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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의, 따끈따끈하고, 생생한 테크 씬의 이야기를 들려드리는 ‘테크토크(Tech Talk)’. 생활 여기저기서 많이 들리는 ‘메타버스’에 대해 알아봅니다. 메타버스는 기술이 아닌 라이프스타일이라고 말하는 이요훈 칼럼니스트의 이야기를 함께 만나보세요.
*본 글은 외부 필진의 기고로 현대카드·현대커머셜 뉴스룸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오랫동안 소문만 무성했던 애플의 AR 헤드셋, 애플 비전 프로가 발표됐다. 그래서일까? 발표 이후에는 비전 프로에서 제시한 공간 컴퓨팅을 미리 경험할 수 있다는 장비나 앱도 많아졌다. 가상현실 기술을 활용한 여러 이벤트도 좀 더 늘어났다. 잊혀지던 단어, 메타버스가 갑자기 부활했다.
부활하는 메타버스?
<Gucci 홈페이지 https://www.gucci.com/kr/ko/st/stories/inspirations-and-codes/article/gucci-visions>
지난 6월 이탈리아 피렌체에 있는 구찌 가든에서 열린 ‘구찌 비전(Gucci Visions) 전시에서 ‘메타버스’ 룸이 한 쪽에 설치됐다. 이 방에 방문한 사람은 게이밍 의자에 앉아, 로블록스나 더 샌드박스 같은 메타버스 서비스에 차려진 구찌 타운, 구찌 볼트 랜드 등에 방문해 색다른 구찌 브랜드를 즐길 수 있다.
<KAGAMI 공연 THE SHED https://theshed.org/program/299-kagami-by-ryuichi-sakamoto-and-tin-drum>
지난 4월 세상을 떠난 일본의 작곡가이자 뮤지션인 사카모토 류이치를 추모하는 콘서트인 ‘KAGAMI’는 혼합 현실(Mixed Reality, MR) 기술로 만들어졌다. 원형 공연장을 둘러싸고 MR 안경을 쓴 관객들이 자리에 앉으면, 피아노 앞에 앉은 류이치가 나타나 피아노를 연주한다. 관객은 사카모토 류이치에게 가까이 다가가 연주를 볼 수도 있고, 옆을 걸어다니면서 들을 수도 있다. 말 그대로 그와 연주를 함께 할 수 있다.
이러한 이벤트만 늘어난 것도 아니다. 많은 회사들에서 가상현실을 위한 장비, 프로그램 등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온라인 게임에서도 메타버스 플랫폼을 확장하고 심지어 정부에서도 ‘메타버스 선도 프로젝트’나 '2023 코리아 메타버스 어워드’, ‘메타버스 아카데미’ 등을 운영하며 적극적으로 지원에 나서고 있다.
몰락하는 메타버스
이쯤되면 메타버스가 다시 살아났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메타버스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어디에 쓸 지도 모르고, 뚜렷한 수익 모델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관련된 투자도 줄어들었다. 금리가 오르면서 투자 빙하기가 다가오자, 실제로 돈을 벌지 못하는 프로젝트는 가장 먼저 정리 대상이 돼버렸다.
당장 지난 5월, 메타에서 대규모 정리해고를 감행하면서 VR 사업 쪽 엔지니어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디즈니에서는 메타버스 사업 부서 전원을 해고했다. MS에서도 소비자용 메타버스 개발 부서를 해체하고, 메타버스 SNS 플랫폼 ‘알트스페이스VR’을 폐쇄했다. 국내도 다르지 않아서, 3D 아바타 채팅앱 제페토를 제외하면 실제 운영되는 메타버스 서비스는 없다시피 하다.
왜 이렇게 됐을까? 표면적 이유는 돈이 되지 않아서다. 메타버스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고 AI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주요 빅테크 회사들은 가용 자원을 모두 인공지능 사업으로 돌렸다.
메타버스라는 아이디어 자체가 가지고 있는 문제도 있다. 메타버스, 메타버스 말을 하지만, 진짜 그게 무엇인지는 다들 모른다. 오죽하면 지금도 ‘메타버스는 그리스어로 '초월'을 뜻하는 '메타Meta'와 '우주'를 뜻하는 '유니버스 Universe'의 합성어’란 잘못된 정의가 계속 쓰일까
◉ Meta는 after 또는 beyond란 의미를 담고 있고, 메타인지/ 메타정보/ 메타메시지 같은 단어에서 보듯, 어떤 정보 틀에 숨겨진, 내포된 정보를 지칭할 때 주로 붙는다. Metaverse는 Physics(물리학)-MetaPhysics(형이상학)이란 단어가 만들어지듯, Universe-MetaUniverse로 만들어졌다.
일반적으론 몰입형 가상현실세계(대체 현실)를 뜻하는 의미로 많이 쓰였지만, 메타버스라는 말이 유행하면서 원 뜻이 사라진 케이스다. 그러다보니 3D 협동 시뮬레이션(엔비디아의 옴니버스), VR 채팅(메타), MR 원격 회의(MS의 매쉬), 온라인 게임(포트나이트)과 게임 플랫폼(로블록스) 등 온갖 것이 다 메타버스라 불렸다. 심지어 텍스트 기반의 메타버스를 제공하겠다는 회사도 있었다.
