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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방에서 포장 디자이너는 몇 달 동안 상자들을 열어보는 일만 반복한다. 이는 매우 단조로운 작업이긴 하지만 한편으로 매우 중요한 일일 수 있다. 이 비밀스런 방 안에는 수백 개의 아이팟 상자 견본이 있다. 그렇다. 이 상자들은 고객이 새롭고 신기한 물건을 사서 포장을 뜯는 기분을 디자이너가 직접 느껴보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디자이너는 진열대에 걸거나 손잡이 용도로 아이팟 상자 뒷면 상단에 붙이는 투명 스티커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화살표 모양, 색상, 접착테이프 등을 수없이 디자인하고 시험해본다. 그들은 제대로 된 제품을 만들어내는 일에 강박적으로 집착한다."
경제전문지 <포춘(Fortune)>의 선임기자인 애덤 라신스키(Adam Lashinsky)는 '애플(Apple)'의 문화와 일하는 방식을 분석한 자신의 저서 <인사이드 애플(Inside Apple)>에서 애플의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 내 제품 포장 공간을 이렇게 묘사한다. 애덤 라신스키가 덧붙인 것처럼 흔히 ‘소프트웨어 설계나 하드웨어 제조와 같은 무겁고 복잡한 일에 비하면 포장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한참 뒤로 미뤄도 되는 일’로 여겨지는 데 반해, 애플이 제품 포장 과정을 얼마나 중요시 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한편 국내 기업 가운데 선도적으로 패키지 디자인에 가치를 부여해온 현대카드는 지난 7월 프리미엄 카드 라인인 ‘the Black’ ‘the Purple’ ‘the Red’의 새로운 패키지 ‘the book’을 선보였다. 디지털 콘텐츠가 범람하는 2019년, 현대카드가 ‘책’을 컨셉트로 한 의외의 패키지를 꺼내 놓은 까닭은 무엇일까?
패키지, 브랜드와 상품의 정체성을 전달하는 매개체(왼쪽부터) ‘the Purple’의 알루미늄 캔 패키지(2009), ‘the Black’ 카드 플레이트의 리퀴드 메탈 소재 특성을 표현한 패키지(2011)
기존 카드 패키지의 고정관념을 탈피한 현대카드만의 신용카드 패키지는 이번 ‘the book’이 처음은 아니다. 현대카드는 지난 2009년과 2011년 프리미엄 카드인 ‘the Purple’과 ‘the Black’의 패키지 소재로 일반적인 종이가 아니라 금속을 연이어 선택하면서 눈길을 끌었다. 먼저 2009년 선보인 ‘the Purple’의 알루미늄 캔 패키지는 마치 음료수 캔을 따듯 알루미늄 캔의 뚜껑을 ‘딸깍’하고 따면 밀봉된 카드 플레이트가 등장하는 형식이었다. 2011년 리뉴얼한 ‘the Black’의 패키지는 마치 잔잔한 파도가 치는 듯한 형상을 구현해 시각만으로도 가늠할 수 있는 촉감을 완성했다.
그런데 현대카드가 종이 봉투 또는 종이 상자 대신 금속 소재의 패키지를 선택한 이유는 단순히 디자인적인 아름다움을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현대카드는 2009년 2월 국내 최초로 ‘the Black’의 카드 플레이트를 이른바 ‘금속의 다이아몬드’라 불릴 만큼 강한 내구성을 자랑하는 티타늄(Titanium)으로 제작한 데 이어 7월에는 ‘the Purple’ 고객에게도 티타늄 카드 플레이트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이 때 알루미늄 캔 위에 보라색으로 ‘the Purple Titanium Plate’라 쓴 패키지는 카드 플레이트를 직접 보지 않고도 티타늄 소재의 금속성을 단숨에 느끼게 해주기에 충분했다.
이후 2011년에는 ‘the Black’에 현존하는 금속 중 최고 강도를 자랑하는 리퀴드 메탈(Liquid Metal) 카드 플레이트를 세계 최초로 도입했는데, 리퀴드 메탈은 점성 때문에 형상 구현이 쉽지 않은 여타 금속과 달리 녹여서 틀에 넣었을 때 물과 같은 유동성을 지닌다는 특성이 있었다. 마치 흐르는 듯한 이미지를 지닌 패키지 디자인은 바로 완전히 녹인 리퀴드 메탈의 물성을 고스란히 담고자 하는 시도였던 셈이다.
이렇듯 상품의 속성을 머금은 패키지는 고객으로 하여금 상품을 직접 만나기 전부터 상품의 정체성을 공유할 수 있는 통로가 되어 주었다. 더 나아가 신용카드를 단순히 결제의 수단이 아닌 개인의 개성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규정하고, 플레이트 소재에까지 끊임없이 혁신을 추구하는 현대카드라는 브랜드의 세계를 경험케 해주는 매개체이기도 했다.
