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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카드·현대커머셜 뉴스룸이 MZ세대의 트렌드 이면에 숨겨진 의미를 사회과학적으로 분석해 MZ세대를 들여다보는 ‘MZ주의’ 시리즈를 선보입니다. MZ세대의 삶에 침투 되어 있는 ‘점수.’ 모든 것이 점수화 되는 사회 현상에서 인플루언서가 탄생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김서윤 하위문화연구가가 지금부터 소개합니다.
*본 글은 외부 필진의 기고로 현대카드·현대커머셜 뉴스룸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넷플릭스 드라마 '블랙 미러'의 한 에피소드에서는 모든 것이 점수화된 사회가 나온다. 누구나 다른 사람에 점수를 매길 수 있는 사회에서 평점은, 삶의 모든 것이다. 직장을 구할 때와 같이 중요한 일에는 물론 차를 빌리 때에도 평점에 따라 차종이 결정된다. 평점이 높은 사람들은 그들끼리 어울리고, 그보다 평점이 낮은 사람들은 그 그룹에 끼지도 못한다. 누군가와 말다툼을 하면 평점이 깎이고, 결혼식에서 친구를 위해 축사를 하면 평점이 올라간다. 오죽하면 평점을 관리해주고 좋은 평점을 받게 도와주는 컨설턴트까지 있을 정도다.
가상의 사회를 배경으로 한 것이지만 결코 낯설지 않다. 이미 MZ세대의 삶 곳곳에 '점수'가 침투해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앱)을 자주 이용하는 MZ세대에게 점수를 주는 일은 매우 익숙하다. 앱으로 택시를 호출해 이용할 때, 배달 음식을 시켜 먹고 후기를 남길 때, '점수를 내 달라'는 요청을 계속 해서 받기 때문이다. 미용실을 방문하고 난 다음이나 영화를 보고 난 후에도 점수를 남긴다. 일하고 있거나 다녔던 회사도 점수로 평가한다.
반면에 MZ세대는 점수를 받는 사람이기도 하다. 단지 시험을 치르던 학창 시절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사회에 나가기 전에도 '스펙'이란 이름의 점수화된 자기표현을 준비하는 세대가 MZ세대다. 사람을 만날 때도 MZ세대는 점수를 받는다. 한때 일부 MZ세대 사이에 유행했던 온라인 소개팅 앱 중에는 다른 이용자들에게 외모에 대한 평가 점수를 받아 평점 3점이 넘지 못하면 가입 자체가 불가능한 앱도 있었다. MZ세대는 점수를 매기고 받는 것에 매우 익숙하다.
전문가가 된 MZ세대
점수를 내는 목적은 우열을 가리기 위해서다. 점수를 내는 데 익숙하다는 것은 서열을 매기는 데 익숙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떤 MZ세대는 서열 매기기를 좋아한다. 손흥민이 박지성보다 나은 축구 선수인지, 영화 ‘기생충’의 오스카 작품상 수상과 방탄소년단의 빌보드 1위 중 어느 것이 더 가치 있는지 비교하기를 즐겨한다. ‘전국 3대 짬뽕 맛집’이니 ‘3대 빵집’이니 하는 우열 가리기는 MZ세대를 중심으로 만들어지고 확산된 것이다.
그런데 점수를 매기는 일도 비교가 선행되지 않으면 어렵다. 무엇을 3점으로 할 것인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1점이나 5점짜리를 떠올릴 수 있어야 한다. 자연스럽게 비교가 이루어진다. 비교는 MZ세대를 대표하는 행위 중 하나다. 자아를 중요하게 생각할 것으로 여겨지는 일반적인 인식과 다르게 MZ세대는 비교하는 일에 익숙하고, 비교를 체화하며 살아간다. 소셜미디어 탓이 크다. 소셜미디어에서는 실시간으로 타인에 대한 정보를 받아들이고 비교하는 일이 끊임없이 일어난다.
한편으로 점수를 매긴다는 것은 일반화를 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평론가에게서 같은 5점의 별점을 받은 영화라 해도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점수만 보아서는 차이를 알기 힘들다. 점수를 주는 것은 자세하게 리뷰를 남기는 것보다 간편하기도 한데 그 편의성 때문에 일반화된 점수 매기기가 더 선호되는 측면도 있다. 시청한 영화에 별점을 남기는 대신 자세한 리뷰를 써야 한다고 생각해보자. 참여자가 대폭 줄어들 것이다. 점수 매기기는 그만큼 간편하다.
