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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렉스타임이 당신의 일과 삶을 구원하리라


3人3色, 플렉스타임 사용기


2018.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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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많은 국내 기업들이 도입하고 있는 플렉스타임(Flextime)은 미국·영국 등 해외에서는 1990년대 초반 이미 등장한 제도다. 성차별 없이 동등한 교육을 받은 여성의 직장 생활이 보편적인 현상이 되면서, 기업의 인력구조가 변하기 시작한 것이 계기였다고 한다. 육아와 가사를 남녀가 함께 하다 보니 일하는 시간을 유연하게 해야 한다는 비판이 나오기 시작했기 때문. 하지만 정해진 근무시간 동안 다같이 일하는 근무 형태에 익숙한 기업들은 플렉스타임 도입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출처=unsplash.com

플렉스타임에 대한 논의는 2000년대 후반 다시 수면위로 올라왔다. 학계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세대 및 산업 구조의 변화가 맞물려 각계각층에서 일하는 문화의 변화를 요구한 데 따른 것으로 보고 있다. 일과 삶의 균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른바 ‘오직 나만이 중요한 세대(Me, Me, Me, Generation)’가 생겨났고, 무엇보다 산업 구조가 ‘디지털 기술’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더는 정해진 시간 한 공간에 모여 앉아 일을 처리할 필요가 없는 이른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이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조직에서 플렉스타임 도입을 두려워한다. 일의 효율 저하에 대한 우려가 가장 큰 이유다. 모두가 자신의 스케줄만을 주장하는 이기주의로 인해 개인 및 팀 간 협업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는데다, 플렉스타임을 오용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때문에 일부 조직은 다양한 규제들로 개인들을 감시하고 통제하기도 한다. 개인 입장에서는 이런 조직을 원망할 수 있다. ‘조직이 좋은 제도를 시행하기도 전에 개인을 불신한다’는 느낌이 들 수 있어서다.

하지만 걱정부터 하기는 이르다. 미국의 MIT와 미네소타대 연구진이 플렉스타임을 사용한 500개 회사의 직원 85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연구 결과를 보면 알 수 있다. 이에 따르면 플렉스타임을 잘 활용하기만 하면 조직원들의 심리적인 스트레스가 낮아지고 업무 효능감과 직업에 대한 만족감이 높아져 고용주와 직원들 모두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출처=unsplash.com

현대카드·현대캐피탈(이하 현대카드)은 이미 지난해 8월부터 플렉스타임을 시행해 왔다. 일부 부서에만 적용되던 제도가 올해는 전사로 확대됐다. 걱정과 우려의 시선도 있었지만, 확신이 더 컸다. 플렉스타임은 직원들의 삶을 바꿨고, 회사의 분위기도 바꿔놨다. 과연 이들은 어떻게 플렉스타임을 활용해 왔으며 어떤 변화를 겪었을까?

여기 플렉스타임으로 일상이 달라졌다는 현대카드·현대캐피탈 직원 3인이 있다. 지옥 같던 출·퇴근 스트레스에서 벗어난 고동조 Next Experience팀 선임엔지니어, 유연한 삶 속에 자신을 가꾸기 시작한 조희원 Tech-Fin사업팀 대리, 아이와 저녁이 있는 삶을 보낼 수 있었던 오승언 고객마케팅1팀 과장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플렉스타임의 놀라운 결과를 직접 확인해보자.

파김치와 시루떡 같은 날들이여, 이제는 안녕!

출처=unsplash.com

그런 연구 결과를 읽은 적 있다. ‘대중교통 서비스 개선을 위한 서울시 출근 통행의 질 평가(2013, 서울연구원)’. 직장인의 행복지수가 출·퇴근 거리와 반비례한다는 것. 단거리(5km 미만) 통근자의 행복지수(73.9)가 가장 높았고, 중거리(5~25km)가 그 다음(71.6), 장거리(25km 이상)가 가장 낮았다(70.1). 집과 일터와의 거리가 짧을수록 더 행복하다는 설명이다.

