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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olumn] 카메라 뒤에 섰을 때 마침내 만나게 된 사람


누구나 찍고 누구나 찍히는 시대. 소통의 총량은 폭발했지만, 정작 나 스스로를 만날 시간은 부족한 시대. 배우 류준열은 혼자가 되기를 선택했다


2020.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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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이’ 스마트폰 속 세상에 머물게 되는 요즘. 제아무리 재미있는 것들이 많다고 해도 이렇게 떠밀리듯 시간을 보내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젠 사람들은 어떤지, 또 무엇을 하며 지내는지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오늘은 칼럼니스트 정우성씨가 배우 류준열씨가 지난해 미국을 돌아다니며 렌즈에 담아온 평범한 일상들을 소개합니다. 거리로 나가 누군가의 삶을 바라보는 일이 어렵지 않을, 그 언젠가를 소망하며.

문득 생각해봤다. 내가 마지막으로 혼자였던 게 언제였지? 바로 어제였다. 혹은 조금 전이었다. 몇 시간 전에도 실은 혼자였다. 공유 오피스에 앉아 있을 때, 내 주변에는 사람들이 없지 않았지만 나는 혼자 앉아 있었다. 카페에서 일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전통적인 의미의 회사에 출퇴근을 할 필요가 없는 나 자신의 일상에는 ‘혼자’가 참 많았다.

하지만 그 모든 순간, 한 번도 혼자였던 적이 없기도 했다. 사무실에서의 나는 동시에 몇 사람과 각각 다른 도구로 소통하고 있었다. 메일을 쓰면서 메신저로 대화하고, 내려 놓은 스마트폰에는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앱이 열려 있었다. 한 대의 모니터에는 워드 프로그램이, 다른 한 대의 모니터에는 페이스북과 뉴스 페이지가 열려 있었다.

우리는 보통의 각오로는 단 한 순간도 혼자일 수 없는 시대에 아무렇지도 않게 살고 있다. 연결돼 있는 게 당연하니까, 가끔은 혼자일 필요조차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혹은 그대로 럭셔리가 되기도 했다. 제대로 혼자가 되려면 용기와 돈이 필요하다. 여럿이 함께 하던 일로부터 당분간 떠날 수 있는 용기, 가능하다면 마음을 좀 회복할 수 있는 곳에 머무르기 위해 필요한 돈. 스스로를 차단할 수 있는 경험 자체가 귀해졌다.

ⓒ The Artist & Hyundaicard

며칠 전에는 운이 좋았다. 의도했던 시간에 의도했던 길을 혼자서 걸을 수 있었다. 아무 것에도 연결되어 있고 싶지 않아서, 그날은 음악도 듣지 않았다. 늘 바지 주머니에 넣고 다니던 휴대전화는 가방에 넣어 어깨에 매고 있었다. 전화기만 멀리 해도 가라앉는 마음이라니. 북촌 가회동이 품고 있는 호젓함 가운데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가 있었고, 배우 류준열의 사진 전시가 한창이었다. 예매가 쉽지 않은 전시였다.

배우 류준열의 첫 번째 사진전이었다.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가 기획한 두 번째 테마였다. 지난 7월, 디자인 라이브러리의 첫 번째 테마는 “Furniture Design”이었다. 두 번째 테마는 “Photography”다. 류준열의 사진전은 넓고 깊은 시각으로 사진을 조명하는 디자인 라이브러리 테마의 일환으로 준비된 것이었다.

디자인 라이브러리에는 그가 2019년 미국 여행 중 할리우드에서 촬영한 17점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주제는 “Once Upon a Time... in Hollywood”였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바로 그 영화에서 따온 것이었다. 2019년에 찍은 사진이지만 과거의 어느 시점이라도 이상하지 않은 장면들, 과거와 현재가 묘한 느낌으로 섞여 있는 순간들이 벽에 한 점씩 걸려 있었다.

ⓒ The Artist & Hyundaicard

혼자 여행한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때 마침 카메라 한 대가 손에 들려 있었다면, 그것만으로 여행의 의미가 바뀌는 경험 또한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친구한테 보여주거나 소셜미디어에 올리려는 마음 같은 건 전혀 없는 사진. 마침 내 눈에 들어와서, 내 마음을 움직이는 순간에 나도 모르게 눌렀던 셔터 소리 같은 것들을.

류준열은 배우이기 전에 여행가인 것 같았다. JTBC 트래블러에 출연했을 땐 목에 카메라 하나를 메고 아주 오랫동안 혼자 걸었다. 아이와 축구를 하고 낮잠 자던 강아지와 사진을 찍었다. 혼자였지만 모두와 함께인 것 같은 태도였다. 혼자이면서도 닫혀 있지 않았다. 활짝 열려서, 가능한 모든 걸 흡수하고 싶은 태도였다. 한국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모습들이 그때 그 영상에 그대로 담겨 있었다. 어떤 캐릭터로서의 류준열이 아니었다. 연예인으로서 응당 갖춰야 하는 어떤 태도로 무장한 것 같은 류준열도 아니었다. 그저 여행하는 사람이었다. 걷는 류준열이었다.

이번 사진전에 걸린 작품들 역시 오랜 산책의 결과물 같았다. 구름이 낮게 깔린 날 소파 위에 앉아서 하늘을 보고 있는 남자 두 명. 보도블럭 위에 흩어진 파란색 파편들.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곳에 놓여져 있는 벤치 위에, 상의를 걸어 놓고 잠시 쉬는 어떤 남자. 아주 오래된 이발소에서 빛을 받고 있는 남자. 저 앞에 있는 거울 안에는 카메라를 들고 있는 류준열 자신.

