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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현대카드하면 뭐가 떠오르시나요? 개성과 위트로 가득한 카드 플레이트나 요즘 같으면 스타벅스나 대한항공 등과 협업해 만든 PLCC들일 수도 있겠네요. 현대카드의 앱이나 챗봇 버디일 수도 있고, 그도 아니면 슈퍼콘서트나 디자인 라이브러리를 비롯한 4곳의 라이브러리일지도 모르죠. 그런데 이 모든 상품과 서비스들은 하나의 큰 원칙하에 기획되어 왔다고 합니다. 현대카드 정태영 부회장이 직접 들려주는 현대카드 브랜딩 이야기를 듣고, 칼럼니스트 정우성씨는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함께 들어보시죠.
어떤 요리 프로그램에서였다. 이연복 셰프가 요리를 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하면 자신만의 맛을 낼 수 있는지에 대해 아주 디테일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아니, 셰프님 근데 이걸 다 말씀해주셔도 돼요?” 진행자가 물었다. 이연복 셰프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런 취지의 말을 했다. 이거 다 알려줘도 따라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만약 이걸 그대로 따라해서 비슷한 맛을 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굳이 내 방법을 알려주지 않아도 자기만의 맛을 낼 수 있는 사람이었을 거라고.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앱스트렉트>에는 다양한 업계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들이 등장한다. 각각의 영감과 비법에 대해 에누리 없이 털어놓는다. 본 사람은 알겠지만, 그 중 특별할 것은 별로 없다. 모두가 각자의 루틴에 충실한 것이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일러스트레이터 크리스토프 니만이 소개했던 화가 척 클로스의 한 마디였다. “영감은 아마추어를 위한 것. 프로는 아침이 되면 출근할 뿐이다.”
잘 모르는 사람들, 절반만 아는 사람들이 영원히 오해하는 게 있다. 조금이라도 창의적으로 보이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예술가적 기질 혹은 감성에 의존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롱코트에 낡은 목도리를 두르고 센 강변을 걷다가 갑자기 노래를 짓기 시작하는 시인처럼. 절반은 미친 사람처럼 배회하다가 갑자기 캔버스에 색을 쏟아내는 영화 속 화가처럼 말이다. 창의력에 대한 아주 오래된 신화 혹은 미신에 가까운 장면들이다.
소설은 엉덩이로 쓴다는 말이 있다. 프로는 영감을 기다리지 않는다. 진짜 작가는 배회하지 않는다. 부지런히, 꾸준히 쓰는 사람만이 작품을 완성할 수 있다는 뜻이다. 영감이라는 건 신비하고 낭만적인 게 아니다. 어제 그랬던 것처럼 오늘도 제 시간에 책상 앞에 앉아 제 할 일을 하는 사람이 자연스럽게 접하는 자신만의 흐름이다. 집요하고 정확하게. 오로지 나 자신이 되기 위해서 집중하는 사람의 흐름.
12월 중순, 현대카드 DIVE 앱에서 볼 수 있는 프로그램 <오버 더 레코드>에는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이 출연했다. 현대카드는 브랜딩에 대한 무려 6편의 영상, 약 1시간 정도의 이야기를 공개했다. 소탈한 웃음 사이사이, 세상에 없던 것들을 손과 발로 직접 지휘하고 만들어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세세하고 예리한 이야기가 보물처럼 가득했다.
지금의 현대카드를 어떤 회사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정의를 할 수나 있을까? 금융업을 본질에 두고 이토록 폭넓은 문화를 창출하는 회사를? 음악과 건축, 디자인과 음식, 결국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거의 모든 사람의 라이프스타일에 관여하고 창조하는 이 묘한 회사를?
하지만 현대카드의 놀라움은 그들이 다루는 분야가 다양하고 범위가 넓다는 데서 오는 게 아니다. 의지와 돈이 있다면 어느 정도 수준까지는 해낼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니까. 현대카드의 진짜 놀라움은 그토록 다양한 분야에서 또렷하게 활동을 이어가면서 그 모든 디테일이 그들 자신, 즉 ‘현대카드’로 응축된다는 데 있다. 우편물 하나, 책자 하나, 디자인 라이브러리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의 디테일에서조차. 정태영 부회장은 “기업의 모든 활동이 하나의 페르소나일 때 시장에서 받아들여진다”고 말한다. 현대카드야말로 싱크로나이제이션(Synchronization∙동기화)이 가장 강한 회사일 거라는 말도.
페르소나는 기업의 인격, 철학, 존재이유, 방향성을 통합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단어일 것이다. 정 부회장은 영상에서는 이 페르소나를 구현하기 위한 과정을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이미지를 모으고 그룹을 만들어 버릴 건 버리고 취할 것은 취하는 과정. 그 과정에서 떠오르는 단어를 고르고 골라 딱 세 개의 단어로 응축하는 데 걸리는 시간만 대략 1년이라고 한다. 이미지와 단어가 정해지면 일단의 정리가 끝난 것이다. 한 번 정해지면 4~5년은 끌고 간다.