직장상사의 폭언, 상시적 야근, 쥐꼬리만한 연봉 등으로 직장인의 볼멘 소리가 터져 나오는 요즘, 고작 출·퇴근 시간 긴 것이 뭐 그리 대수냐며 비웃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웃고 넘기기엔 생각보다 중대한 문제로 기업뿐 아니라 사회 전체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이 적지 않다. 미국 워싱턴대 연구진은 출근 거리 16km 이상인 4300여 명의 통근자를 추적 조사한 결과를 내놨다. 이들 대부분은 고혈압 가능성이 농후했다. 독일 주간지 에 따르면 장거리 통근자(30km) 부부의 이혼율이 단거리 통근자에 비해 40%나 더 높았다.

고동조 선임엔지니어가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나 역시 그랬다. 출근길 1분 1초가 스트레스였다. 나는 용인 수지에 산다. 첫 직장은 신용산역 근처였다. 새벽 6시에 일어나 30분 안에 모든 준비를 마치고 출발해야 2시간 뒤인 오전 8시 30분에 겨우 회사에 도착할 수 있다. 집 앞에서 1550번 광역버스를 타고→신논현역에서 내려→동작역에서 갈아타→신용산역에서 내리는 것이 코스였다.

장장 2시간이 걸리는 출근길. 자리에 앉는 것은 꿈꾸지도 않았다. ‘제발 오늘은 시루떡 신세만 면하게 해주세요’ 간절히 기도했다. ‘출·퇴근 때문에 아픈 적이 있다’는 직장인이 전체의 절반에 달한다는 조사 결과를 본 적 있는가. 이전 회사에 재직하는 동안 나는 두 차례나 대상포진을 앓았다. 여유 없이 출근하니 업무 피로도가 높았고, 건강도 나빠지니 회사 일이 힘겹고 버거웠다.

험난했던 내 출·퇴근길은 최근 현대카드로 직장을 옮기면서 완전히 달라졌다. 플렉스타임(Flextime)의 은혜 덕분이다. 일하는 시간을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어 도로가 미여 터지고 출·퇴근 인파가 몰아치는 시간을 피해 평화롭고 편안한 마음으로 출·퇴근의 여유를 즐길 수 있게 됐다. 사실 집과 일터를 오가는 총 거리는 예전과 비슷하다. 바뀐 것은 ‘시간대’다. 기상 시각부터 달라졌다. 오전 7시에 여유롭게 일어나 출근 준비도 거의 1시간 동안 한다.

플렉스타임 시행 후 현대카드 로비 풍경

머리도 말리지 못한 채 입에 빵을 물고 버스로 향했던 예전과 비교하면 내 몰골은 확연히 나아졌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도 그렇다. 2시간이나 걸리는 출근길이라도 해도 의자에 ‘앉아’ 갈 수 있다. 눈을 붙이기도 하고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기도 한다. 퇴근길도 한가롭다. 1시간 늦게 퇴근하면 버스에 앉아 일부러 서울 도심을 30~40분 돌 필요가 없다.

업무의 질도 높아졌다. 무엇보다 오전 10시부터 일을 시작할 수 있게 돼 예전보다 일에 집중하기 좋다. 디자인 아이디어도 잘 떠오르고 어려운 문제가 발생했을 때 여러 개의 해답을 발견해낸 적도 있다. 난해한 정보를 직관적으로 시각화하는 과정 또한 예전에 비해 그 속도가 훨씬 빨라졌다. (사실 나는 아침형 인간이 아니기에, 그간 이른 아침부터 출근해 책상 앞에 앉아 있는 것이 굉장한 고역이었다.) 플렉스타임은 나를 출·퇴근 지옥에서 구원한 것은 물론 업무 효율과 삶의 만족도까지 높였다.

경영컨설팅업체 타워스왓슨이 한국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현재 직장에 입사할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한 요인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많은 응답자들이 ‘고용안정성’과 ‘경쟁력 있는 급여’와 함께 ‘출·퇴근이 편리한 근무 위치’를 꼽았다. 제아무리 좋은 직장이라도 산 넘고 물 건너 출근하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시간의 마법은 생각 그 이상이다. 우리 회사처럼 우리나라의 모든 기업들이 출·퇴근 시간을 자유롭게 쓰는 플렉스타임을 적극적으로 장려하면 좋겠다. 우리나라 하루 평균 통근 시간은 58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길다. 도쿄를 중심으로 거대한 수도권을 형성한 일본의 평균 통근시간도 40분이었다.

