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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패션, 음식, 문화, 콘텐츠까지. Old & New에서는 무한 반복되는 유행 속에서 과거와 현재를 이야기해봅니다. 이번 화에서는 세계인이 K푸드에 열광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김서윤 하위문화연구가가 분석해봅니다.
*본 글은 외부 필진의 기고로 현대카드·현대커머셜 뉴스룸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old 2009년 가을, 미국 뉴욕에서 TV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이 기획한 작은 팝업스토어가 문을 열었다. ‘한식을 알리겠다’는 목표로 외국인들에게 무료로 한식을 제공하고 평가받는 자리였다. 한국에서는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예능인들이 “한식을 먹어본 적 없다”고 답하는 뉴요커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모습이 방영되고 난 후 ‘외국인의 입맛에 맞는 한식을 개발해야 한다’ ‘한식을 널리 알리자’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new 2024년 가을, 미국 뉴욕 지하철 F라인 2 avenue station 바로 앞에 커다란 한글 간판이 내걸렸다. 촌스러운 흰색·빨간색·초록색을 섞어 쓴 ‘동남사거리 원조 기사식당’이다. 아직 이른 저녁 시간인데 식당 앞에는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이 줄을 서 있다. 한국인으로 보이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양철판에 서울에서 먹는 그대로 빨갛게 볶아 나오는 제육볶음에 소주를 마시는 외국인들은 세계 어디를 가나 볼 수 있다.
미국 Z세대를 사로 잡는 단어 중 하나는 ‘Swicy’다. ‘sweet(달다)’와 ‘spicy(맵다)’가 합쳐진 말로 번역하자면 ‘맵달(매콤하면서도 달콤하다)’이라는 뜻을 가리키는 단어다. CNN, CNBC 등 미국 유력 매체에서는 한식 재료인 고추장, 고춧가루의 인기가 맵달에 대한 선호로 이어졌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확실히 미국을 비롯한 서구권에서 인기를 얻는 한식당 차림새 맵기를 따져보면 딱히 맵지 않게 처리하는 대신 한국 사람들이 먹는 매움 그대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15년 전만 해도 한식은 ‘눈치를 보는’ 음식이었다. 외국인은 떡의 식감을 싫어하고 매운 것을 잘 못 먹는다고들 말했다. 그들의 입맛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메뉴를 ‘개발’해야 하고 ‘홍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전 세계를 유행하는 한식은 맵고 질척하다. 된장 냄새를 제거하지 않고 마늘을 듬뿍 넣는다.
다시 말해 K푸드의 인기는 ‘있는 그대로’ ‘억지로 바꾸지 않는’, 나아가 ‘본질’에 가깝다. 굳이 매운 김치를 씻어낼 필요 없고 소주 대신 와인을 권할 필요 없다. 포르투갈 리스본의 한식당 ‘소주 포차’에는 한국인처럼 소주와 맥주를 섞어 폭탄주를 만드는 외국인들로 붐빈다. 오히려 더 얼마나 ‘본래대로’ 하는지가 중요하다.
본래의 모습이 더 좋은 평가를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를 지향하기 시작했다. 자연스러움을 강조하는 트렌드는 이미 몇 년 전부터 ‘놈코어(Normcore·소박하고 평범해보이는 옷차림을 가리키는 신조어)’ ‘꾸안꾸(꾸민 듯 안 꾸민 듯의 준말)’ 같은 패션 트렌드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는데 이제 라이프스타일에도 이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최근 들어 주요한 미래 예측 트렌드로 자리 잡은 핵개인화를 예로 들어 보자. 핵개인화란 각 개인의 특성에 맞게 맞춤형으로 짜인 환경을 말한다. 개인의 취향과 역량, 자율적인 의지와 다양성이 지극히 강조된다. 다른 무엇과 비교할 필요 없이 내가 원하는 것을, 내 역량에 맞게,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해 만들어나가는 것을 중시한다는 얘기다. 결국 ‘나다움’이다.
갓생과 러닝의 공통점은?
매년 다음 해의 트렌드를 발표하는 서울대 김난도 교수에 따르면 2025년 트렌드 중 하나는 ‘옴니보어(Omnivores)’가 될 것이다. 옴니보어란 잡식성을 뜻하지만 여기서는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는 자신만의 소비 스타일을 가진 소비자’를 가리킨다.
또 다른 트렌드 중 하나인 ‘토핑경제’도 결국은 나다움과 관련이 있다. 토핑경제란 부수적인 요소인 ‘토핑’이 더욱 주목받아 새로운 경제적 효과를 창출하는 시장의 변화를 말하는데 신발 크록스를 꾸미는 지비츠, 자신만의 요거트 아이스크림을 만들어 먹는 요아정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공산품을 구입하더라도 ‘나’에 맞추는 것이 중요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다양성과 자율성이다. 지금 추구되는 핵개인 같은 트렌드는 다양성을 전제로 하고 있다. 실제로 Z세대를 비롯한 청년들의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을 보면 ‘같은 것’은 거의 없다. 유튜브에서 대표적인 콘텐츠로 자리 잡은 ‘왓츠 인 마이백’을 보더라도 그렇다. 왜 다른 사람 가방 속을 궁금해할까? 가방 속 물건들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기 때문이다. 다양한 물건들을 통해서 딱 하나로 집어낼 수 없는 상대방의 다양성을 상징할 수 있다는 얘기다.
자율성도 중요하다. 삶을 충실하게 살고자 하는 ‘갓생’ 트렌드에는 빠진 것이 하나 있다. 목표다. 어떤 목표를 위해 노력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시 말하면 영어 공부 하기, 다이어트 하기가 유행이 아니라 각자의 목표를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 Z세대 사이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트렌드 ‘러닝’의 이유도 추론할 수 있다. 사람들은 왜 뛰는가? 열심히 뛰어 살을 빼거나 기록을 달성하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열심히 뛰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 마라톤 대회에 나가서 완주하는 것이 목표지, 등수나 기록에 연연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있는 그대로, 핵개인, 나다움의 자율성은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 이 문장은 역으로도 성립한다. 요즘 사람들은 결과보다 과정을 더 중시하기 때문에 다른 무엇과도 비교하지 않고 나답게 지내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만들기
K푸드를 비롯한 K컬처의 인기는 이 같은 트렌드에 확신을 주었다. 한국식 발음 그대로 ‘아파트, 아파트’를 외치더라도 나를 따라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유럽 맥주보다 ‘맛이 없다’던 한국 맥주를 물처럼 들이켜도 함께 마셔주는 사람이 생긴다. 나다움을 추구하는 것이 오히려 더 큰 경쟁력을 만든다는 확신이 생기는 지점이다.
그러니 이제 중요한 것은 어떻게 나다움을 만들 것인지에 대한 부분이다. 굳이 좋은 것을 흉내낼 필요 없다. 백화점에서 구입하는 비싼 화장품이 인기라 하더라도 내 피부에 맞는 화장품이 다이소에 있다면 이를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오히려 옴니보어의 시대에는 가지고 있는 물건, 겉으로 드러나는 외면으로는 ‘나’를 파악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취향과 역량이다. 취향이 라이프스타일을 만든다면 역량은 나만의 목표를 만든다. 그마저도 각자 나름의 취향과 역량을 가질 수 있다. 남들과 똑 같은 취향과 역량은 되려 ‘나답지 않다’는 평가를 받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나다움의 시대에 확신을 가지기 위해서 나만의 것을 만들어 보자.
김서윤 하위문화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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