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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주의] 현실은 잠시 OUT, 세계관을 소비하는 신인류


재구성된 현실에 몰입하고 즐기는 MZ세대


2022.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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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카드∙현대커머셜 뉴스룸이 MZ세대의 트렌드 이면에 숨겨진 의미를 사회과학적으로 분석해 MZ세대를 들여다보는 ‘MZ주의’ 시리즈를 선보입니다. MZ주의 네 번째 이야기는 ‘무한도전’ 입니다. ‘무한도전’은 유재석, 정준하, 박명수 등이 출연해 큰 인기를 끌었던 예능 프로그램인데요. MZ세대들은 이 무한도전이 만들어낸 나름의 세계 안에서 현실을 잊고 즐거움을 만끽했습니다. 그런데 이는 비단 무한도전만의 이야기는 아니라고 하는데요. 김서윤 하위 문화연구가가 ‘세계관 콘텐츠’를 소비하는 MZ세대들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무한도전
무한도전

(출처=MBC)

MZ세대는 넓은 범위를 가진 세대다.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20~30대를 일컬을 때가 많다. 많게는 20살 가까이 차이가 나는 사람들을 하나의 세대로 묶을 수 있는지에 대한 논란이 제기되는 이유다.

X세대는 1970년대생, 그러니까 지금의 40대를 가리키는 단어다. X세대 다음 세대를 무엇이라 부르면 좋을지에 대해 많은 사회학자들이 의견을 내놓았는데, 가장 잘 알려진 세대 명칭은 ‘88만원 세대’ 이다. 이 때도 20~30대를 일컬어 88만원 세대라고 통칭했는데, 이 용어는 세대의 경제적 지위에 지나치게 집중한 나머지 사회문화적 역동성을 반영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곤 한다. MZ세대는 88만원 세대와는 좀 다른, 20~30대의 사회문화적 정체성에 주목한 용어다. 특히 MZ세대는 이들을 M과 Z로 나눌 수 없다는 점에 주목한다. M과 Z는 동질한 문화적 경험을 해왔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무한도전’에 대한 것이다.

‘무한도전’은 2006년 첫 방영 돼 2018년에 종영하기까지 줄곧 MZ세대에게 화젯거리를 제공해주던 프로그램이다. 한국갤럽에서 2013년부터 조사한 '한국인이 좋아하는 TV 프로그램' 조사에서27개월 연속 1위를 하고, 48회나 1위로 꼽힌 것을 보면 인기를 짐작할 수 있다.

세계관 콘텐츠의 탄생

MZ세대에게 ‘무한도전’은 단지 방송 프로그램이 아닌, 하나의 세계관이다. 무한도전은 현실과 맞닿아 있는 프로그램이다. '평균에 못 미치는' 남자들은 현실과 브라운관을 넘나들며 콘텐츠를 만들어냈다. 스튜디오에서만 녹화된 회차는 많지 않다. 서울 여의도든, 남산이든 야외 현장에서 촬영된 게 대부분이다.

‘무한도전’의 세계관은 현실에서 만들어졌다. 출연자의 캐릭터는 맨 처음 제작진에 의해 설정되었다가 13년의 방영 기간을 거치는 동안 서사가 쌓이면서 수없이 변하고 다듬어졌다. 많이 먹는 뚱보 형이던 정준하는 놀림 받는 억울한 캐릭터가 되었다가, 총무 역할을 수행하기도 하고, 만년 과장 역할을 맡기도 했다. 어색하고 재미없던 정형돈은 진상을 피우는 캐릭터로 변모했다가 '미친 존재감'을뽐내는 가요제의 황제가 되기도 했다.

무한도전 멤버들

(출처=MBC)

캐릭터의 변화는 이 프로그램이 '서사(Narrative)'를 쌓으면서 진행된 일이다. ‘무한도전’ 멤버들은 돈 가방을 두고 추격전을 펼치고 프로레슬링을 하고 알래스카로 떠났다가 돌아왔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시청자 45만 명이 참여하는 선거를 한 적도 있다. 가요제를 열어 내로라하는 아티스트들을 불러모으는가 하면, 일 년 가까이 프로레슬링을 준비하고 조정을 배워 대회에 참가하기도 했다.

수많은 에피소드는 따로 진행되는 듯 서로 얽혀 하나의 큰 서사를 완성한다. 서사는 세계관을 구성하고 세계관 안에서 또 새로운 서사가 생겨난다. 이 지점에 이르면 ‘무한도전’의 세계관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확연히 나뉜다. 세계관을 이해하고 서사를 즐길 수 있는 '팬'들은 팬덤을 이루고 나름의 팬덤 문화까지 만들어낸다.

