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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카드·현대커머셜 뉴스룸이 MZ세대의 트렌드 이면에 숨겨진 의미를 사회과학적으로 분석해 MZ세대를 들여다보는 ‘MZ주의’ 시리즈를 선보입니다. MZ세대도 낭만적 사랑을 꿈꾸지만 비연애주의가 많아진 현상에 대해 김서윤 하위문화 연구가와 알아봅니다.
*본 글은 외부 필진의 기고로 현대카드·현대커머셜 뉴스룸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MZ세대 다섯 중에 한 명은 ‘비연애주의자’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미혼이며 현재 연애를 하지 않는 사람 중에 ‘앞으로도 연애를 하지 않겠다’고 응답한 사람은 전체의 21.4%다. 남성의 17.3%가 그랬고 여성의 경우 26.3%가 연애할 생각이 없다고 답했다.
갑자기 나타난 경향이 아니다. 이미 2017년에 한 결혼정보회사에서 ‘자발적 솔로’에 관련해 조사한 자료가 있다. 의도적으로 연애를 하지 않는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는지 조사해봤더니 미혼 남녀의 78.7%는 자발적 솔로로 지낸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특히 여성의 비율이 높았는데 ‘연애 욕구가 생기지 않아서’, 즉 연애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서 연애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제일 많았다.
두 조사 결과만 놓고 봐도 비연애주의자 중 여성이 더 많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실제로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에서 2021년 펴낸 보고서를 보면 ‘괴리집단’, 즉 연애나 결혼을 바라지만 이루지 못한 사람 중에는 남성이 훨씬 많다. 연애하지 않고 있는 상태의 남성들에게 섣불리 ‘비연애주의자’라는 타이틀을 붙이기 어려운 이유다. 그러나 여성의 경우 의도적으로 연애하지 않을 가능성이 더 높다. 위의 보고서에서 결혼과 출산을 아예 고려하지 않는 비혼집단의 62%는 여성이었고 대부분 대졸 이상의 학력을 가졌다. 비연애, 비혼의 문제를 이야기할 때는 MZ세대 여성을 두고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보면 되는 이유다.
꼭 ‘돈’의 문제일까
종종 MZ세대의 비연애주의를 언급할 때는 ‘N포세대’ 담론이 함께 거론되는 경우가 많다. 연애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경제사회적 환경을 곁들여서다. 그러나 꼭 비연애가 ‘포기’, ‘경제적 문제’와 함께 언급되어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비연애주의자 중 많은 수인 여성에게 연애는 경제적인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경제적인 문제를 제외하면 비연애의 이유는 조금 더 복합적이다. MZ세대가 사회적 관계 맺기를 어려워한다는 지적도 있다. 아무래도 MZ세대의 연령별 특성상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경험이 부족하고 이를 배울 만한 기회도 적다 보니 복잡한 관계 맺음인 연애를 기피한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이런 서툶이 연애를 막을 만한 요소가 되지 못했다. 연애와 결혼, 출산은 성인기의 발달 과업으로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달성해야 하는 목표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서툴더라도, 관계 맺음을 좋아하지 않더라도 연애하고 결혼하는 일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MZ세대에게는 어려운 관계 맺음 대신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많다. 연애 대신 일, 취미 활동에 집중할 수도 있다.
시간이 갈수록 연애에 기술적인 부분이 더해지면서 연애를 기피하는 사람이 늘어난 측면도 있다. 지금 MZ세대에게 연애는 순수한 관계 맺음의 영역이 아니라 습득하는 기술의 영역에 가깝다.
다시 말하면, MZ세대는 요즘 친밀성을 획득하는 ‘방법’을 깨우치면서 연애에 임한다. 연애는 기술을 습득함으로써 능숙하게 해나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첫 번째 연애는 풋풋하지만 실패하기 쉬운 것이고 반복할수록 성공할 확률이 높아진다. 이 과정에서 ‘밀당’이나 ‘썸’ 같은 전략들을 적절하게 활용해야 한다.