이미지를 고를 땐 시대와 장르를 불문한다. 지금 가장 뛰어난 이미지를 찾는 것이 아니다... 아주 오래된 이미지에서 가장 현대적인 것을 끌어내기도 한다. 새로운 것은 모든 시대에 있었으니까. 아직 발견되지 않은 것만이 진짜 보물이라는 끈기로 하는 작업이다. 진짜 멋진 것들은 시간이 흐른다고 바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레퍼런스를 보는 관점과 시각이다. ‘요즘 힙’하다거나 ‘요즘 핫’하다는 식의 그 지루한 단어야말로 끼어들 틈이 없을 것이다. 윤오영의 수필 <방망이 깎던 노인>에 등장하는 노인의 심정이 이랬을까? 스스로 만족할 때까지는 절대로 팔지 않는, 비싸다고 투덜대는 손님에게 “다른 데 가 사우. 난 안 팔겠소” 말하던 마음. 매일 쓰는 빨래 방망이를 공예 미술품의 경지로 끌어 올린 노인의 집요함과 고집. 취재와 연구, 벼리고 벼리다 결국 정수만 남겨놓는 그 고단한 과정...
싱크로나이제이션은 페르소나의 인격과 철학, 방향성을 기업의 모든 활동에 일관되게 적용하는 과정과 결과를 의미하는 단어다. 디테일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범위 안에, 가끔은 상상력을 뛰어 넘는 모든 범위 안에 숨어 있다. 현대카드의 모든 텍스트 커뮤니케이션은 그들 자신의 폰트를 통해 이뤄진다. 제목을 위한 서체, 본문을 위한 서체가 다르다. 앱에서 쓰는 도구와 신문에 쓰는 도구가 다르다. 하지만 존재하는 모든 디테일이 또한 총론 아래 질서정연하다. 다양하고 다채로운 변주들은 하나의 페르소나 안에서 아주 팽팽한, 가끔은 느슨한 일관성을 유지한다.
결국 모든 게 시스템이다. 감성? 느낌? 낭만? 모호함? 전통적으로 우뇌의 역할로 여겨지는 모든 활동들을 좌뇌의 힘으로 정렬시키는 것. 왼쪽과 오른쪽의 끊임없는 소통을 통해 결국 하나의 언어를 구축하는 일이야말로 싱크로나이제이션의 핵심일 것이다. 쉽지 않은 일이다. 누군가에게는 괴로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할 수 있다면 이보다 파워풀할 수 없고, 제대로 해낸다면 어마어마한 아름다움으로 이어지는 일. 정태영 부회장은 웃으면서 말했다.
“브랜딩을 잘하는 회사는 (이런 작업을) 귀찮아하지 않고 열심히 하고 있는 거고요. 어떤 회사는 ‘그거 말했으니까 됐겠지’ 하고 잊은 다음에 몇 년 후에 모든 것이 흩어져 있고 무너지는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여섯 편의 영상은 알차게 분류돼 있다. 1강에서는 마케팅과 브랜딩의 차이를 2강에서는 현대카드의 브랜딩에 대해 들을 수 있다. 3강은 브랜딩과 마케팅의 각론, 4강은 광고 만들기, 5강은 디자인 자체의 중요성에 대해 다뤘다. 6강은 마케터의 자기 훈련이다. 여기에 3분 23초짜리 깜짝 부록까지 담아냈다.
지금 당장, 현대카드 DIVE 앱과 현대카드 DIVE 유튜브 채널에서 이 모든 영상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미리 알아둬야할 게 있다. 이 영상들은 그냥저냥 편안하고 친근한 이미지를 구축하고 싶은 회사 CEO의 팬 서비스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편에서 날카롭고 형형하게 빛나는 실무자의 집념과 통찰에 가깝다.
이 영상을 본 누군가는 현대카드야말로 최선의 놀이터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이 영상만 보고도 질려버릴 수 있다. 이렇게 철저한 회사에서 일하는 게 쉽지는 않을 테니까. 가끔은 이대로 증발해버리는 게 낫다 싶을 정도로 힘든 날도 있을 거라서. 도전과 혁신이 모든 사람에게 어울리는 테마는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현대카드는 사람 좋은 웃음으로 뭘 얼버무리는 회사가 아니었다. 시작부터 끝까지 본격적으로, 한번 시작하면 열매가 맺힐 때까지 멈추지 않는 회사였다. 처음엔 ‘뭐 저런 나무를 다 심나’ 싶었던 순간이 없지 않았지만, 지금은 누구와도 다른 숲을 가꿔낸 회사가 되었다. 나무를 심는 사람의 마음, 숲을 가꾸는 회사의 마음을 이런 식으로 엿볼 수 있다는 것 역시 소셜 미디어와 유튜브 시대의 선물 아닐까?
“마케터는 70%의 DNA와 30%의 노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재능 혹은 DNA인 것 같아요. 창의성이란 많은 것을 순간적으로 엮어내는 재능입니다.”
6강 <마케터의 자기 훈련>에서 정태영 부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역시 좀 냉정하게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점점 엄중해지는 시대, 마냥 듣기 좋은 위로만큼 위험한 것도 없다. “너라면 뭐든지 할 수 있다”거나 “조금 쉬어가도 괜찮다” 같은 말은 베스트셀러 매대 위에서 본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뛰어난 것을 제대로 해내고 싶은 사람에게 현실이 부드럽고 쉬웠던 적은 없었다. 혁신은 꾸준하고 집요하게, 오로지 끈질기게 찾아내고 버리는 과정 속에서 가까스로 찾을 수 있는 작은 틈일 것이다. 현대카드는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다. 정태영 부회장은 카메라 앞에서 감추는 것이 별로 없었다. 마침내 알게 됐다고 누구나 해낼 수는 없는 그들만의 비결이, 지금 모두에게 공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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