 다시 말한 것처럼, 세상은 ‘Less and More’ 시대로 이동할 지도 모른다. 우린 이미 다르게 살 것을 요구 받고 있으며, 카세트 퓨처리즘도 시간이 지나면 지루해진다.

하지만 전쟁, 역병, 기근, 인플레와 같은 사라진 줄 알았던 불안과 함께 다시 살아가고 있는 시대에, 좋았다고 상상하는 옛날을 소환하는 건, 살짝 즐겨볼 만하지 않을까?

이요훈 IT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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