이 흐름은 MZ세대에게 익숙하다. MZ세대는 세계관으로 콘텐츠를 이해하고 즐긴다. ‘무한도전’ 이후의 예능을 떠올려보자. 대부분의 예능 프로그램은 자신들만의 세계관을 만드는 일부터 시작했다. 캐릭터를 설정하고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동안 쌓인 서사는 캐릭터를 조금씩 변형해가며 세계관을 형성한다. 그리고 충성스러운 팬덤이 생긴다. ‘삼시세끼’가 그랬고 ‘나 혼자 산다’가 그렇다.'펭수'도 마찬가지다.

펭수와 K팝의 공통점

EBS에서 만들어진 캐릭터 '펭수'는 2019년과 2020년에 걸쳐 가장 인기 있는 콘텐츠였다. 펭수의 성공은 한국 대중이 이제 세계관으로 콘텐츠를 이해하고 즐긴다는 것, 즉 '세계관 콘텐츠'의 힘을 잘 보여준 사례다. 자신을 10살 난 펭귄이라고 주장하는 펭수는, 그리고 이를 반쯤 진심으로 믿는 팬들은 굉장히 천연덕스럽게 펭수 세계관을 만들고 확산시켜가며 큰 인기를 구가했다. EBS에서 집계한 바에 따르면 유튜브 채널 <자이언트 펭TV>의 구독자의 대부분은 MZ세대가 차지한다.

자이언트펭TV
자이언트펭TV

(출처=자이언트펭 TV)

MZ세대에게 그만큼 펭수 세계관이 자연스럽고 흥미롭게 받아들여졌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펭수의 성별은 정해져 있지 않다. 펭수는 남극에서 한국까지 헤엄쳐 왔다고 주장한다. 펭수가 진짜 펭귄이 아니라는 지적에는 엑스레이를 찍어 펭귄임을 증명한다. 기성세대가 보면 장난스럽기까지 한 이야기를 MZ세대는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펭수는 진짜 펭귄이다'라고 하면서 펭수 세계관 안에서 이야기를 감상하고 새롭게 만들어낸다.

'세계관 콘텐츠'의 세계관 속에서 팬은 단순히 콘텐츠를 소비하기만 하지 않는다. 콘텐츠에 참여하여 직접 창작물을 만들기도 하고, 이야기를 공유하고 확산시키며, 홍보한다.

이런 방식에 익숙해진 MZ세대가 만들어낸 문화적 현상이 바로 한류 혹은 K컬처 붐이다. K드라마, K팝을 비롯한 많은 K컬처는 세계관을 만들고 그 안에서 콘텐츠를 생산해낸다. K팝을 예로 들면 EXO, 방탄소년단, aespa 같은 그룹들은 기획 단계에서부터 세계관을 만들어낸다. aespa의 멤버는 각각의 아바타 'ae'를 가지고 있다. 'ae'는 현실 세계의 멤버와 연결돼 있는데, '블랙맘바'와 싸워, 광야에 도착하는 여정이 aespa의 노래에 담겨 있다. 세계관을 모르면 노래 가사의 의미를 정확히 알지 못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보다 더 강력한 것은 그룹의 서사가 쌓여 만들어지는 세계관이다. K팝 그룹은 단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집단만이 아니다. 그보다는 방송 활동 등을 통해서 보여주는 캐릭터의 집합체로, 대중에게 즐길 거리를 제공해주는 집단이다.

UN에서 연설하는 방낱소년단
UN에서 연설하는 방낱소년단

UN에서 연설하는 방탄소년단 멤버들

예를 들어 방탄소년단의 멤버 뷔는 무대 위에서의 카리스마 있는 모습과 달리 평소에는 엉뚱하고 재기발랄한 매력이 있다. 그가 간혹 엉뚱하게 사용하는 언어가 팬덤 내에서 통용될 때가 있는데, 대표적인 게 '보라해'다. '사랑해' 혹은 '널 믿어' 등의 말을 대체해 쓰는 '보라해'라는 말은 방탄소년단과 방탄소년단 팬이라면 한 번씩은 써본 말일 것이다.

