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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카드∙현대커머셜 뉴스룸이 MZ세대의 트렌드 이면에 숨겨진 의미를 사회과학적으로 분석해 MZ세대를 들여다보는 ‘MZ주의’ 시리즈를 선보입니다. MZ주의 다섯 번째 이야기는 ‘커뮤니티’입니다. 온라인 커뮤니티는 MZ세대의 일상에 깊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MZ세대가 왜 커뮤니티를 찾는지, 커뮤니티에서 MZ세대는 무엇을 느끼고 경험하는지 김서윤 하위 문화연구가가 설명해 드립니다.
MZ세대에게 온라인 커뮤니티는 일상이다. 여기서 온라인 커뮤니티란 디시인사이드, 에펨코리아, 더쿠 같은 커뮤니티형 웹사이트는 물론 네이버나 다음 등 포털 사이트 내 카페,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등을 모두 포함하는 것이다.
대학내일20대연구소가 실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MZ세대의 71~74%가 한 달 내 온라인 커뮤니티를 이용한 적 있다고 밝혔다. 거의 매일 2시간 이상씩 이용하는 MZ세대도 20%를 상회했다. 주로 사용하는 커뮤니티는 포털 사이트 카페,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커뮤니형 웹사이트 순이었는데 대학생들이 주로 이용하는 커뮤니티 앱 에브리타임이나 직장인 커뮤니티 앱 블라인드도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특히 MZ세대가 많이 참여하는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의 주제를 따져보니 20대는 일상, 게임, 경제•금융 등이었고 30대는 경제•금융, 일상, 자기계발 순으로 나타났다. 수다방이나 독서 모임 같은 주제의 채팅방이나 주식 정보, 부동산 잡담 같은 제목의 채팅방이 MZ세대가 모여 있는 곳이다.
그런데 지금껏 MZ세대의 커뮤니티 활동을 바라보는 시각은 한정적이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비롯되는 갈등 같은 사회 문제에 집중해 왔다. 몇몇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강하게 드러나는 혐오 표현에 대한 연구, 의견이 한쪽으로 쏠리는 집단 극화(group-polarization), 의견이 같은 사람들끼리만 모여 벌어지는 동조화 현상인 필터 버블(filter bubble) 또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이용한 마케팅 방식에 대한 연구 등이 그렇다. 그러나 이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일상처럼 드나드는 MZ세대의 단편만을 본 것이다.
취미와 유희의 장(場)
중요한 점은 MZ세대에게 온라인 커뮤니티는 더 이상 공론장(public sphere)이 아니라는 것이다. 커뮤니티가 태동하던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온라인 커뮤니티는 어느 정도 공론장 역할을 했다. 당시 인기 있었던 커뮤니티 중에는 ‘다음 아고라’ 같이 토론을 목적으로 하는 커뮤니티도 있었다.
그러나 요즈음에는 그런 커뮤니티를 찾아보기 어렵다. 아예 특정 단어가 포함된 글은 보이지 않도록 만들어주는 ‘필터링’ 기능을 지원하는 커뮤니티도 있다. 토론은 유튜브에서 일어난다. 커뮤니티 참여자들은 갑론을박을 좋아하지 않는다. 토론에 참여하는 사람은 커뮤니티에 접속한 사람 중 일부분일 뿐이다. 온라인 커뮤니티 참여자의 41%는 글과 댓글 쓰지 않는다고 밝혀진 연구 결과를 봐도 그렇다.
소셜미디어에 한한 연구이기는 하지만 소셜미디어 이용자의 4분의1만이 소셜미디어에 의견을 개진한다는 것을 밝혀낸 연구 결과도 있다. 조정열 숙명여대 홍보광고학과 교수가 천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소셜미디어 사용자는 응답자의 86%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매일 접속한다는 사람도 60.4%에 이르렀다. 그런데 소셜미디어에 정치•사회적인 발언을 한 번이라도 해본 적 있다는 사람은 25.9%에 불과했다. 소셜미디어와 커뮤니티의 이용자 분포도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고려해볼 때 커뮤니티에서도 사회적인 발언을 하는 사람은 일부분일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커뮤니티가 공론장이 아니라면, 무엇일까. 커뮤니티는 ‘유희의 장’이다. 다시 말하면, 놀거리를 찾는 MZ세대가 모인 곳이다.
