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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카드가 지난 7일 출시한 새로운 프리미엄 카드 ‘the Green’
밥보다 비싼 커피를 마시는 시대를 이해할 길 없었던 기성 세대라면, BTS의 ‘고민보다 Go’ 가사에는 혀를 끌끌 찰지도 모르겠다. “하루 아침에 전부 탕진. 달려 달려 내가 벌어 내가 사치. (중략) 돈은 없지만 떠나고 싶어 멀리로. 난 돈은 없지만서도 풀고 싶어 피로. 돈 없지만 먹고 싶어 오노 지로.” 힘들게 번 돈을 탈탈 털어 해외 여행을 떠나고, 최고급 호텔에서 호캉스를 즐기며,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에서 밥 먹는 새로운 세대의 출현에 누군가는 ‘사치’라는 오명을 뒤집어씌우겠지만, 그들은 오히려 고전적인 ‘사치’의 정의에 반문을 던진다. “몇 십 년을 갚아야 하는 빚을 내서 아파트를 사는 것, 타인을 의식하느라 다 똑같은 명품 시계와 가방을 사는 게 오히려 진짜 ‘사치’ 아닌가요?”
현재를 위해 탕진하다‘탕진잼(탕진하는 재미)’ ‘일점호화 소비(평소에는 돈을 아끼지만, 특정한 한 가지에는 사치스럽게 소비하는 것)’ 등, 최근의 소비 트렌드를 설명하기 위한 용어들이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다. 대부분 미래를 준비하기 보다는 현재의 즐거움에 집중하는 소비 행태를 반영하는데, 장기불황을 통과하느라 미래를 믿을 수 없게 된 청년 세대의 좌절이 투영된 결과로 해석되곤 한다. 그도 그럴 것이 ‘탕진잼’이라고 해봤자 ‘다이소’나 인형뽑기방에서 값싼 제품을 ‘텅장(텅텅 빈 통장)’이 될 정도로 구매하는 재미에 지나지 않는다. ‘일점호화 소비’ 또한 일본의 예술가 데라야마 슈지가 수필집 ‘책을 버리고 거리로 나가자’에서 ‘거적때기를 덮고 자더라도 한 부분에서만큼은 호화로움을 추구하자. 그것은 무료하기만 한 소시민적 삶의 한 돌파구다.”라고 쓴 데에서 비롯됐다. 미래에 대한 체념이 역설적으로 현재를 불태우게 만든 셈이다.
다만 변화된 소비 행태를 불황의 여파로만 받아들이기에는 부족하다. 청년 세대는 이미 ‘미래’를 위해 ‘현재’를 저당 잡힌 부모 세대의 ‘미래’를 목도했다. 기성 세대가 그토록 기다려 온 바로 그 ‘미래’가 도래한 지금, 그들은 과연 안락한 아파트에서 포기한 대가만큼 행복할까? 미래가 아니라 현재에 집중하는 라이프스타일은 지금의 20~30대가 이 질문에 ‘No’라고 대답한 데에서부터 출발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사진출처=Pixabay.com
찰나의 경험을 구매하다지난 7월 말 신세계그룹 이마트가 ‘요지경 만물상’을 컨셉트로 론칭한 ‘삐에로 쑈핑’의 점원 티셔츠엔 “저도 그게 어딨는지 모릅니다”라고 쓰여 있다. 만약 쇼핑의 목적이 ‘소유’에 있는 고객이라면, 대략 4만 개의 잡동사니들 속에서 원하는 물건을 최대한 빨리 찾아줄 의지가 없는 이 잡화점에 화가 날 법도 하다. 하지만 ‘삐에로 쑈핑’의 목적은 바로 거기, 고객이 숍 안에서 헤매게 하는 데에 있다. ‘무얼’ ‘얼마나’ 샀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얼마나 재미있게’ 쇼핑했는지를 중요하게 여기는 고객을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치’의 영역 또한 마찬가지다. 과거의 ‘럭셔리’가 고급 외제차, 명품 시계 및 가방 등 자식에게도 물려줄 수 있는 물질에 집중되었던 것과 달리, 최근의 ‘럭셔리’는 여행, 미식(Gourmet) 등 순식간에 날아가 버리는 찰나의 경험으로 옮겨가고 있다. 이런 현상에 대해 프랑스의 철학자 질 리포베츠키는 <사치의 문화>라는 저서에서 “타인들의 시선을 끌 목적으로 한 기교, 몸치장, 눈에 보이는 표시들은 사치를 드러내는 주된 수단들이었다. 이러한 현상이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즉각적인 경험, 건강, 신체, 주관적인 복지 향상에 역점을 두고 기다리면서 숭배의 상징들에서 한 걸음 물러나 있는 새로운 경향들이 나타났다”고 말한다. 과거의 사치가 ‘내가 그 물건의 소유자’라는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는 방식이었다면, 현재의 사치는 ‘내가 지금 무엇을 원하는가’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욕망에 기초한 선택이 되었다.
드러내지 않아서 드러나다
사진출처=Unsplash.com
타인이 아닌 내가 욕망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명확히 알면, 비단 가격만으로 ‘럭셔리’를 규정하지 않을 수 있다. ‘라이즈 오토그래프 컬렉션’ ‘레스케이프 호텔’ 등 최근 연이어 오픈한 부티크 호텔들은 더 이상 별 다섯 개의 최고급 호텔에만 목매지 않는 새로운 소비자를 겨냥한다. 최고급 시설, 침구, 서비스 이상으로 인테리어 디자인부터 미식에 이르기까지 호텔에서 향유할 수 있는 문화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한다.