흐리거나 맑은 날, 해가 중천이거나 적당히 기울어져 있을 때도 혼자 걷고 있었던 사람만이 찍을 수 있는 사진 같았다. 류준열은 이번 할리우드 여행이 데뷔 후 처음으로 가질 수 있었던 개인적 휴식이라고 말했다. 배우로서 카메라 앞에 설 때와 다르게 카메라 뒤에서 관찰자로서 세상을 바라볼 때 비로소 삶의 균형과 조화를 느꼈다고도 했다.

ⓒ The Artist & Hyundaicard

“카메라 앞에서 하는 나의 이야기는 어딘가 모르게 점점 나와 멀어지고 있었다. 나였으면서 내가 아니었고 다시 나였다. 배우, 혹은 역할이라는 가면을 벗어버리고 마주한 세상은 어색하고 외로웠다. 하지만 카메라 뒤에서 하는 이야기는 달랐다.”

류준열의 사진 속에서, 사람들은 뒷모습이거나 잠들어 있었다. 그늘 아래 잠들어 있는 사람이거나 불특정 다수의 대중이었다. 해질녘, 어떤 쓰레기통에 붙어 있는 몇 장의 포스터 속에서는 카메라와 눈을 맞추고 있는 것 같은 몇 명의 인물들을 찾을 수 있었다. 마침내 느낄 수 있었던 혼자로서의 자유가 어색해서였을까? 혹시 외로움이었을까?

류준열은 사람 뒤에서 사람을 관찰하는 것 같았고, 사람이 없는 곳에서 풍경을 마주한 것 같았다. 그 자신은 참 많은 사람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었던 여행이었지만 렌즈는 여전히 사람을 향한 채, 마침내 혼자이면서 완전히 혼자일 수는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혼자 보내는 휴식이었지만 대중을 떠날 수는 없는 직업. 카메라 뒤에서 관찰하는 게 좋은 사람이지만 카메라 앞에서 자아를 지워내고 다시 창조해야 하는 사람으로서의 류준열이 또한 사진 마다 새겨져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어느 한 쪽의 인생을 편애하는 사람으로서가 아니었다. 그 두 세계를 모두 즐기면서, 마침내 균형을 잡을 수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전시를 보는 동안, 디자인 라이브러리에는 딱 적당한 사람들만 있었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붐비지도 않았고 너무 적어서 휑하지도 않았다. 사진전은 무료로 공개됐지만 아무나 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소식을 듣고 빠르게 결심한 사람, 그만큼 행동도 빨라서 현대카드 다이브 앱을 재빨리 열어 예약에 성공한 사람만 입장이 가능했다. 전시 티켓이 오픈 되던 그날은 예약에 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 사이에서 엇갈린 희비가 다이브 앱을 가득 채웠다는 후문이 파다했다. 류준열의 사진전을 볼 수 있는 기간은 1주일 더 연장됐지만, 다이브 앱을 몇 번이나 열어봐도 예약은 이미 끝나 있었다.

만약 지금이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코로나 바이러스가 이렇게 우리 일상을 지배하기 전이라면? 더 많은 사람들이 조금 더 자유롭게 그의 사진을 관람할 수 있었을까? 오는 연말에는 나도 LA에 서 멋진 사진을 잔뜩 찍어오고 싶은 마음도 자유롭게 품을 수 있었을까? 렌즈 앞의 류준열과 렌즈 뒤의 그를 가늠하고 그가 느꼈던 자유에 한껏 몰입한 후, 앞으로 우리가 만날 이 속 깊은 배우의 미래에 대해 상상하다가 문득 암담해지기도 했다. 우리는 또 언제 여행을 떠날 수 있을까? 그때처럼 자유로울 수 있을까? 다시 한 번, 경계 없이 떠날 수 있는 날이 올까?

ⓒ The Artist & Hyundaicard

배우 류준열의 사진 전시는 11월 29일 일요일에 끝난다. 12월 31일 목요일까지는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가 준비한 두 번째 테마, “Photography”와 연계된 다양한 프로그램이 예정돼 있다. 다이브 앱에 따르면, 12월에는 사진 작가의 토크와 흥미진진한 연계 행사, 특별한 전문 서적들을 만나볼 수 있는 기회와 이벤트가 준비돼 있다고 한다. 아울러 10월에는 정훈이 쓴 <포스트모던 이후의 사진 풍경>을, 11월에는 존 버거가 쓴 <사진의 이해>를, 12월에는 <루이지 기리의 사진 수업>을 북 살롱 선정 도서로 정해 조금 더 깊이 있는 감상을 위한 안내자가 되었다.

약 30분이었다. 아주 좋은 공간에 고립돼서 마침내 풍요로운 혼자가 된 것 같았던 시간. 이런 시기, 디자인 라이브러리에서 몰입했던 류준열의 휴식이야말로 아주 작은 여행 같았다. 가방 속에 들어있던 전화기를 다시 꺼냈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음악을 틀었다. 류준열의 사진과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에 빠져 있는 동안 도착해 있는 몇 개의 메시지에 답을 하고,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과 유튜브를 습관처럼 둘러보면서 다시 걷기 시작했다. 짧은 여행을 마치고 다시 거리로 나왔을 땐 저녁이 조금 더 깊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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