기술로써 연애에는 자연히 도와주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TV 예능 프로그램은 훈수 두는 사람의 역할을 톡톡히 한다. 문제는 이들 연애 상담 채널에는 공식이 있다는 것이다. 연애 상담 채널에서는 연애가 왜 문제인지,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를 논하다가도 바람직한 연애와 그렇지 않은 연애를 구분해 이분법적으로 나누기를 좋아한다. 개별 연애의 관계 맺음 방식에 집중하기보다 이 연애가 바람직하게 흘러갈 수 있을지 훈수 두기를 즐긴다.
습득하는 기술로써 연애는 마치 스펙을 쌓는 것과 같다. 잘 습득된 연애는 개인이 성장할 수 있게 하는 밑거름이다. 이 점은 어떤 MZ세대에게 연애를 기피하게 하는 원인이 된다. 꼭 연애를 통해서 성장을 해야 하는 것인지, 이를 위해 연애의 기술을 갈고 닦아야 하는 것인지 물음표를 던지는 것이다.
이는 어쩌면 MZ세대가 연애에 대한 낭만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일일 수도 있다. MZ세대의 삶은 외로움에 기반한 생존주의에 가깝다. 어릴 때부터 노출되어온 경쟁적인 환경부터 정서적 친밀감을 줄 수 있는 사회 공동체가 거의 소멸된 상황까지, MZ세대의 정서적 안정을 찾을 방법은 많지 않다. 그래서 오히려 열정과 헌신, 결속을 추구하는 낭만적 사랑을 간절하게 바라는 MZ세대도 많다.
낭만적 사랑을 꿈꾸는 MZ세대에게 기술적인 연애는 달가운 것이 아니다. 진정한 의미의 사랑을 하고 있지 않은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MZ세대는 현실의 연애가 아니라 가상의 이야기에 빠진다. 연애를 시작할 듯 감정을 주고받는 출연자들이 나오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나 낭만적인 사랑으로 가득 찬 웹소설 같은 것들이다. 실제로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조사해보니 MZ세대가 가장 많이 보는 웹소설 장르는 로맨스·로맨스판타지 장르였다.
행복하지 않으면 선택하지 않는다
가상의 연애에 빠지는 MZ세대는 무척 많다. 각종 TV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큰 인기를 얻는 데는 이유가 있다. MZ세대는 연애에 대한 지극한 환상이 있다. 출산과 육아를 예로 들 때, 여성가족부에서 조사한 바를 보면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로 ‘아이가 행복하게 살기 힘든 사회여서’를 선택한 사람이 가장 많았다. 발달과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아이를 낳아 기르는 본인의 행복뿐만 아니라 태어나 자랄 아이의 행복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물며 연애에 갖는 기대는 더욱 크다. 한 결혼정보 플랫폼에서 조사한 바를 보면 절대 다수가 연애의 장점으로 심리적 안정을 꼽았다. 안정, 편안함, 행복, 만족 같은 단어는 MZ세대가 꿈꾸는 연애를 상징한다.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 속의 출연자들은 대부분 공동 생활을 하며 연애에만 집중하는 생활을 한다. 관계를 만들어가며 진정성 있는 마음을 내보이는 것이 최고의 목표이다. 이를 테면 전 애인과 함께 출연하는 프로그램에서는 과거·현재·미래의 관계에 얽힌 감정들을 복잡하게 펼쳐 보이며 어떤 드라마보다 더 ‘그럴 법한’ 진정성을 만들어낸다. MZ세대는 드라마나 웹소설처럼 가상의 이야기에 몰두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실 세계에서도 그 낭만적인 관계가 가능할 것이라 믿고, 이야기를 찾아 헤맨다. ‘대리 만족이 가능해서’ 연애 프로그램을 본다는 MZ세대 여성들의 설문조사가 납득이 가는 이유다.
김서윤 하위문화 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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