고객의 경험을 배려한 패키지하지만 패키지가 브랜드와 상품의 정체성을 디자인적으로 전달했다고 해서 그 존재의 의미를 다한 것은 아니다. 실제 그 패키지를 열고 상품을 이용하는 고객의 경험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 없이 디자인만 남은 포장은 마치 ‘질소 포장 과자’처럼 소비자에게 실망만을 안겨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왼쪽부터) 목차를 뒷표지에 날개 형태로 붙여 원하는 페이지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한 ‘the Red’ 패키지(2011)와 ‘리프트’ 방식을 적용해 모든 내용물이 한 번에 들어 올려지도록 고안한 ‘the Purple’ 패키지(2011)
현대카드가 2011년 ‘the Red’와 ‘the Purple’의 카드 패키지를 리뉴얼하는 과정에서 가장 고민했던 주제는 고객이 신청한 카드를 받아볼 때의 경험이었다. ‘여러 권으로 나뉘어진 가이드북은 번거롭기만 할 뿐, 정작 필요한 정보를 찾기에는 어렵지 않을까?’ ‘고객 본인 카드, 가족 카드, Priority Pass 카드, 각종 바우처, 가이드북 등의 수많은 구성품을 한 데 모아 보관하기 쉽도록 하나의 패키지 안에 담으면서도 쉽고 편리하게 꺼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그 결과 ‘the Red’ 패키지 리뉴얼 과정에서는 2권의 가이드북을 하나로 합치되 그 내용을 카테고리와 레벨에 따라 분류한 후 목차를 뒷표지의 날개 형태로 붙이는 방식이 채택됐다. 고객이 원하는 페이지를 쉽게 펼칠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 개별 페이지 또한 카드의 혜택 및 정보 등이 한 눈에 읽힐 수 있도록 ‘그리드(수직과 수평으로 면을 분할하는 격자 모양)’ 형태로 구성했다. 뿐만 아니라 ‘the Purple’ 패키지에는 케이스를 연 다음 스트랩을 잡아 당기면 케이스 바닥의 장치가 움직여 모든 내용물이 한 번에 들어 올려지는 ‘리프트’ 방식을 고안하기도 했다.
모두 어떤 패키지가 디자인적으로 아름답고 기발한가가 아니라, 카드 패키지가 근본적으로 어떤 기능을 해야 하는가를 고객 입장에서 고민하고 디자인적으로 풀어낸 결과물이었다.
현대카드, 버려지지 않는 패키지에 고객의 라이프 스타일을 담다(왼쪽부터) 지난 7월 선보인 프리미엄 카드의 새로운 패키지 ‘the Black book’ ‘the Purple book’ ‘the Red book’
현대카드의 프리미엄 라인 ‘the Black’ ‘the Purple’ ‘the Red’는 각 프리미엄 카드가 추구하는 가치를 색깔을 통해 드러내고, 각각의 고객 라이프 스타일에 최적화된 상품과 혜택을 제공해왔다. 지난 7월 선보인 프리미엄 라인의 새로운 패키지 ‘the book’은 이렇듯 색을 통해 그 카드를 사용하는 고객의 라이프 스타일까지 대변하고자 하는 현대카드 프리미엄 카드의 특수성을 패키지에까지 확장하고자 하는 노력이다.
먼저 각 패키지 디자인은 3개의 브랜드가 지니고 있는 컬러의 캐릭터를 드러낼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the Black book’이 검은색과 흰색의 대비를 통한 압도적인 이미지를 지녔다면, ‘the Purple book’은 손 끝의 촉감에 집중한 세심하고 깊은 감성을 강조했고, 마지막으로 ‘the Red book’은 생동감이 넘치는 색을 활용해 넘치는 에너지를 표현했다.
그리고 3권의 책 안에는 각 프리미엄 카드가 대변하는 고객의 라이프 스타일을 보여주는 3개의 테마를 선정한 후, 해당 테마 안에서 세계적인 트렌드를 다루는 다양한 콘텐츠를 담았다. 예를 들어 ‘innovation & business’을 테마로 다룬 ‘the Black book’에서는 오피스와 가구가 주는 효용성 및 환경오염에 대한 해결책 등 오피니언 리더들을 위한 콘텐츠를, ‘design & travel’을 주제로 한 ‘the Purple book’에서는 뉴욕 현대미술관(MoMA)의 시니어 큐레이터 파올라 안토넬리(Paola Antonelli)가 재조명한 우리 삶의 디자인과 같은 익스클루시브한 정보를, 마지막으로 ‘art & fashion’을 다룬 ‘the Red book’에서는 다양한 의류 브랜드에서 시도하고 있는 테크와 패션의의 결합 등 열정적인 ‘트렌드세터’를 위한 최신 유행을 소개하는 식이다.
이렇듯 ‘the book’은 현대카드의 프리미엄 카드가 상징하는 색깔이 단순히 구분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각 회원이 선택한 신용카드가 그 회원이 누구이고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준다는 가치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더불어 책장에 꼽아두고 싶은 디자인 퀄리티와 두고두고 읽을 수 있는 콘텐츠를 통해, 한 번 뜯고 버려지는 포장이 아니라 상품의 가치를 회원들과 오래 공유할 수 있는 소통의 창구로 자리매김하게 한다.
현대카드 Brand Design팀 이경하 팀장은 “처음으로 제품의 포장을 여는 과정을 뜻하는 ‘언패킹(unpacking)’ 문화의 확산은 이제 고객 또한 포장을 상품의 ‘껍데기’로만 인식하지 않는다는 점을 증명한다”며 “현대카드의 ‘the book’은 마치 시대를 초월하는 가치를 지니는 ‘책’과 같이 변하지 않는 프리미엄의 가치를 전달하는 매개체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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