점수 매기기의 일반화는 보편성을 가지는 것이 아니다. MZ세대의 점수 매기기는 지극히 개인적인 기준으로 이뤄진다. ‘내 기준’에서 즐겁고 재미 있었던 것에 높은 점수를 주고 내가 불만족스럽게 느꼈던 것에 낮은 점수를 준다. 그렇게 각각의 개인적인 기준으로 모인 점수는 대개 공개되어 ‘판단’의 기준이 된다.
다른 측면에서 MZ세대의 점수화는 권위적이기도 하다. 최근 들어 폭발적으로 성장한 배달 음식 시장에서 그 특성을 찾아볼 수 있다. 배달 음식 시장이 성장한 가장 큰 이유는 코로나19 사태로 비대면 생활 양식이 정착한 것을 들 수 있다. 그런데 한 가지, 배달 음식 앱의 시스템도 빼놓을 수 없다. 이용자들이 직접 음식을 먹어보고 남긴 별점이 쌓이는 시스템은 좋은 음식점을 고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줬다. 음식점들을 비교할 수 있게 되면서 집에 앉아서도 더 좋은 음식을 맛볼 수 있기를 바라는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시스템은 새로운 문화를 만들었다. 누구나 자신의 경험에 점수를 매기는 문화다. 예전에는 점수를 매기는 역할은 어느 정도 권위를 가진 사람만이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배달 앱에서는 미식가가 아니어도, 음식 칼럼니스트가 아니어도 자신이 먹은 음식에 점수를 매길 수 있다. 바꿔 말하면 배달 앱 안에서는 평범한 시민도 음식 칼럼니스트가 되고, 미식가가 되어 점수를 매길 수 있는 권위를 가지는 것이다. 누구나 전문가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MZ세대는 모든 것의 전문가다. 어느 분야에서건 평가하고 분석하고 점수 매기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스스로에게 전문가 못지 않은 권위가 주어져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지식과 정보를 넓히고 펼쳐내기를 즐긴다. 각종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문가의 영역에 도전하는 MZ세대가 많다는 점은 MZ세대의 자신감을 엿볼 수 있게 하는 부분이다.
누구나 전문가가 될 수 있다
MZ세대의 전문가에게는 자격이 없다. 누구나 점수를 매길 수 있는 사회에서 학력 같은 자격은 거추장스러운 것에 가깝다. 그보다는 누가 더 많은 지식과 정보를 풀어낼 수 있는지, 실질적인 경력을 오래 쌓았는지 같은 문제가 자격증을 대신한다. 그걸 확인할 수 있는 공간은 소셜미디어다. 블로그, 인스타그램 같은 공간에서 MZ세대는 자신의 전문성을 마음껏 뽐낸다. 그리고 전문성을 신뢰하는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커뮤니티가 만들어진다.
‘인플루언서’가 탄생한 배경이다. 예를 들어 뷰티 시장에서 인플루언서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제품을 비교하고 분석하는 인플루언서들은 자격증을 갖추고 있지는 않지만 그보다도 더 큰 영향력을 미친다. 업계에서도 그 사실을 매우 잘 알기 때문에 인플루언서를 모으고 제품을 쥐어주며 홍보를 부탁하는 일만큼 중요하게 여기는 일은 따로 없을 정도다.
누구도 그들에게 먼저 권위를 쥐여주지 않았지만 스스로 만들어 전문가 못지 않은 권위를 얻어낸 사람이 인플루언서다. 스스로 전문성을 쟁취했다는 점은 매우 중요하다. MZ세대 전문가에게는 정해진 길이 없다. 팁은 수없이 존재하지만 학력을 쌓고 경력을 쌓아 오랜 시간 들여 전문성을 갖추던 예전의 방법은 통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자신의 판단에 얼마나 자신감을 갖고 설명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자신의 판단을 신뢰할 수 있다는 것은 우열을 가리던 비교 경험이 쌓여야 가능한 일이다. 어느 자동차의 엔진이 더 뛰어난지, 어떤 IT 제품의 성능이 좋은지, 어느 음식점의 메뉴가 더 맛있는지를 확실히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스스로의 판단에 대한 신뢰가 없다면 인플루언서가 될 수 없다. 인플루언서가 갖추어야 하는 능력 중에는 영상이나 사진을 잘 만들어내는 능력,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해 잘 아는 정보력 같은 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점수 매기기에 익숙한 모든 MZ세대는 누구나 인플루언서, 전문가가 될 가능성이 있다.
김서윤 하위문화 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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