이처럼 K팝 그룹의 팬덤은 현실과는 구분되는 세계관을 지니고 있다. 그 세계의 중심은 K팝 그룹이고, 멤버 간의 관계와 그룹 활동으로 생긴 서사가 세계의 작동 원리가 된다. 무대 위에서 부르는 노래와 노래와 방송을 통해 보이는 모습은 가장 기본적인 것이다. 요즘 K팝 그룹은 모두 자체적으로 만들어내는 콘텐츠가 있다. 방탄소년단은 <달려라 방탄>, 세븐틴은 <GOING SEVENTEEN>, NCT DREAM은 <NCT LIFE>라는 방송을 자체 채널이나 유튜브를 통해 제공하고 있다. 여기에 팬들이 만들어내는 창작물들은 세계관을 구성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트위터 같은 소셜미디어에서 공유되는 사진과 영상, 글 같은 콘텐츠는 물론 팬픽, 팬아트 같은 콘텐츠가 이에 포함된다. 이 세계관은 콘텐츠에 대한 진입을 어렵게 하기도 하지만 충성도 높은 팬덤을 만들어낸다는 장점도 있다.

콘텐츠, 예를 들어 K팝 그룹의 팬이라고 자처하려면 무대 영상을 보고 노래를 듣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최소한 그룹 멤버들이 어떤 캐릭터인지 알아야 하고 쌓아온 서사를 대충 파악해야 한다. 세계관을 수용하고 즐기며 확장시키려면 한 번의 시청이나 감상만으로는 부족하다. 무한도전의 팬이 그랬고, K팝 그룹의 팬이 그러한 것처럼 세계관 콘텐츠의 팬덤은 콘텐츠를 끝없이 반복해 즐기고 세분화해서 즐긴다. 무한도전의 팬덤은 종영한 지 한참 지난 프로그램을 보고 또 보며 온라인 커뮤니티에 콘텐츠를 공유한다. K팝 그룹의 팬이 그룹이 출연한 프로그램과 등장한 영상을 초 단위로 쪼개어 살펴보는 것과 같다.

세계관 콘텐츠, 그러니까 K컬처는 이렇게 충성스러운 팬덤을 생성한다. 전 세계적으로 이같이 충성스러운 팬덤이 있는 경우도 드물다. 거기다 이 팬덤은 세계 어느 곳에서나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문화권이나 국가마다 다른 식으로 콘텐츠를 소비하는 게 아니라 한국 팬처럼 외국 팬들도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는 거다.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즐겁고 행복한 세계관 속 현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점은 각 콘텐츠의 세계관이 현실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그건 '진짜 현실'이 아니라는 점이다. ‘무한도전’도 그렇다. ‘무한도전’은 주로 야외에서 촬영한다. 출연자들이 오가는 길, 서 있는 장소는 시청자 누구나 밟을 수 있는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종종 시청자들은 ‘무한도전’이 현실 속에서 진행되고, 이 프로그램이 비춰주는 현실은 진짜 현실이라고 착각한다. 그러나 ‘무한도전’은 현실을 반영하는 게 아니라 현실을 재구성한다.

‘무한도전’이 만들어낸 현실은, 안전하고 즐거운 것이다. 고통스럽고 불안하지 않다. ‘무한도전’에는 평균에 못 미치는 사람들은 있지만, 취업에 실패하고 꿈을 포기하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이들이 사는 현실은 노력하면 감동적인 결말을 얻는 곳이다. 늘 새롭게 끈끈한 가족애를 느끼며 다툼마저도 유머로 승화된다. 충분히 즐길 만한 현실이다.

그래서 ‘무한도전’의 현실은 미래가 아닌 현재를 바라보게 한다. 출연자들은 다음 주에 무슨 일을 하게 될지, 심지어 당일 저녁에 어느 곳에 서 있게 될 줄도 알지 못한다. 그저 현재 주어진 일만을 처리하고, 닥친 감정에 몰입할 뿐이다. ‘무한도전’의 세계관을 만들어 그 안에 몰입해 있는 한, 우리 현실에 팽배한 허무감이나 불안감, 초조함을 모두 넘어서게 만든다.

모든 세계관을 지닌 콘텐츠는 마찬가지 역할을 한다. 방탄소년단 팬덤은 방탄소년단의 세계관에 몰입한 동안은 방탄소년단이 외치는 "너 자신을 사랑하라"는 말을 따르며 "가장 중요한 건 자기 자신을 아껴주고, 격려해주고, 가장 즐겁게 해주는 일"이라는 걸 믿고 "다시 드넓게 펼쳐지는 미래를" 꿈꾸며 현재를 즐긴다.

왜 세계관이 있는 콘텐츠가 MZ세대에게 어필하는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콘텐츠가 만들어낸 세계관을 아껴주고 격려하며 응원하는 관계가 대부분이다. 간혹 다툼이 일어나더라도 현실 세계의 생존 문제와는 거리가 멀다. 그 안에서 MZ세대는 잔혹한 현실을 잊을 수 있다.

김서윤 하위문화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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