고동조 Next Experience팀 선임엔지니어

나를 가꾸고, 나를 회복하다

직장생활 2년 차. 내 일상은 점점 무료해져 갔다. 입사 초기에는 평일 저녁에 시내로 나가 지인을 만나기도 했다. 틈틈이 공부를 하거나 운동도 즐겼다. 하지만 맡은 일이 늘어나고, 책임도 커지면서 업무시간에 사용하는 에너지가 많아졌다. 퇴근 후엔 무언가를 하기보단, 휴식이 우선이었다. 회사와 집만 오가는 날들이 점점 늘어났다.

도돌이표 같은 일상은 편했지만, 행복하진 않았다. 나는 내 삶에 작은 균열을 일으키고 싶었다. 저녁 시간을 쪼개 필라테스 레슨을 신청한 것은 이 때문이었다. 선택은 만족스러웠다. 필라테스를 하고 난 다음날은 피로감이 덜했고, 집중력은 강해졌다. 무슨 일이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도 들었다. 하지만 레슨을 예약하는 일이 항상 난관이었다. 직장인들의 퇴근 시간이 비슷하다 보니 퇴근 시간 직후의 레슨을 신청하기 위한 경쟁이 그야말로 '전쟁'에 가까웠다. 대학교 시절의 수강 신청을 방불케 했다. 간신히 레슨을 신청하는 데 성공한다고 해도, 급작스런 업무로 퇴근 시간이 늦어지면 참석이 힘들었다. 그렇게 몇 달 간, 꽤 많은 레슨비를 허공에 날리고 나서 필라테스를 그만두게 됐다.

저녁이 짧은 삶 속, 반복되는 단순한 일상에 고전(苦戰)하던 나에게 큰 변화가 찾아온 건 플렉스타임을 사용하면서부터다. 고작 출·퇴근 시간을 1시간 앞당겼을 뿐이었지만, 나의 24시간이 모두 변했다. 플렉스타임 사용 후에는 일을 조금 더 하게 되더라도 6시 전후에는 퇴근이 가능하게 됐다. 저녁 시간이 길어지니 내가 원하는 것들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가장 먼저 꽃꽂이 수업에 다시 참석하기 시작했다. 평소 나간다고 말만 하고 출석률은 제로에 가깝던 모임이었다. 오랜만에 창의력을 발휘해 손을 움직여 꽃을 정돈하며 차분하게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좋아하는 꽃을 보고, 만지고, 향기를 맡으며 나 스스로를 힐링할 수 있는 멋진 저녁 시간이었다.

평소 관심을 가져왔던 스페인어 공부도 시작하게 됐다. 요즘에는 굳이 학원에 등록하지 않아도 유튜브로 자율 학습이 가능하다. 플렉스타임을 사용하기 전에는 귀가한 후 저녁을 먹고, 늦은 시간에야 컴퓨터 앞에 앉을 수 있었기 때문에 집중력이 많이 떨어졌었다. 때문에 몇 번 공부를 시도했다가도 실패하곤 했다. 하지만 요즘에는 집으로 돌아와 저녁 식사를 마쳐도 잠자리에 들기까지 시간이 여유롭게 남기 때문에 부담 없이 공부할 수 있다.

평일에 쇼핑을 할 수 있게 된 것도 큰 변화였다. 원하는 물건들을 마음껏 구경하고 소비하며 스트레스를 푸는 내게 사람이 덜 붐비는 평일에 쇼핑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마치 축복과도 같다. 유난히 업무가 많아 힘들었던 날에는 퇴근 후의 작은 사치로 나 스스로를 위로해주곤 했다.