대부분의 커뮤니티의 주제가 취미와 관련된 것이라는 점이 이를 증명한다. 2021년 9월을 기준으로 국내 온라인 커뮤니티의 순위를 볼 때 10위 안에 든 커뮤니티 중 6곳이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끼리 모여 시작한 커뮤니티다.
취미 커뮤니티는 비슷한 구성을 가진 경우가 많다. 많은 사람이 읽거나 추천한 글을 모아둔 게시판이 있고, 유용한 정보가 올라오는 게시판이 따로 있다. 일상적인 잡담을 하는 게시판도 있는데 중요한 것은 ‘덕질’에 관련된 게시판이 꼭 있다는 점이다.
덕질이란 ‘덕후’에 행동을 낮춰 부르는 ‘질’을 붙여 만든 단어다. 덕후는 오타쿠라는 일본어에서 변형된 단어인데, 특정 대상에 몰두하는 마니아를 일컫는다. 그러니까 덕질이란 강하게 몰입하는 취미 생활을 말하는 것이다.
상당수 온라인 커뮤니티는 덕질을 기반으로 움직인다. 1999년 생겨난 국내 최대 규모의 커뮤니티 사이트 디시인사이드는 ‘갤러리’가 모인 형태로 운영되는데 각 갤러리는 같은 대상을 덕질하는 사람들끼리 모인 것이다. 게임 리그오브레전드 갤러리, 국내 야구 갤러리, 국내 드라마 갤러리 등이 모여 디시인사이드를 만든다. 2000년 창설된 루리웹도 마찬가지다. 디시인사이드가 거의 모든 취미 활동을 포괄한다면 루리웹은 게임, 만화, 애니메이션 같은 주제에 조금 더 집중돼 있다. 남성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주제가 많은 만큼 루리웹 이용자들 중에는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다. 에펨코리아는 원래 게임 ‘풋볼 매니저(FM)’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커뮤니티로 시작됐는데, 남성 이용자가 많은 것으로 손꼽히는 커뮤니티다. 반면 더쿠는 여성 이용자가 더 많은 커뮤니티다. 일본 음악 커뮤니티로 시작됐다가 지금은 연예 정보를 포함한 갖가지 덕질을 지원하는 커뮤니티로 성장했다.
일상화된 덕질
불과 얼마 전만 하더라도 덕질은 특별한 행위였다. 스스로 덕후라고 밝히는 사람도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덕질은 일상적인 것이 되었다. 덕질 행동인 팬덤 활동을 건전한 취미활동으로 여기는 인식이 강해졌고, 덕후에 대한 인식도 긍정적으로 변했다. 이는 온라인 커뮤니티의 역할이 컸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덕후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발전해왔다고 볼 수 있다. 덕후들이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아 온라인 커뮤니티를 만들거나 커뮤니티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커뮤니티는 덕후들을 끌어모으며 발전했다.
그리고 이제는 덕질은 일상 속으로 들어왔다. 커뮤니티가 이를 가능하게 했다. 덕후라면 누구나 덕질을 공유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면서 덕후 문화는 더욱 확장되었다.
MZ세대 여성을 예로 들어보자. MZ세대 여성은 누군가의 팬이 된다는 것이 자연스러운 환경에서 자라났다. 이들이 청소년기를 보내던 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는 한국 대중문화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시기였다. 아이돌 문화가 자리 잡았고 한류라는 말이 처음 생겨났다. 이 당시부터 MZ세대 여성들은 무엇의 팬이 되든 끊임 없이 팬덤에 속하는 일이 자연스러워졌다. ‘생애 과정으로서의 팬질’은 아이돌에서 드라마로, 드라마에서 뮤지컬로 끊임 없이 옮겨가며 일상 속에 자리 잡았다. 이 과정에서 커뮤니티는 혼자서는 얻기 힘든 정보를 가져다 주고 콘텐츠에 대한 감상을 나누며 때로는 덕후 친구를 만들어주고 덕질 아닌 일상 생활에 대해서도 털어놓을 수 있는, 덕질에는 필수적인 공간이 되었다.