패션 분야에서도 새로운 ‘럭셔리’가 출현한다. 젊은 세대는 이제 전통적인 럭셔리 브랜드인 ‘루이비통’이 아니라 ‘루이비통’과 스트리트 패션 신의 상징과도 같은 ‘슈프림’의 콜라보레이션에 열광한다. 브랜드 이름조차 생소한 ‘오프화이트’와 ‘베트멍’을 숭배한다. 지난 세기의 ‘럭셔리’가 입고, 메고, 신고 결혼식장에 가면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사치였다면, 새로운 세대에게는 동일한 수준의 취향을 지닌 커뮤니티가 인정할 때에만 ‘럭셔리’로 등극할 수 있다.
물론 가격만을 ‘럭셔리’의 절대 기준으로 삼는다면 부티크 호텔도 하이 패션과 스트리트 패션의 접점에 존재하는 새로운 패션도 기존의 ‘럭셔리’를 앞설 수 없다. 새로운 ‘럭셔리’의 등장은 어쩌면 청년 세대가 결코 그들의 부모 세대보다 부자일 수 없기 때문에, 대안으로 선택한 사치일 수도 있다. 하지만 2030 세대가 이렇게 주장한다면 반박할 수 있을까? ‘당신은 돈을 가졌지만, 난 취향을 가졌지’.
나만의 사치를 위한 합리적인 소비경제적 능력이 한정된 이상 현재, 경험, 나만의 개성을 중시하는 소비에 있어서도 합리적인 소비는 필수적이다. 다만 여기서 합리적인 소비란 필요한 재화를 감당할 수 있는 가격에 구매한다는 뜻이 아니다. 내가 가진 돈으로 최대의 즐거움을 얻을 수 있도록, 선택하고 집중한다는 뜻이다.
현대카드가 지난 7일 ‘the Black’ ‘the Purple’ ‘the Red’에 이어 10년 만에 선보인 프리미엄 카드 ‘the Green’은 새로운 시대가 정의하는 ‘합리적인 소비자’를 위한 프리미엄 카드다. 현대카드 관계자는 “생필품 소비에 있어서는 가성비를 중요시 여기면서도, 여행, 호텔, 해외 쇼핑, 미식 등의 특정 분야에서는 아낌없이 소비하는 고객의 라이프스타일에서 ‘the Green’의 컨셉트를 착안했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항공, 여행, 해외 결제,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 등 회원들이 자주 사용할 것으로 예상되는 사용처에서 파격적인 5% 적립 서비스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1M포인트를 1원으로 등가 적용해 여행사, 항공사, 특급호텔, 면세점 등에서 사용 가능한 바우처와 교환 가능하도록 상품을 구성했다.
사진 출처=지코(ZICO) 인스타그램.
‘the Green’ 출시를 알리는 인스타그램 라이브 티저 포스팅.
주목할 만한 사실은 기존의 프리미엄 카드가 고객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프리미엄의 조건으로 내건 데 반해, ‘the Green’은 고객의 라이프스타일을 프리미엄의 기준으로 삼았다는 점이다. ‘the Green’은 프리미엄 카드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카드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신용카드 발급 기준을 제외한 까다로운 심사 절차가 없다. 대신 ‘현재와 경험을 즐기는 라이프스타일’이라는 새로운 프리미엄의 기준에 부합한 소비 생활을 지속하는 고객에 한해 파격적인 혜택을 제공한다. 말하자면 ‘the Green’의 고객은 ‘완전히 새로운 럭셔리 클래스’다. 돈을 얼마나 많이 쓰는가 이상으로 어디에 어떻게 쓰는가가 중요한 가치다. 기존 프리미엄 카드 라인의 아이덴티티 컬러로 검은색, 보라색, 빨간색 등 고전적인 ‘럭셔리’ 컬러를 선택한 데 비해, ‘the Green’이 ‘럭셔리’ 컬러의 범주에서는 다소 생소할 수 있는 ‘the Green’ 컬러를 전면에 내세운 것 또한 과거 ‘럭셔리’의 정의를 전복한다.
앞서 언급한 <사치의 문화>에서 질 리포베츠키는 현대의 ‘사치’를 가리켜 ‘계층을 과시하려는 의도’보다는 ‘자기 자신에게 주는 선물로서의 과다 지출로의 여행’에 속한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이 여행은 ‘일상이 진부함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고, 전대미문의 경험 속에 살도록 하고, 스스로를 기쁘게 하며, 특권을 누리는 순간’이 된다. 그러니까 지금의 20~30대는 먼 미래의 아파트 대신, 타인에게 과시할 수 있는 고급 외제차 대신, 자신을 지금 당장 경험으로 이끌고 기쁘게 하며 특권을 누리게끔 하는 나만의 사치를 선택한 셈이다. 그리고 기성 세대의 우려와는 달리 지극히 합리적인 방식으로 소비하고 있다. BTS의 가사에 등장하듯 ‘열일 해서 번 나의 pay’로 누리기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