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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9일 오후 경기도 성남의 한 건물 옥상에 중년 남성 두 명이 가죽 라이더 재킷 차림으로 나타났다. 각각 파랑과 빨강 헬멧을 손에 들고 가죽 장갑까지 착용한 이들은 레이싱용 소형 카트 위에 올라타고는 마치 레이싱이라도 하는 듯 핸들을 잡고 이런저런 포즈를 취했다. ‘지금 엄청난 속도로 달리고 있다고 생각해보라’는 사진작가의 주문에 이들은 눈을 크게 뜨거나 입을 쩌억 벌리는 등 다양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응시했다. 화려하게 장식된 카트를 배경으로 둘은 무언가를 위한 결의를 다지는 듯 주먹을 부딪히기도 하고 어깨를 기대기도 했다. 대체 진짜 레이싱 경기도, 그렇다고 잡지용 화보촬영도 아닌 것 같은 이 행사는 무엇이었을까.
이곳은 바로 현대카드와 넥슨의 파격적인 파트너십 체결식을 기념하기 위한 사진 촬영 현장이었다. 넥슨코리아 옥상에 마련된 트랙에 실제 카트를 올려놓고 넥슨의 대표 게임 ‘카트라이더’를 오마주해 장면을 연출한 것. 이를 즐기던 두 남성은 바로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과 이정헌 넥슨코리아 대표였다. 두 회사는 넥슨의 PLCC(Private Label Credit Card∙상업자 전용 신용카드)를 만들어 선보이는 것은 물론 각자가 발전시켜 온 데이터 인텔리전스 기술에 기반한 비즈니스를 추진하기 위해 협력하는 등의 내용의 파트너십을 맺었다.
하지만 하얀 종이 위에 두 회사의 대표이사가 날인하는 딱딱하고 정숙한 파트너십 체결식은 애초에 계획에 없었다. 금융이라는 업(業)의 한계를 벗어 던지고 대한민국 대표 금융 테크 기업으로 나아가는 현대카드와 시대와 공간을 초월한 메타버스 속에서 상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게임을 만들어 온 넥슨. 이 둘이 손을 잡고 미래를 구상하는 자리라면 마땅히 형식 따위는 벗어 던지는, 그렇지만 두 회사의 정신을 고스란히 담을 수 있는 무엇이어야 했다. 뒤이은 PC방에서의 촬영도 같은 맥락이었다. 지금의 넥슨을 있게 한, 여전히 많은 유저들이 넥슨을 만나는 바로 그 공간에서 현대카드와 넥슨의 CEO가 함께 자리한다는 것은 곧, 두 회사가 게임 안팎에서 만들어낼 어마어마한 시너지를 예고하는 것이었다.
데이터 사이언스에 진심인 현대카드와 넥슨 ‘통하다’
“현대카드가 디지털 분야에 전체 이익의 35%를 투자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디지털 인력 규모도 엄청나고요. 사실 데이터 사이언스에 관심있다는 회사들 막상 열어보면 구색맞추기식인 경우가 많은데, 현대카드는 굉장히 진지하게 데이터 사이언스에 임하고 계신다는 걸 알게 됐어요.” (강대현 넥슨 부사장∙인텔리전스랩스 총괄)
“저희 처음 만났을 때 인텔리전스랩스 조직이 500명 규모라고 들었던 것 같은데 앞으로 700명 규모로 늘리신다니대단하네요. 게임업계에서 데이터 사이언스로는 넥슨이 가히 독보적이던데요. 데이터를 처리하고 사용하는 방법이 저희와 유사해서 함께 협업하게 되면 잘 통할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
현대카드와 넥슨의 파트너십은 비단 PLCC 개발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게임 내 데이터 분석에 있어서는 글로벌 최고 수준인 넥슨은 게임 데이터 기반 데이터 분석 플랫폼 ‘넥슨애널리틱스’를 개발했다. 테크 기업으로 변신하고 있는 현대카드 역시 지난 5년간 고객의 결제데이터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데이터를 처리하고 마케팅하는 인공지능 플랫폼 ‘트루 노스(True North)’ 등 다양한 솔루션을 개발해 운영 중이다. 양사 모두 데이터를 처리하고 가공하는 수준을 넘어 이를 적용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어 이를 비즈니스에 직접 적용하는 고도의 데이터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