MZ세대 남성도 마찬가지다. 야구나 축구, 게임 같은 취미는 MZ세대 남성 또래 집단에서 필수적인 대화거리다. 예전에는 야구 얘기를 친구, 동료들끼리만 나눴지만 이제는 커뮤니티에서 언제든 공유할 수 있다. 살면서 끊임 없이 접하게 되는 팬덤 문화를 언제든 털어놓을 장소가 생겼다는 것이, 커뮤니티가 MZ세대에게 갖는 의미다.
세분화된 취향, 동기화되는 현실
커뮤니티에서는 모든 취향이 존중된다. 취미를 기반으로 생겨난 커뮤니티는 대개 매우 넓은 범위를 포용하는데, 루리웹을 예로 들면 게임이라는 큰 틀은 커뮤니티 안에서 세세하게 나눠진다. 콘솔 게임과 PC게임, 모바일 게임은 각각의 공간을 점유한다. 콘솔 게임도 플레이스테이션4, 엑스박스, 스위치 등 게임기의 종류에 따라 세분화 되어있다. 거의 모든 게임은 게시판을 따로 가지고 있다. 말하자면 루리웹 안에서 모든 게임 이용자는 존중 받는다.
MZ세대의 취향은 매우 세분화 되어있다. 영화, 음악, 스포츠 장르에 대한 덕후만 있는 것이 아니다. 버스에 대한 모든 것을 탐색하는 버스 덕후(버덕)도 있고, 역사 정보를 읊는 역사 덕후(역덕), 군사 관련 정보에 박식한 밀리터리 덕후(밀덕)도 있다. 영화 덕후라도 해리포터 시리즈를 좋아하는 덕후가 있고 인도 영화를 좋아하는 덕후가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는 이런 세분화된 취향을 위한 놀이 공간을 마련해준다. MZ세대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바탕 삼아 취향을 계발해 나간다. 한국의 대중문화가 여느 국가보다 더 세분화되어 다채롭게 발전한 것도, 다양한 하위문화를 가지게 된 것도 이런 온라인 커뮤니티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따져보면 한국처럼 온라인 커뮤니티가 다양하고 활발하게 운영되는 국가는 드물다. 2021년 11월 한 달 간 방문자 수가 많은 상위 10곳의 커뮤니티 방문 수를 합산해보면 총 5억5000만회가 넘는다. 온라인 커뮤니티는 MZ세대에게 또 다른 사회인 것이다.
MZ세대가 온라인 커뮤니티를 하나의 사회로 여긴다는 점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MZ세대에게 온라인 커뮤니티는 오프라인의 대체제가 아니라 또 다른 삶의 영역이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서 현실 세계를 인식하는 MZ세대도 적지 않아 온라인에서의 갈등 양상, 문제 인식 같은 것이 오프라인에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양성평등과 관련된 문제다. 각 온라인 커뮤니티는 어떤 취미 활동에 주를 기울이는지에 따라 성격에 차이를 보인다. 어떤 MZ세대는 커뮤니티에 강한 소속감을 느끼는데, 커뮤니티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제를 과장되게 인식할 때가 있다. 그 중 하나가 양성평등과 관련된 문제로 에펨코리아, 더쿠 같은 커뮤니티는 서로 대립각을 세우며 다툼을 벌이기도 한다.
문제는 커뮤니티에서 인식된 문제가 현실 세계에도 서서히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야당인 국민의힘에서 의원 경력이 없는 이준석 대표가 MZ세대 남성의 지지에 힘입어 대표로 선출되거나 MZ세대 남성 커뮤니티에서 언급되는 여성가족부 폐지 주장이 사회 이슈로 떠오르는 등 날이 갈수록 커뮤니티와 현실이 동기화되는 현상이 늘어나고 있다. MZ세대를 이야기할 때 커뮤니티를 빼놓을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김서윤 하위문화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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