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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 시대(時代)가 막을 내렸다. 아무리 더운 날에도 흰색 셔츠와 넥타이를 고집했던 미국 최대 은행 JP 모건(J.P. Morgan Chase)도, 보수적인 복장 문화로 유명한 GE와 IBM조차도, 이제는 자유로운 복장을 허용한다. 이러한 문화는 90년대 중·후반 빌 게이츠나 고 스티브 잡스 같은 유명 IT업체 최고 경영자들이 공식석상에서 즐겨 입으며 확산됐다.
하지만 정작 직장인들은 어떻게 입어야 하는지 혼란스러워하는 경우가 많다. 정확한 기준이 존재하지 않다 보니 단순히 ‘편하게만 입으면 된다’고 여기는 사람들도 많다. 과연 비즈니스 현장에서의 자유로운 복장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정말로 마음 가는 대로 편하게 대충 입으면 되는 것일까.
출처=unsplash.com
네가 알던 캐주얼이 아니야!우리나라 기업에서 보통 자유로운 복장이라 하면 딱딱한 정장과 반대되는 패션으로만 이해한다. 정확한 의미나 기준을 제공하지 않다 보니, ‘격식을 차리지 않는’ 사전적인 의미를 지닌 ‘캐주얼’로만 받아들인다. 실제로 많은 직장인들이 자율 복장이라 하면, 페이스북 CEO인 마크 저커버그처럼 회색 티셔츠와 청바지와 같은 자유분방한 캐주얼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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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비즈니스 캐주얼은 일반적인 캐주얼과는 다르다. 패션에서 비즈니스 캐주얼은 유럽식 복식에 기초한다. 유럽 사람들은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문화에 익숙하다. 그래서 옷차림도 ‘나름의 원칙’을 정해 어떤 파트너를 만나더라도 기본적인 품위나 매너를 잃지 않으려고 한다. 예를 들어, 영국 사람들은 더운 여름이라고 해서 민소매나 반바지를 입기 보다 조금 불편해도 린넷 재킷이나 가벼운 팬츠를 입어 소재의 시원함을 살리면서도 품위를 지킨다. 각종 모임에서도 취향을 반영한 재킷을 기본으로 하고 셔츠나 바지를 각자 개성에 맞게 맞춰 입어, 보는 이의 시선을 배려한다. 비즈니스 캐주얼이 ‘나만 편한’ 옷차림이라기 보다는 ‘나도 편하고 남도 편한’ 옷차림을 가리키는 셈이다.
출처=unsplash.com
남성 패션 편집샵 알란스(Alan’s) 남훈 대표도 'CLASSIC AND THE MAN'을 통해 “비즈니스 캐주얼은 비즈니스 파트너와의 관계나 상황에 맞게 수트나 재킷 혹은 편안한 캐주얼 차림을 유연하게 선택한다는 의미다”라고 설명한 바 있다.
따라서 ‘한 여름에 짧은 반바지나 민소매는 왜 못 입냐’고 불만을 가지거나, 소위 ‘아저씨’라 불리는 직원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정장 바지에다 등산복 혹은 블루종(등이 볼록한 점퍼)을 입고 회사로 출근하는 건 비즈니스 캐주얼을 잘못 이해한 결과다. ‘TPO(Time·Place·Occasion)’에 어긋난 옷차림은 함께 일하는 동료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특히, 비즈니스 현장에서는 예의가 없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개성과 자율을 나타내는 자유로운 복장 문화를 거스를 수는 없다. 그렇다고 비즈니스 현장에서의 기본적인 예의를 갖추지 않은 옷차림을 무작정 허용할 수도 없다. 비즈니스 매너를 갖추면서도 고루한 격식에 사로잡히지 않은 비즈니스 캐주얼은 무엇일까. 나름의 원칙(principle)에서 그 해답을 찾은 기업들이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전 세계 모든 법인에 새로운 오피스 룩(New Office Look)을 도입한 현대카드·현대캐피탈(이하 현대카드)이다. 이 회사는 지난 2016년 정장 만을 허용하는 드레스 코드를 벗어 던지고, 정장을 기본으로 청바지와 운동화까지 포함하는 비즈니스 캐주얼을 허용했다. 디지털 시대, 자유롭고 창의적인 디지털 회사로 거듭나기 위해 구성원들의 개성과 창의성, 그리고 업무 편의성 등을 존중하자는 판단에서다.
(좌) 현대카드·현대캐피탈 기업문화팀 하정우 대리, (우) 현대카드·현대캐피탈 기업문화팀 김세미 대리
다만, 금융이라는 업(業)의 특성을 고려한 원칙을 세웠다. ‘외부와의 비즈니스 미팅 혹은 프레젠테이션이 가능한 수준의 복장’이 그것이다. 예컨대, 임직원의 개성을 존중해 단정하고 자유로운 캐주얼 복장까지 허용하지만, 과도한 색상이나 무늬가 있거나 지나치게 짧은 치마나 파인 상의는 허용하지 않았다. 시행 초기 현대카드는 직원들의 혼란을 막고자 직원이 직접 모델로 참여한 스타일북을 제작했고, 다양한 오피스 룩 활용 가이드를 매거진처럼 만들어 직원들의 큰 공감도 끌어냈다. 시대와 고객의 변화를 수용해 복장을 유연화하면서도 원칙을 세워 신뢰를 중요시 여기는 금융업의 특성을 존중한 것이다.
현대카드·현대캐피탈 기업문화팀 김명호 팀장은 이 회사의 복장에 대해 “현대카드스러움을 표현하면서도 임직원 개개인의 개성을 잘 살릴 수 있는 복장”이라고 설명했다.
JP 모건(J.P. Morgan Chase)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금융업의 보수적인 기업문화 특성상 남녀 직원들에게 오랜 기간 동안 정장을 요구했지만, 지난 2016년 비즈니스 캐주얼을 도입했다. 당시 이들은 ‘고객에 맞춰’ 옷을 입는다는 원칙을 정했다. 예를 들어, 후드와 스니커즈, 운동화에 익숙한 IT 기업과 면담이 있는 영업사원은 출근 전 ‘고객에 맞춘’ 편안한 복장을 골라서 입었다. 일반 고객을 주로 접하는 영업점포 직원들은 기존처럼 ‘체이스 어페럴(Chase Apperal)’이라 불리는 유니폼을 착용했다. 직원들이 모든 분야에서 비즈니스 캐주얼을 입을 수는 없었지만, 이러한 원칙을 통해 23만 7천 여명의 JP 모건 직원들은 옷을 입을 때 나름의 재량을 갖게 됐다.
세련된 비즈니스 캐주얼을 입은 김세미 대리와 하정우 대리가 현대카드·캐피탈 애자일 오피스에서 업무 미팅을 하고 있다.
진짜 멋쟁이로 거듭나려면“깊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만 외모를 중시하지 않는다. (It is only the shallow who do not judge by appearances.)” 아일랜드 출신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의 말이다. 단순히 외모가 중요하다기보다는 개인의 생각이 겉모습을 통해 드러난다는 의미다. 복장 규제가 줄어들었다고 해서 나 혼자만 만족스러운 옷차림을 갖추기 보다, 기업문화, 업무의 특성, 상대방에 대한 예의를 고려한 ‘생각 있는’ 비즈니스 캐주얼을 시도해보면 어떨까. ‘나도 편하고 남도 편한’ 비즈니스 캐주얼로 진짜 멋쟁이로 거듭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