때문에 이날 현대카드와 넥슨은 파트너십 기념 촬영에 앞서 2시간에 걸쳐 ‘데이터 협업’에 관한 긴 이야기를 나눴다. 넥슨에서는 머신러닝과 딥러닝 등 넥슨의 게임 비즈니스 전반에 적용하는 데이터 사이언스를 이끄는 조직인 ‘인텔리전스랩스’가, 현대카드에서는 AI(인공지능) 기반 데이터 사이언스 및 솔루션 개발을 총괄하는 ‘Digital 부문’이 현대카드가 데이터 사이언스에 대해 가지고 있는 철학과 주요 서비스들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발표를 맡은 강대현 넥슨 인텔리전스랩스 총괄은 “게임 공간에서 수십 만명의 유저들이 인터렉션을 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엄청난 양의 데이터들을 잘 분석하면 다음 게임 개발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넥슨이 집중적으로 분석하는 것은 유저의 행동 데이터다. 강 부사장은 “유저의 행동을 특성별로 분류해 ‘프로파일(User Profile)’화 하고, 발생하는 상황들도 표준화 해 관리하는데 이걸 활용하면 유저 개인의 특성에 맞는 마케팅은 물론 게임 내 사기 행동 등 문제에도 발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넥슨의 데이터 분석 방식은 현대카드의 데이터 사이언스 방향성과도 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배경화 현대카드 AI사업1본부장은 “현대카드도 고객의 결제데이터를 포함한 다양한 데이터들을 처리∙가공하는 ‘전처리’ 과정을 거쳐, 이를 고객의 성향를 추론하고 소비를 예측하는데 사용할 수 있는 표준으로 만들어 놓고 있다”며 “현대카드와 넥슨의 데이터 활용 로직과 시스템이 유사한 면이 있어 향후 데이터 관련 협업이 더 순조롭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현대카드와 넥슨, 낯선 서로를 ‘이해하다’
“혹시 모션 캡처를 위한 연기는 유단자이거나 액션 전문 연기자 분들이 하시는 건가요?” (정태영 부회장)
“오늘 시연하신 분들은 개발팀 직원입니다. 전문 연기자가 참여하는 경우도 있어요.” (마비노기 영웅전 개발팀)
이날 정태영 부회장은 넥슨 측의 초대를 받아 넥슨코리아의 ‘모션캡처 스튜디오’와 ‘비디오&사운드 스튜디오’ 두 곳을 찾았다. 이 두 곳은 넥슨의 모든 게임의 영상과 음성이 제작되는 공간으로 넥슨 게임 개발의 핵심 공간이다. 모션캡처 스튜디오에서는 ‘마비노기 영웅전’ 개발팀이 자이로센서 16개가 달린 검은색 촬영복을 입고 몬스터 간 결투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다. 자이로센서는 물체의 위치와 방향 등을 측정하는데 사용되는데 이 센서를 장착하면 화면에 이들의 움직임이 나타난다. 모션캡처 기술을 활용한 정교한 액션으로 호평을 받은 마비노기 영웅전은 지난 2010년 ‘한국 게임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정 부회장은 “개발팀이 직접 저렇게 나서 연기까지 맡아하시다니 정말 대단하다”며 박수를 보냈다.
‘비디오&사운드 스튜디오’에서는 게임에서 사용되는 다양한 효과음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볼 수 있었다. 안용재 넥슨 사운드팀 디자이너는 “게임에서는 칼싸움이나 비행, 격투 등의 장면이 자주 연출되는데 이를 실제로 녹음해 사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다양한 물건들을 활용해 음향을 만들어낸다”고 설명했다. 안 디자이너는 미장 도구에 바이올린 활을 그어 ‘비검’이 나타나는 소리를, 미장도구끼리 부딪혀 칼싸움 하는 소리를 연출했다. 선풍기 팬이 돌아가는 소리로는 비행기 프로펠러 도는 소리를, 물을 잔뜩 머금은 스폰지를 쭉 짜서 물줄기가 떨어지는 소리는 칼에 찔려 피가 나는 소리를 연출했다.
촬영을 위해 도착한 PC방에서는 이정헌 대표와 정태영 부회장이 나란히 앉아 넥슨이 현재 CBT(Closed Beta Test) 중인 ‘카트라이더 드리프트’를 즐기기도 했다. 이정헌 대표는 “현대카드와 함께 PLCC를 하게 돼 이런 이색적인 촬영의 기회가 생겨 정말 재미있다”며 “현대카드가 넥슨과 넥슨이 몸담고 있는 비즈니스에 대해 적극적으로 이해하고 공감하기 위해 노력해주시는 것 같아 감사하다”고 말했다. 정태영 부회장은 “넥슨과 함께하는 PLCC의 여정이 마치 게임을 즐기듯 신나고 즐거울 것 같아 기대가 크다”며 “앞으로도 서로의 비즈니스와 문화를 공유할 수 있는 시간을 많이 갖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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