플렉스타임은 지난 4년 간의 내 회사 생활에 가장 큰 변화였다. 짧은 시간이지만 온전히 나의 시간을 소유하고, 나를 가꾸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변화는 '여유'에서 시작됐다. 퇴근을 하고 잠에 들기 전까지 1시간의 여유가 더 생겨난 것. 이 작은 변화가 나의 삶의 질을 한 단계 높였다. 이 활력은 업무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며칠 전, 동료를 통해 회사 근처에 오전 일찍 진행하는 필라테스 수업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에 맞춰 요즘에는 출퇴근을 평소보다 뒤로 미루어 아침 시간을 여유롭게 활용할 계획을 세워보고 있다. 플렉스타임이 없었다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계획이다. 바쁜 삶에서 끊임없이 나 자신을 가꿀 수 있는 원동력. 내게 플렉스타임은 그런 의미다.

조희원 Tech-Fin사업팀 대리

일도 가정도 중요하니까요

세상 모든 엄마들은 절절히 이해할 것이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늘 예상치 못한 벽에 부딪힌다. 친정 엄마께서 갑자기 허리가 편찮으셔서 꼼짝 못하시던 그 날도 그랬다. 엄마 걱정이 우선이어야 했지만, 당장 유치원에 아이 데리러 갈 걱정이 급했다. 유난히 출장이 많은 남편에게 SOS를 칠 수 있는 날은 많지 않았다. 이런 위급 상황이 생길 때마다 반차를 쓰고 퇴근했지만, 지난해 중반에 입사한 까닭에 남은 휴가마저 많지 않아 늘 불안했다.

맞벌이 부부 자격으로 신청해 놓고도, 사용할 때마다 결재를 받아야 하는 줄 오해하고 미뤄뒀던 플렉스타임을 떠올린 건 그 때문이었다. 아이를 하원 시키러 가야 할 때면 오전 7시에 출근해 일하고 오후 5시에 퇴근했다. 고작 한 시간 반의 차이일 뿐인데도 전전긍긍하지 않는 삶이 가능해졌다. 워킹맘이라는 이유만으로 늘 아이에게 미안해하지 않을 수 있었다.

위급 상황에만 플렉스타임을 활용한 건 아니었다. 불가피하게 야근이 많아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많지 않은 기간엔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플렉스타임을 활용해 일찍 퇴근한 후 아이를 데리러 갔다. “우리 엄마에요!” 다섯 살 난 아들이 유치원 친구들에게 자랑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도 덩달아 기뻐지는 한편 짠했다. 평소 티를 낸 적은 없지만 친구들은 늘 엄마가 데리러 오는 게 못내 부러운 모양이었다. 일찍 퇴근하기 위해선 그만큼 일찍 출근해야 했으니 새벽부터 훨씬 더 바지런하게 움직여야 했지만, 잠을 줄이더라도 그렇게 아이와 함께 퇴근하는 길이 소소한 행복이었다.

함께 살며 육아를 대신 도맡아주고 계신 친정 엄마를 향한 미안함도 조금은 덜 수 있었다. 그래 봤자 일주일에 한 번, 하루 한 시간뿐이었지만, 아이를 돌볼 땐 한 시간이 얼마나 긴 지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알았다. 그렇게라도 잠시나마 엄마를 육아로부터 해방시켜 드릴 수 있어 참 다행이었다.

돌이켜보면 행운이었다. 주변엔 플렉스타임을 신청해 놓고도 막상 사용하지 못하는 맞벌이 부부 동료들도 적지 않았다. 그에 반해 나는 팀장님과 팀원들의 이해 덕분에, 내가 너무 눈치를 안 보고 플렉스타임을 쓰고 있는 건 아닐까 문득문득 걱정이 될 정도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다. 동료들이 먼저 배려해주니, 오히려 좋은 제도의 혜택을 혼자 누리고 있는 건 아닌가 미안해질 때도 많았다. 늘 일과 가정 사이에서 고민할 수밖에 없는 워킹맘에게 플렉스타임은 분명 고마운 제도였다. 매일 함께 일하는 동료들의 플렉스타임에 대한 이해와 배려는 제도의 존재 이상의 큰 힘이었다.

오승언 고객마케팅1팀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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