이러니 말은 거창한데, 눈에 보이는 게 없다. 원래 게임이라 불렸던 것이나, 원래 VR 기술이라 불렸던 것에 더해 3D 아바타 채팅 프로그램이라는, 20년 전에 나왔던 기술이 갑자기 신기술처럼 말해진 탓이다. 관심을 모아 투자 받거나 물건을 팔기 위한 마케팅 전략이지만, 꽤 거창한 거짓말이나 다름이 없다.
거짓말을 한 댓가는 시간이 지나자 그대로 드러났다. 지난 6월 정보 통신 정책 연구원(KISDI)에서 펴낸 ‘메타버스 이용 현황 및 이용자 특성’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국민의 메타버스 이용률은 4.2%에 그쳤다. 닌텐도 스위치 게임인 ‘동물의 숲’ 이용자까지 포함한 결과다. 게임을 제외하면 메타버스라고 불리는 서비스를 쓰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도 좋다.
메타버스를 버려야 메타버스가 산다
메타버스는 남용 끝에 그게 뭔지 모를 단어가 되고 말았다. 애플에서 비전 프로를 발표하면서, 한번도 메타버스라는 말을 쓰지 않은 이유다. 사실 다른 사람도 메타버스란 말을 쓰지 않는다. 메타버스 유행에 한몫한 에픽 CEO 팀 스위니도, 엔비디아 CEO 젠슨 황도, 이젠 슬그머니 메타버스란 말을 버렸다. 대신 3D 기술이라고, VR 기술이라고 한다. 한참을 헤매던 말이 이제야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
처음부터 메타버스가 아니라 그 이름으로 불려야 했다. 메타버스는 지금 존재하는 인터넷을 대신할 차세대 인터넷이다. 앞으론 모두가 메타버스에서 활동하고 지금 쓰는 평면 인터넷은 사라져 버릴 것이다. 현실이 아니라 가상세계에서 살아가는 날이 온다. 이런 말은 하지 않는 게 좋았다. 메타버스가 나쁜 것도 아닌데, 너무 많은 아이디어를 다 갖다 붙인 유행어가 되면서,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됐다.
대신 원래 이름을 붙여주면, 그 기술에 맞는 할 것이 생긴다. 에픽이 3D 기술에 집중하겠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이 기술을 이용해 게임을 만들고 영화를 만든다. 애플은 공간 컴퓨팅이라고 부르며, 노트북 컴퓨터나 TV나 스마트폰을 다 하나로 합친듯한 비전을 제시했다. 사실 VR 헤드셋은 간편한 대형 디스플레이로 진화하는 중이기도 하다. 제페토는 재미있는 3D 아바타 채팅앱이며, 로블록스는 여러 게임방을 골라서 놀 수 있는 게임 플랫폼이자, 게임 제작을 배울 수 있는 도구이기도 하다. 이걸로 뭘 할 수 있는지, 왜 써야 되는 지가 확실하다.
메타버스는 기술이라기 보다는 라이프스타일에 가깝다. 디지털 기반 대체 현실에서 커뮤니케이션 한다고나 할까. 그리고 이렇게 디지털 세상에 기반한 삶은, 울티마 온라인 같은 게임에서 시작해 이미 널리 존재한다. 게임이 구현한 세상에서 집 짓고 연애하고 낚시하며 사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다만 그것이 아직 게임적 범주, 3D 아바타 채팅 프로그램을 벗어나지 못했을 뿐이다.
그럼 메타버스는 이제 완전히 사라질 개념일까? 그렇게 말하긴 어렵다. 그냥 살던대로 살아도 되긴 하지만, 다른 가능성이 보여서 그렇다.
빅데이터 전문가인 다음소프트 송길영 부사장은 2020년 인터뷰에서 ‘(멀리 보면) 데이터는 고령화, AI, 하이퍼커넥트를 가리키고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 사회적으론 고령화로 인한 변화와 외로움이 문제가 되고, 업무적으론 인공지능을 사용한 자동화가 폭넓게 진행되며, 우리는 SNS를 비롯해 여러 도구를 사용하며 초연결된 삶을 살거라는 말이다.
메타버스가 기술이 아니라 라이프스타일이란 말은, VR을 비롯해 여러 기술을 융합해 가야할 방향을 가리키는 비전이란 뜻이 되기도 한다. 당분간은 메타버스는 사라질 것이다. 대신 원래 기술의 이름으로, 그 기술이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하게 된다. 그러다 다시 기술들이 만나, 나이든 사람을 돕고, 서로를 연결하고, 자동화된 디지털 도구를 더 쉽게 쓸 수 있게 만들어준다면, 그때쯤 그 상태를 메타버스에 접어들었다고 부를 날도 오지 않을까?
IT 칼럼니스트 이요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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